"재황아! 오늘이 이 해의 첫날이니, 금년 신수를 위해서 내 네게 두어 마디 물어 볼 말이 있다."
"네."
아무런 말이든 대답하겠습니다 하는 뜻이었다.
"왕자(王者)의 덕은 무엇이냐?"
"서민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올시다."
"또?"
"또…"
소년은 머리를 기울였다.
당시의 각 종친이며 권문들에게 '시정의 한 무뢰한'으로 알려져 있는 흥선은, 자기의 사랑하는 둘째아들을 데리고 집에서는 늘 왕자의 걸을 길과 왕자의 덕을 가르친 것이었다. 열 너덧 살부터 벌써 거리에 나서서 세상의 쓰고 단 온갖 경력을 다 맛본 흥선은,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본 바에서 짜낸 정치관과 도덕관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많은 경험이 쌓은 것인지라, 가장 철저한 종류의 것이었다.
"또, 잊었느냐?"
"또, 저 - 가만 계셔요. 저, 저 네 알겠습니다. 그, 저…"
하며 머리를 기울이는 소년에게 대하여 흥선은 깨쳐 주었다.
"편중 편애를 삼갈 것이다."
"네, 저도 생각은 났는데 미처 뭐랄지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음,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뭐냐?"
"…"
"처권(妻權)에 눌리지 말 것이다."
"네?"
소년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 흥선에게는 도리어 다행이었다. 가슴속에 맺히고 또 맺힌 불만 때문에 불끈 그 말이 입밖에 나오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그런 말은 지금 가르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을 다행히 여기는 흥선은 자기의말을 속여 버렸다.
"처세에 밝아야 한다.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자기의 자격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가장 웃사람이고, 따라서 만인의 표본이 돼야 할 사람인 줄을 알아야한다. 또 남을 눈 아래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호령할만한 사람이나 호령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호령도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