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년(辛酉年) 정월 초하룻날 아침해가 불그스름히 동녘 하늘에 솟아올랐다.

 

이날 흥선은 일찍이 깨었다.

 

초라한 무명옷이나마 깨끗이 갈아입고 소세를 한 뒤에, 집안 아랫사람들에게 세배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맏아들 재면이 들어와서 세배를 하고 나갔다.

 

그 뒤에 그의 사랑하는 둘째아들 재황이 들어왔다. 열살 난 소년 - 얼굴은 고치와 같이 타원형으로 이쁘게 생기고 총명한 눈이 반짝이는 소년이었다.

 

명절이라고 역시 새 옷을 깨끗이 입은 소년은 들어와서 아버지에게 절을 하였다. 흥선은 소년을 굽어보았다. 흥선의 얼굴에는 명랑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 개똥이(재황의 애명)냐? 금년에는- 금년에는…"

 

흥선은 말을 주저하였다. 눈자위에 다시 미소가 흘렀다.

 

"금년에는…"

 

또 한번 뇌어 보았다. 그런 뒤에 지극히 작은 소리로,

 

"등극을 하셨다니 치하 드리옵니다."

 

한 뒤에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장래 숱한 고난을 겪고 숱한 비극을 겪은 뒤에 태조적부터 전면히 물려 내려온 사직의 소멸까지 친히 눈으로 보고, 왕자로서 능히 겪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일을 다 보아야 할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영특한 눈, 총명스러운 눈으로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한 말은 듣지 못한 것이었다.

 

"재황아!"

 

"네?"

 

"좀 가까이 온!"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아버지의 앞에까지 다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