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 십칠 일 날 새벽, 뚜껑 없는 모래 차에 모래 실리는 듯한 사람 틈에 끼어, 대통령에 누구, 육군 대신에 누구, 그러다가 한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목이 터지게 독립만세를 부르며 이 날 아침 열 시에 열린다는 전국대회에 미치지 못할까 보아 초조하면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일광의 정거장들을 지나 서울로 올라왔다.

청량리 정거장을 나서니 웬일인가. 기대와는 달리 서울은 사람들도 냉정하고 태극기조차 보기 드물다. 시내에 들어서니 독 오른 일본군인들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예리한 무장으로 거리마다 목을 지키고 <경성일보>가 의연히 태연자약한 논조다.

현은 전보 쳐준 친구에게로 달려왔다. 손을 잡기가 바쁘게 전국대회가 어디서 열리느냐 하니, 모른다 한다. 정부 요인들이 비행기로 들어 왔다는데 어디들 계시냐 하니 그것도 모른다 한다. 현은 대체 일본항복이 사실이긴 하냐 하니, 그것만은 사실이라 한다. 현은 전신에 피곤을 느끼며 걸상에 주저앉아 그제야 여러 시간만에 처음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 친구로부터 팔월 십오 일 이후 이틀 동안의 서울 정황을 대강 들었다.

현은 서울 정황에 불쾌하였다. 총독부와 일본군대가 여전히 조선민족을 명령하고 앉았다는 것과 해외에서 임시정부가 오늘 아침에 들어왔다, 혹은 오늘 저녁에 들어온다, 하는 이때 그 새를 못 참아 건국(建國)에 독단적인 계획들을 발전시키며 있는 것과 문화면에 있어서도, 현 자신은 그의 꿈인가 생시인가도 구별되지 않는 이 현혹한 찰라에, 또 문화인들의 대부분이 아직 지방으로부터 모이기도 전에 무슨 이권이나처럼 재빨리 간판부터 내걸고 서두르는 것들이 도시 불순하고 경박해 보였던 것이다.

현이 더욱 걱정되는 것은 벌써부터 기치를 올리고 부서를 싸고 덤비는 축들이 전날 좌익작가들의 대부분임을 알게 될 때, 문단 그 사회보다도, 나라 전체에 좌익이 발호할 수 있는 때와 좌익이 제멋대로 발호하는 날은, 민족상쟁 자멸의 파탄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위험성이었다.

현은 저 자신의 이런 걱정이 진정일진댄, 이러고만 앉았을 때가 아니라 생각되어 그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란 데를 찾아갔다. 전날 구인회(九人會) 시대, 문장(文章) 시대에 각별하게 지내던 친구도 몇 있었으나 아닌게 아니라 전날 죄익이었던 작가와 평론가가 중심이었다. 마침 기초된 선언문(宣言文)을 수정하면서들 있었다.

현은 마음속으로 든든히 그들을 경계하면서 그들이 초안한 선언문을 읽어보았다. 두 번 세 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 혹시라도 위선적(僞善的)인 데나 없나 엿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저으기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이만침 조선사정에 절실한 정신적 준비가 있었든가?'

현은 그들의 태도와 주장에 알고 보니 한 군데도 이의(異意)를 품을 데가 없었다.

'장래 성립한 우리 정부의 문화, 예술정책이 서고, 그 기관이 탄생되어 이 모든 임무를 수행할 때까지 우선, 현 계단의 문화영역의 통일적 연락과 각부문의 질서화를 위하야'였고 조선문화의 해방, 조선문화의 건설, 문화전선의 통일, 이것이 전진구호(前進口號)였던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이 나아갈 노선에서 행동통일부터 원칙을 삼아야 할 것을 현은 무엇보다 긴급으로 생각한 것이요, 좌익작가들이 이것을 교란할까 보아 걱정한 것이며 미리부터 일종의 증오를 품었던 것인데 사실인즉 알아볼수록 그것은 현 자신의 기우(杞憂)였었다. 아직 이 이상 구체안이 있을 수도 없는 때이다.

이들로서 계급 혁명의 선수를 걸지 않는 것만은 이들로는 주저나 자중이 아니라, 상당한 자기 비판과 국제 노선과 조선 민족의 관계를 심사숙고한 연후가 아니고는, 이처럼 일견 단순해 보이는 태도나 원칙만에 만족할 리가 없을 것이었다. 현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즐겨 그 선언에 서명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도시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로!"

이런 깃발과 노래만 이들의 회관에서 거리를 향해 나부끼고 울려나왔다. 그것이 진리이긴 하나 아직 민중의 귀에만은 이른 것이었다. 바다 위로 신기루(蜃氣樓)같이 황홀하게 떠들어올 나라나, 대한이나, 정부나 영웅들을 고대하는 민중들은, 저희 차례에 갈 권리도 거부하면서까지 화려한 환상과 감격에 더 사무쳐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

현 자신까지도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로'가 이들이 민주주의자로서가 아니라 그전 공산주의자로서의 습성에서 외침으로만 보여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유고 같은 이는 이미 전세대(前世代)에 있어 '국민보다 인민에게'를 부르짖은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의 이 시대, 이 처지에서 '인민에게'란 말이 그다지 새롭거나 위험스럽게 들릴 것도 아무 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현은 역시 조심스러웠고, 또 현을 진실로 아끼는 친구나 선배의 대부분이 현이 이들의 진영 속에 섞인 것을 은근히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객관적 정세는 날로 복잡다단해졌다. 임시 정부는 민중이 꿈꾸는 것 같은 위용(偉容)은커녕 개인들로라도 쉽사리 나타나 주지 않았고,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일본군을 여지없이 무찌르며 조선인의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충분히 이해해서 왜적에 대한 철저한 소탕을 개시한 듯 들리나, 미국 군은 조선민중의 기대는 모른 척하고 일본인들에게 관대한 삐라부터를 뿌리어 아직도 총독부와 일본군대가 조선민중에게 '보아라 미국은 아직 일본과 상대이지 너 따위 민족은 문제가 아니다' 하는 자세를 부리기 좋게 하였고, 우리 민족 자체에서는 '인민공화국'이란, 장래 해외세력과 대립의 예감을 주는 조직이 나타났고, '조선 문화건설 중앙협의회'와 선명히 대립하여 '푸로레타리아예술연맹'이란, 좌익문학인들만으로 문화운동 단체가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푸로예맹'이 대두함에 있어, 현은 물론, '문협'에서 들은, 겉으로는 '역사나 시대는 그네들의 존재 이유를 따로 허락지 않을 것이다'하고 비웃어 버리려 하나 속으로는 '문화전선 통일'에 성실하면 성실한만치 무엇보다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당면과제의 하나였다.

현이 더욱 불쾌한 것은 '푸로예맹'의 선언강령이 '문협'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점이요, 그렇다면 과거에 좌익작가들이, 과거에 자기들과 대립 존재였던 현을 책임자로 한 '문학건설본부'에 들어 있기 싫다는 표시로도 생각할 수 있는 점이다. 하루는 우익 측 몇 친구가 '푸로예맹'의 출현을 기다리었다는 듯이 곧 현을 조용한 자리에 이끌었다.

"당신의 진의는 우리도 모르지 않소. 그러나 급기야 당신이 거기서 못 배겨나리다. 수포에 돌아가 리니. 결국 모모(某某)들은 당신 편이기보단 푸로예맹 편인 것이오. 나중에 당신만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이니 진작 나와 우리끼리 따로 모입시다. 뭣허러 서로 어정버정한 속에서 챙피만 보고 계시오?"

현은 그들에게 이 기회에 신중히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것만은 수긍하고 헤어졌다. 바로 그 다음 날이다. 좌익대중단체 주최의 데모가 종로를 지나게 되었다. 연합국기 중에도 맨 붉은 기뿐이요, 행렬에서 부르는 노래도 적기가(赤旗歌)다. 거리에 섰는 군중들은 모두 이 데모에 냉정하다.

그런데 '문협' 회관에서만은 열광적 박수와 환호로 이 데모에 응할 뿐 아니라, 이제 연합군 입성 환영 때 쓸 연합국기들을 다량으로 준비해 두었는데, 문협의 상당한 책임자의 하나가 묶어놓은 연합국기 중에서 소련 것만을 끄르더니 한 아름 안고 가 사층 위로부터 행렬 위에 뿌리는 것이다. 거리가 온통 시뻘개진다. 현은 대뜸 뛰어가 그것을 막았다. 다시 집으러 가는 것을 또 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