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
"그렇습니까? 미안합니다."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출정군인이 있을 때마다 여기서 장행회가 있는데 한 번도 나오지 않지 않었소?"
"미안합니다. 앞으론 나오겠습니다."
현은 몹시 우울했다.
첫 장마 지난 후, 고기들이 살도 올랐고 떼지어 활발히 이동하는 것도 이제부터다. 일년 중 강물과 제일 즐길 수 있는 당절에 그만 금족을 당하는 것이었다. 낚시도구는 꾸려 선반에 얹어두고, 자연 김 직원과나 자주 만나는 것이 일이 되었다. 만나면 자연 시국 이야기요, 시국 이야기면 이미 독일도 결단났고 일본도 벌써 적을 오끼나와까지 맞아들일 때라 자연히 낙관적 관찰로서 조선독립의 날을 꿈꾸는 것이었다.
"국호(國號)가 고려국이라고 그러셨나?"
현이 서울서 듣고 온 것을 한 번 김 직원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고려민국이랍디다."
"어째 고려라고 했으리까?"
"외국에는 조선이나 대한보다 고려로 더 알려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직원 님께서 무어라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까짓 국호야 뭐래든 얼른 독립이나 됐으면 좋겠소. 그래도 이왕이면 우리넨 대한이랬으면 좋을 것 같어."
"대한! 그것도 이조 말에 와서 망할 무렵에 잠시 정했던 이름 아닙니까?"
"그렇지요. 신라나 고려나처럼 한때 그 조정이 정했던 이름이죠."
"그렇다면 지금 다시 이왕 시대(李王時代)가 아닐 바엔 대한이란 거야 무의미허지 않습니까? 잠시 생겼다 망했다 한 나라 이름들은 말씀대로 그때그때 조정이나 임금 마음대로 갈었지만 애초부터 우리 민족의 이름은 조선이 아닙니까?"
"참, 그러리다. 사기에도 고조선이니 위만조선(衛滿朝鮮)이니 허고 조선이란 이름이야 흠벅 오라죠. 그런데 나는 말이야…."
하고 김 직원은 누워서 피우던 담배를 놓고 일어나며,
"난 그전대로 국호도 대한, 임금도 영친왕을 모셔내다 장가나 조선 부인으로 다시 듭시게 해서 전 주 이씨 왕조를 다시 한번 모셔보구 싶어."
하였다.
"전조(前朝)가 그다지 그리우십니까?."
"그립다 뿐이겠소. 우리 따위 필부가 무슨 불사이군(不事二君)이래서 보다도 왜놈들 보는 데 대한 그대로 광복(光復)을 해 가지고 이번엔 고 놈들을 한 번 앙갚음을 해야 허지 안겠소?."
"김 직원께서 이제 일본으로 총독 노릇을 한 번 가 보시렵니까?."
하고 둘이는 유쾌히 웃었다.
"고려민국이건 무어건 그래 군대도 있구 연합국간엔 승인도 받었으리까?."
"진부는 몰라도 일본에 선전포고꺼정 허구 군대가 김일성 부하 이청천 부하 모다 삼십만은 넘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십만! 제법 대군이로구려! 옛날엔 십만이라두 대병인데! 거 인제 독립이 돼 가지구 우리 정부가 환국할 땐 참 장관이겠소. 오래 산 보람 있으려나보!"
하고 김 직원은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그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삼십만 대병으로 호위된 우리 정부의 복식 찬란한 헌헌장부들의 환상(幻像)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감격에 가슴이 벅찬 듯 후― 한숨을 쉬는 김 직원의 눈은 눈물까지 글썽해 있었다.
그후 얼마 안 있어서다. 하루는 김 직원이 주재소에 불려갔다. 별일은 아니라 읍에서 군수가 경비전화를 통해 김 직원을 군청으로 들어오라는 기별이었다. 김 직원은 이튿날 버스로 칠십 리나 들어가는 군청으로 갔다. 군수는 반가이 맞아 자기 관사에서 저녁을 차리고 김 직원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왜 지난달 춘천(春川)서 열린 도유생대회(道儒生大會)엔 참석허지 않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부르셨소?"
"아니올시다.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 허시지오."
"이왕 지나간 대회 이야기보다도 인젠 시국이 정말 국민에게 한사람이라도 방관할 여율 안 준 다는 건 나뿐 아니라 김 직원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노인께 이런 말씀 드리는 건 미안합니다만 너무 고루하신 것 같은데 성인도 시속을 따르랬다고 대세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이번에 전국유도대회(全國儒道大會)를 앞두고 군(郡)에서 미리 국어(國語)와 황국정신(皇國精神)에 대한 강습이 있읍니다. 그러니 강습에 오시는데 미안합니다만 머리를 인젠 깎으시고 대회에 가실 때도 필요할 게니 국민복도 한벌 작만하십시오."
"그 말씀뿐이오?."
"그렇습니다."
"나 유생인 건 사또께서 잘 아시리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란 성현의 말씀을 지키지 않구 유생은 무슨 유생이며 유도 대회는 무슨 유도대회겠소. 나 향교직원 명예로 하는 것 아니오. 제향절차 하나 제대로 살필 위인이 없으니까 그곳 사는 후학(後學)으로서 성현께 대한 도리로 맡어온 것이오. 이제 머리를 깎어라 낙치(落齒)가 다 된 것더러 일본말을 배워라, 복색을 갈어 라, 나 직원 내노란 말씀이니까 잘 알아들었소이다."
하고 나와 버린 것인데, 사흘이 못 되어 다시 주재소에서 불렀다. 또 읍에서 나온 전화 때문인데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김 직원은 그 길로 현을 찾아왔다.
해방 전후 [解放前後] (이태준) - 7. 우리 정부의 헌헌장부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8 / 전체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