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한동안 김 직원은 현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현도 바쁘기도 했지만 더 김 직원에게 성의도 나지 않아 다시는 찾아가지도 못하였다.

탁치 문제는 조선민족에게 정치적 시련으로 너무 심각한 것이었다. 오늘 '반탁' 시위가 있으면 내일 '삼상회담지지' 시위가 일어났다. 그만 대중을 충돌하고, 지도자들 가운데는 이것을 미끼로 정권 싸움이 악랄해갔다. 결국, 해방 전에 있어 민족 수난의 십자가를 졌던 학병(學兵)들이, 요행 죽지 않고 살아온 그들 속에서, 이번에도 이 불행한 민족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말았다.

이런 우울한 하루였다. 현의 회관으로 김 직원이 나타났다. 오늘 시골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점심이나 같이 자시러 나가자 하니 그는 전과 달리 굳게 사양하였고, 아래층까지 따라 나려오는 것도 굳게 막았다. 전날 정리로 보아 작별만은 하러 들리었을 뿐, 현의 대접이나 인사는 긴치 않게 여기는 듯하였다.

"언제 서울 또 오시렵니까?"

"이런 서울 오고 싶지 않소이다. 시골 가서도 그 두문동 구석으로나 들어가겠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분연히 층계를 내려가고 마는 것이었다. 현은 잠깐 멍청히 섰다가 바람도 쏘일 겸 옥상(屋上)으로 올라왔다. 미국군의 찦이 몰매미 떼처럼 스물거리는 사이에 김 직원의 흰 두루마기와 검은 갓은 그 영사 너무 표표함이 있었다.

현은 문득 청조 말(淸朝末)의 학자 왕국유(王國維)의 생각이 났다. 그가 일본에 와서 명곡(明曲)에 대학 강연이 있을 때, 현도 들으러 간 일이 있는데, 그는 청나라 식으로 도야지 꼬리 같은 편발을 그냥 드리우고 있었다. 일본 학생들은 킬킬 웃었으나 그의 전조(前朝)에 대한 숭의를 생각하고 나라 없는 현은 눈물이 날 지경으로 왕국유의 인격을 우러러보았었다.

그 뒤에 들으니, 왕국유는 상해로 갔다가 북경으로 갔다가, 아모리 헤매어도 자기가 그리는 청조(淸朝)의 그림자는 스러만 갈 뿐이므로,

"綠水靑山不曾改 雨洗蒼蒼有獸間."

을 읊조리고는 편발 그대로 혼명호(混明湖)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청나라를 깨트린 것은 외적(外敵)이 아니라 저희 민족 저희 인민의 행복과 진리를 위한 혁명으로였다. 한 사람 군주(君主)에게 연연히 바치는 뜻갈도 갸륵한 바 없지 않으나 왕국유가 그 정성, 그 목숨을 혁명을 위해 돌리었던들, 그것은 더 큰 인생의 뜻이오니 큰 진리의 존엄한 목숨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일제시대에 그처럼 구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끝내 부지해 온 상투 그대로, '대한'을 찾아 삼팔선을 모험해 한양성(漢陽城)에 올라왔다가 오늘, 이 세계사(世界史)의 대사조(大思潮) 속에 한 조각 티끌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가는 김 직원의 표표한 모양을 바라볼 때, 현은 왕국유의 애틋한 최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이 아직 차나 어딘지 부드러운 벌써 봄바람이다. 현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회관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푸로예맹과의 합동도 끝나고 이번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로 바쁘고들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