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공?"

"네?"

"조선민족이 대한독립을 얼마나 갈망했소? 임시정부 들어서길 얼마나 열열절절이 고대했소?"

"잘 압니다."

"그런데 어쩌자구 우리 현 공은 공산당으로 가셨소?"

"제가 공산당으로 갔다고들 그럽니까?"

"자자합디다. 현 공이 아모래도 이용당하는 거라구."

"직원 님께서도 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현 공이 자진해 변했을른진 몰라, 그래두 남한테 넘어갈 양반 아닌 건 난 알지요."

"감사합니다. 또 변했단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변했느니, 안 변했느니 하리만치 해방 전에 내가 제법 무슨 뚜렷한 태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구요. 원인은 해방 전엔 내 친구가 대부분이 소극적인 처세가들인 때문입니다. 나는 해방 후에도 의연히 처세만 하고 일하지 않는 덴 반댑니다."

"해방 후라고 사람의 도리야 어디 가겠소? 군자는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입니다."

"전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선 이하(李下)에서라고 빗뚜러진 관(冠)을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현명이기보단 어리석음입니다. 처세주의는 저 하나만 생각하는 태돕니다. 혐의는커녕 위험이라도 무릅쓰고 일해야 될 민족의 가장 긴박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모튼 사람이란 명분(名分)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공뢰 있소. 해외에서 일생을 우리 민 족 위해 혈투해온 그분들게 그냥 순종해 틀릴 게 조금도 없습네다."

"직원 님 의향 잘 알겠읍니다. 그리고 저도 그분들게 감사하고 감격하는 건 누구헌테 지지 않습니 다. 그러나 지금 조선 형편은 대외, 대내가 다 그렇게 단순치가 않답니다. 명분을 말씀허시니 말이 지, 광해조(光海朝) 때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임진란(壬辰亂) 때 명(明)의 구원을 받았지만, 명이 청 태조(淸太祖)에게 시달리게 될 때, 이번엔 명이 조선에 구원군을 요구허지 않었습니까?"

"그게 바루 우리 조선서 대의명분론(大義名分論)이 일어난 시조요구려."

"임진란 직후라 조선은 명을 도와 참전할 실력은 전혀 없는데 신하들은 대의명분상, 조선이 명과 함께 망해 버리는 한이라도 그냥 있을 순 없다는 것이 명분파요, 나라는 망하고, 임금 노릇은 그만두드라도 여지껏 왜적에게 시달린 백성을 숨도 돌릴 새 없이 되짚어 도탄에 빠뜨릴 순 없다는 것이 택민파(澤民派)요, 택민론의 주창으로 몸소 폐위(廢位)까지 한 것이 광해군(光海君) 아닙니까?

나라들과 임금들 노름에 불쌍한 백성들만 시달려선 안 된다고 자기가 왕위를 폐리같이 버리면서까지 택민론을 주장한 광해군이, 나는, 백성들은 어찌 됐든지 지배자들의 명분만 찾던 그 신하들보다 몇 배 훌륭했고, 정말 옳은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의리와 명분이라 하드라도 꼭 해외에서 온 이들에게만 편향하는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거야 멀리 해외에서 다년간 조국광복을 위해 싸웠고 이십 칠팔 년이나 지켜 온 고절(孤節)이 있지 않소?"

"저는 그분들의 품상을 굳이 헐하게 알리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지역은 해외든, 해내든,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꾸준히 싸워 온 이면 모도가 다 같이 우리 민족의 공경을 받어 옳을 것이고, 풍상이라 혈투라 하나 제 생각엔 실상 악형에 피가 흐르고, 추위에 손발이 얼어빠지고 한 것은 오히려 해내 에서 유치장으로 감방으로 끌려 다니며 싸워온 분들이 몇 배 더 했으리라고는 생각합니다.

육체적 고초뿐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매수하는 가지가지 유인과 협박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해내에서 열 번을 찍히어도 넘어가지 않고 싸워낸 투사라면 나는 그런 어른이 제일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공은 그저 공산파만 두둔하시는군!"

"해내엔 어디 공산파만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번엔 공산당이 무산계급혁명으로가 아니라 민족의 자본주의적 민주혁명으로 이미 노선(路線)을 밝혀 논 것은 무엇보다 현명했고, 그랬기 때문에 좌우익의 극단적 대립이 원칙상 용허되지 않아서 동포의 분열과 상쟁을 최소한으로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조선민족을 위해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난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잘 못 알아듣겠소만 그저 공산당 잘못입네다."

"어서 약주나 드십시다."

"우리 늙은 게야 뭘 아오만."

김 직원은 술이 약한 편이었다. 이내 얼굴에 취기가 돌며,

"어째 우리 같은 늙은거기로 꿈이 없었겠소? 공산파만 가만있어 주면 곧 독립이 될 거구, 임시정부 요인들이 다 고생허신 보람있게 제자리에 턱턱 앉어 좀 잘 다스려 주겠소? 공연히 서로 싸우는 바람에 신탁 통치 문제가 생긴 것이오. 안 그렇고 무어요?"

하고 저윽 노기를 띄운다. 김 직원은, 밖에서는 소련(蘇聯), 안에서는 공산당이 조선독립을 방해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역사적, 또는 국제적인 이해가 없이 단순하게, 독립전쟁을 해 얻은 해방으로 착각하는 사람에겐 여간 기술로는 계몽이 불가능하고, 현 자신에게 그런 기술이 없음을 깨닫자 그는 웃는 낯으로 음식을 권했을 뿐이다.

김 직원은 그 이튿날도 현을 찾아왔고 현도 그 다음날은 그의 숙소로 찾아갔다. 현이 찾아간 날은,

"어째 당신넨 탁치 받기를 즐기시오?."

하였다.

"즐기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즐겁지 않은 것도 임정(臨政)에서 반탁을 하니 임정에서 허는 건 덮어놓고 반대하기 위해 서 나중엔 탁치까지를 지지한단 말이지요?"

"직원 님께서도 상당히 과격하십니다 그려."

"아니, 다 산 목숨이 그러면 삼국 외상헌테 매수해서 탁치지지에 잠자코 물러가야 옳소?"

"건 좀 과하신 말씀이구! 저는 그럼, 장래가 많아서 무엇에 팔려서 삼상회담을 지지허는 걸로 보십니까?"

그 말에는 대답이 없으나 김 직원은 현의 태도에 그저 못마땅한 눈치만은 노골화하면서 있었다. 현은 되도록 흥분을 피하며, 우리 민족의 해방은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국제사정의 영향으로 되는 것이니까 조선 독립은 국제성(國際性)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삼상회담의 지지는 탁치 자청이나 만족이 아니라 하나는 자본주의 국가요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인 미국과 소련이 그 세력의 선봉들을 맞대인데다가 조선이란 국제간에 공개적(公開的)으로 조선의 독립과 중립성이 보장되어야지, 급히 이름만 좋은 독립을 주어 놓고 소련은 소련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정치 경제 모두가 미약한 조선에 지하외교를 시작하는 날은, 다시 이조 말(李朝末)의 아관파천(俄館播遷)식의 골육상쟁과 멸망의 길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까 모처럼 얻은 자유를 완전독립에까지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왕조(李王朝)의 대한(大韓)이 독립전쟁을 해서 이긴 것이 아닌 이상, '대한' '대한' 하고 전제 제국(專制帝國) 시대의 회고감(懷古感)으로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은 조선민족을 현실적으로 행복되게 지도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

지금 조선을 남북으로 갈라 진주해 있는 미국과 소련은 무엇으로 보나 세계에서 가장 실제적인 국가들인만치 조선민족은 비실제적인 환상이나 감상(感傷)으로가 아니라 가장 과학적이요, 세계사적(世界史的)인 확실한 견해와 준비가 없이는 그들에게 적정한 응수(應酬)를 할 수 없다는 것,

현은 재주껏 역설해 보았으나 해방 이전에는 현 자신이 기인여옥(其人如玉)이라 예찬한 김 직원은, 지금에 와서는 돌과 같은 완강한 머리로 조금도 현의 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다만 같은 조선사람인데 '대한'을 비판하는 것만 탐탁치 않았고 그것은 반드시 공산주의의 농간이라 자가류(自家流)의 해석을 고집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