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 한동안 시골서 붕어나 보고 꾀꼬리나 듣던 단순해진 눈과 귀가 이 대회에서 다시 한번 선명하게 느낀 것은 팟쇼 국가의 문화 행정의 야만성이었다.

어떤 각하 자리는 심지어 히틀러의 말 그대로 문화란 일단 중지했다가도 필요한 때엔 일조일석에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니 문학이건 예술이건, 전쟁 도구가 못되는 것은 아낌없이 박멸하여도 좋다 하였고 문화의 생산자인 시인이며 평론가며 소설가들도 이런 무장각하(武裝閣下)들의 웅변에 박수갈채할 뿐 아니라 다투어 일어서, 쓰러져 가는 문화의 옹호이기보다는 관리와 군인의 저속한 비위를 핥기에만 혓받닥의 침을 말리었다.

그리고 현의 마음을 측은케 한 것은 그 핏기 없고 살 여윈 만주국 작가의 서투른 일본말로의 축사였다. 그 익지 않은 외국어에 부자연하게 움직이는 얼굴은 작고 슬프게만 보였다. 조선문인들의 일본말은 대개 유창하였다. 서투른 것을 보다 유창한 것을 보니 유쾌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얄미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차라리 제 소리 외에는 옮길 줄 모르는 개나 도야지가 얼마나 명예스러우랴 싶었다. 약소 민족은 강대 민족의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부터가 비극의 감수(甘受)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일본 작가들의 축사나 주장은 자연스럽게 보이고 옳게 생각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현의 생각엔 일본인 작가들의 행동이야말로 이해하기 곤란하였다. 한때는 유종열(柳宗悅) 같은 사람은,

"동포여 군국주의를 버려라. 약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일본의 명예가 아니다. 끝까지 이 인륜(人 倫)을 유린할 때는 세계가 일본의 적이 될 것이니 그때는 망하는 것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아닐 것인가?"

하고 외치었고 한때는 히틀러가 조국이 없는 유태인들을 추방하고 진시황(秦始皇)처럼 번문욕례(繁文褥禮)를 빙자해 철학, 문학을 불지를 때 이전에 제법 항의를 결의한 문화인들이 일본에도 있지 않았는가?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찍소리도 없는 것인가? 조선인이나 만주인의 경우보다는 그래도 조국이나 저희 동족에의 진정한 사랑과 의견을 외칠 만한 자유와 의무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진정한 문화인의 양심이 아직 일본에 있다면 조선인과 만주인의 불평을 해결은커녕 위로조차 아니라 불평할 줄 아는 그 본능까지 마비시키려는 사이비(似而非) 종교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저희 민족문화의 발원지(發源地)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선의 문화나 예술을 보호는 못할망정, 야만적 관료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어의 말살과 긴치 않은 동조론(同調論)이나 국민극(國民劇)의 앞잡이 따위로나 나와 돌아다니는 꼴들은 반세기의 일본문화란 너무나 허무한 것이 아닌가?

물론 그네들도 양심 있는 문화인은 상당한 수난(受難)일 줄은 안다. 그러나 너무나 태평무사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서 펀뜻 박수소리에 놀라는 현은, 차츰 자기도 등단해야 될, 그 만주국 작가보다 더 비극적으로 얼굴의 근육을 경련시키면서 내용이 더 구린 일본어를 배설해야 될 것을 깨달을 때, 또 여태껏 일본 문화인들을 비난하며 있던 제 속을 들여다볼 때 '네 자신은 무어냐? 네 자신은 무엇하러 여기 와 앉아 있는 거냐?'

현은 무서운 꿈속이었다. 뛰어도뛰어도 그 자리에만 있는 꿈속에서처럼 현은 기를 쓰고 뛰듯 해서 겨우 자리를 일어섰다. 일어서고 보니 걸음은 꿈과는 달라 옮겨지었다. 모자가 남아 있는 것도 인식 못하고 현은 모―든 시선이 올가미를 던지는 것 같은 회장을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말았다.

'어찌 될 것인가? 의장 가야마 선생은 곧 내가 나설 순서를 지적할 것이다. 문인보국회 간부들은 그 어마어마한 고급관리와 고급군인들의 앞에서 창씨 안한 내 이름을 외치면서 찾을 것이다!'

위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우선 현은 변소로 들어섰다. 내려오는 사람은 절거덕 절거덕 칼 소리가 났다. 바로 이 부민관 식장에서 언젠가 한번 우리 문인들에게, 너희가 황국신민으로서 충성하지 않을 때는 이 칼이 너희 목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하던 그도 우리 동포인 무슨 중쇠인가 그 자인지도 모르는데 절거덕 소리는 변소로 들어오는 눈치다.

현은 얼른 대변소 속으로 들어섰다. 한참 만에야 소변을 끝낸 칼 소리의 주인공은 나가 버리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이내 다른 구두소리가 들어선다. 누구이든 이 속을 엿볼 리는 없을 것이다. 현은, 그 시골서 낚시질을 가던 길 산등성이에서 순사부장과 맞딱뜨리었을 때처럼 꼼짝 못하겠다.

변기(便器)는 씻겨 내려가는 식이나, 상당한 무더위와 독하도록 불결한 데다. 현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아무리 유치장이나 감방 속이기로 이다지 좁고 이다지 더러운 공기는 아니리라 싶어 사람이 드나드는 곳 치고 용무(用務) 이외에 머무르기 힘든 곳은 변소 속이라 느낀 때, 현은 쓴웃음도 나왔다.

먼― 삼층 위에선 박수소리가 울려왔다. 그리고는 조용하다. 조용해진 지 얼마 만에야 현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맨머리 바람인 채, 다시 한번 될 대로 되어라 하고 시내에서 그 중 동뜬 성북동에 있는 친구에게로 달려오고 말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