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미국 군대가 들어와 일본 군대의 총부리는 우리에게서 물러섰으나 삐라가 주던 예감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그들의 군정(軍政)을 포고하였다. 정당(政黨)은 누구든지 나타나란 바람에 하룻밤 사이에 오륙십의 정당이 꾸미어졌고,

이승만 박사가 민족의 미칠 듯한 환호 속에 나타나 무엇보다 조선민족이기만 하면 우선 한데 뭉치고 보자는 주장에 그 속에 틈이 있음을 엿본 민족반역자들과 모리배들이 나서 활동을 일으키어, 뭉치는 것은 박사의 진의와는 반대의 효과로 일제시대 비행기회사 사장이 새로 된 것이라는 국민항공회사에도 나타나는 것 같은 일례로, 민심은 집중이 아니라 이심이요, 신념이기보다 회의(懷疑)의 편이 되고 말았다.

민중은 애초부터 자기 자신들의 모―든 권익을 내어 던지면서까지 사모하고 환성하던 임시정부라 이제야 비록 자격은 개인으로 들어왔더라도 그 후의 기대의 신망은 그리로 돌릴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인이나 단체나 습관이란 이처럼 숙명적인 것인가. 해외에서 다년간 민중을 가져 보지 못한 임시정부는 해내에 들어와서도, 화신 앞 같은 데서 석유상자를 놓고 올라서 민중과 이야기할 필요는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인공(人共)과 대립만이 예각화(銳角化)되고, 삼팔선(三八線)은 날로 조선의 허리를 졸라만 가고, 느는 건 강도요, 올라가는 건 물가요, 민족의 장기간 흥분하였던 신경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만 가는 차에 탁치(託治) 문제가 터진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만 내정을 잃고 말았다. 여기 저기서 탁치 반대의 아우성이 일어났다. 현도 몇 친구와 함께 반탁 강연에 나갔고 그의 강연 원고는 어느 신문에 게재도 되었다.

그러나 현은, 아니 현만이 아니라 적어도 그날 현과 함께 반탁 강연에 나갔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정정했고, 이내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탁치 문제란 그렇게 간단히 규정할 것이 아님을 차츰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을 제일 먼저 지적한 것이 조선공산당으로, 그들의 치밀한 관찰과 정확한 정세 판단에는 감사하나, 삼상회담 지지가 공산당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부의 오해를 더 사고 나아가선 정권 싸움의 재료로까지 악용 당하는 것은 불행 중 거듭 불행이었다.

"탁치 문제에 우린 너무 경솔했소!"

"적지 않은 과오야!"

"과오? 그러나 지금 조선민족의 심리론 그리 큰 과오라곤 할 수 없지. 또 민족적 자존심만을 이만 침은 표현하는 것도 좋고."

"글세 내용을 알고 자존심만 표현하는 것과 내용을 모르고 허턱 날뛰는 것과 방법이 다를 거 아니냐 말이야."

"그렇지! 조선민족에게 단끼만 있고 정치적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게 드러나니 자존심인들 무슨 자존심이냐 말이지."

"과오 없이 어떻게 일하오? 레닌 같은 사람도 과오 없인 일 못한다고 했고 과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일 안 하는 사람이라 한 거요. 우리 자신이 깨달은 이상 이 미묘한 국제노선을 가장 효과적이 게 계몽에 힘 쓸 것뿐이오."

현서껀 회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앉았을 때다. 이런 데는 어울리지 않는 웬 갓 쓴 노인이 들어선 것이다.

"오!"

현은 뛰어 마중 나갔다. 해방 이후, 현의 뜻 속에 있어 무시로 생각나던 김 직원의 상경이었다.

"직원 님!"

"현 선생!"

"근력 좋으셨습니까?"

"좋아서 이렇게 서울 구경 왔소이다."

그러나 삼팔 이북에서라 보행과 화물 자동차에 시달리어 그런지 몹시 피로하고 쇠약해 보였다.

"언제 오셨습니까?"

"어제 왔지요."

"어디서 유허셨습니까?."

"참, 오는 길에 철원 들러, 댁에서들 무고허신 것 뵈왔지요. 매우 오시구 싶어들 합디다."

현의 가족들은 그간 철원으로 나왔을 뿐, 아직 서울엔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잘들 있으면 그만이죠."

"현 공이 그저 객지시게 다른 데 유헐 곳부터 정하고 오늘 찾어왔지요. 그래 얼마나들 수고허시오."

"저희야 무슨 수고랄 게 있습니까? 이번에 누구보다도 직원 님께서 얼마나 기쁘실까 허구 늘 한 번 뵙구 싶었습니다. 그리구 그때 읍에 가셔선 과히 욕보시지나 않으셨습니까?"

"하마트면 상투가 잘릴 번 했는데 다행히 모면했소이다."

마침 점심때도 되고 조용히 서로 술회(述懷)도 하고 싶어 현은 김 직원을 모시고 어느 구석진 음식점으로 나왔다.

"현 공, 그간 많이 변하셨다구요?"

"제가요?"

"소문이 매우 변허셨다구들."

"글쎄요."

현은 약간 우울했다. 현은 벌써 이런 경험이 한두 번째 아니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에는 막역한 지기(知己)여서 일조유사한 때는 물을 것도 없이 동지일 것 같던 사람들이 해방 후, 특히 정치적 동향이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뚜렷이 갈리면서부터는, 말 한두 마디에 벌써 딴 사람처럼 서로 경원(敬遠)이 생기고 그것이 대뜸 우정에까지 거리감(距離感)을 자아내는 것을 이미 누차 맛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