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떠난 지 이십여 일 동안에 민은 무섭게 수척하였다. 얼굴에는 두 눈만 있는 것 같고 그 눈도 자유로 돌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두 무릎 위에 늘인 팔과 손에는 혈관만이 불룩불룩 솟아 있고 정강이는 무르팍 밑보다도 발목이 더 굵었다. 저러고 어떻게 목숨이 붙어 있나 하고 나는 이 해골과 같은 민을 보면서,

“요새는 무얼 잡수세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의 귀가 여간한 소리는 듣지 못할 것같이 생각됐던 까닭이다.

민은 머리맡에 삼분의 이쯤 남은 우유 병을 가리키면서,

“서울 있는 매부가 돈 오원을 차입을 해서 날마다 우유 한 병씩 사먹지요. 그것도 한 모금 먹으면 더 넘어가지를 않아요. 맛은 고소하건만 목구멍에 넘어를 가야지, 내 매부가 부자지요. 한 칠백 석 하고 잘 살아요. 나가기만 하면 매부네 집에 가 있을 텐데, 사랑도 널찍하고 좋지요. 그래도 누이가 있으니깐, 매부도 사람이 좋구요. 육회도 해 먹고 배갈도 한잔씩 따뜻하게 데워먹고 살아날 것도 같구먼!”

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매부가 부자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또 민의 바로 곁에 자리를 잡게 된 윤은 부채를 딱딱거리며,

“그래도 매부는 좀 사람인 모양이지? 집에선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단 말여? 이봐, 내 말대로 하라닝게. 간수장한테 면회를 청하고 집에 있는 세간을 다 팔아서 먹구푼 것 사먹기도 하고, 변호사를 대어서 보석 청원도 해요. 저렇게 송장이 다 된 것을 보석을 안 시킬 리가 있나? 인제는 광대뼈꺼정 빨갛다닝게.

저렇게 되면 한 달을 못 간다 말이어. 서방이 다 죽게 돼도 모르는 체하는 열아홉 살 먹은 계집년을 천냥을 남겨주겠다고, 또 그까진 자식새끼, 나 같으면 모가지를 비틀어 빼어버릴 테야! 저 봐. 할딱할딱하는 게 숨이 목구멍에서만 나와. 다 죽었어, 다 죽었어.”

하고 앙잘거린다.

“글쎄, 이 자식이 오래간만에 만났거든 그래도 좀 어떠냐 말이나 묻는 게지. 그저 댓바람에 악담이야? 네 녀석의 악담을 며칠 안 들어서 맘이 좀 편안하더니 또 요길 왔어? 너도 손발이 통통 분 게 며칠 살 것 같지 못하다. 아이고 제발 그 악담 좀 말아라.”

민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눕는다.

이 방에는 민 외에 강이라고 하는 키 커다랗고 건장한 청년 하나가 아랫배에 붕대를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어떤 신문 지국 기자로서, 과부 며느리와 추한 관계가 있다는 부자 하나를 공갈을 해서 돈 천육백 원을 빼앗아 먹은 죄로 붙들려온 사람이라고 하며, 대단히 성미가 괄괄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참지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끔 윤과 정을 몰아세웠다.

윤이 민을 못 견디게 굴면 반드시 윤을 책망하였고, 정이 윤을 못 견디게 굴면 또 정을 몰아세웠다. 정과 윤은 강을 향하여 이를 갈았으나 강은 두 사람을 깍정이같이 멸시하였다. 윤 다음에 정이 눕고 정의 곁에 강이 눕고, 강 다음에 내가 눕게 된 관계로 강과 정과가 충돌할 기회가 자연 많아졌다. 강은 전문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식이 상당하여서 정이 아는 체하는 소리를 할 때마다 사정없이 오금을 받았다.

“어디서 한 마디 두 마디 주워들은 소리를 가지고 아는 체하고 지절대오? 시골 구석에서 무식한 농민들 속여먹던 버르장머리를 아무 데서나 하려 들어? 싱글벙글하는 당신 상판대기에 나는 거짓말장이오 하고 뚜렷이 써 붙였어. 인젠 낫살도 마흔댓 살 먹었으니 죽기 전에 사람 구실을 좀 해보지.

댁이 의학은 무슨 의학을 아노라고 걸핏하면 남에게 약 처방을 하오? 다른 사기는 다 해 먹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의원노릇을랑 아예 말어. 침도 아노라, 한방의도 양의도 아노라, 그렇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신이 그 따위로 사람을 많이 속여먹었으니 배때기가 온전할 수가 있나? 욕심은 많아서 한끼에 두 사람 세 사람 먹을 것을 처먹고는 약을 처먹어, 물을 처먹어, 그리고는 방귀질, 또 똥질, 트림질, 게다가 자꾸 토하기까지 하니 그놈의 냄새에 곁에 사람이 살 수가 있나?

그렇게 처먹고 밥주머니가 늘어나지 않어? 게다가 한다는 소리가 밤낮 거짓말 - 싱글벙글 웃기는 왜 웃어? 누가 이쁘다는 게야? 알콜 솜으로 문지르기만 하면 상판대기가 예뻐지는 줄 아슈? 그 알콜 솜도 나랏돈이오. 당신네 집에서 언제 제 돈 가지고 알콜 한병 사봤어? 벌써 꼬락서니가 생전 사람 구실 해보기는 틀렸소마는, 제발 나 보는 데서마는 그 주둥아리 좀 닫치고 있어요.”

강은 자기보다 근 이십 년이나 나이 많은 정을 이렇게 몰아세웠다.

한번은 점심 때에 자반 며루치 한 그릇이 들어왔다. 이것은 온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다. 며루치야 성한 것은 한 개도 없고, 꼬랑지, 대가리 모두 부스러진 것 뿐이요, 게다가 짚 검불이며, 막대기며, 별의별 것이 다 섞여 있는 것들이나, 그래도 감옥에서는 한 주일에 한 번이나 두 주일에 한 번밖에는 못 얻어먹는 별미어서, 이러한 반찬이 들어오는 날은 모두들 생일이나 명절을 당한 것처럼 기뻐하였다.

정은 여전히 밥 받아들이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이 며루치 그릇을 받아서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살이 많은 것은 골라서 제 그릇에 먼저 덜어놓고, 대가리와 꼬랑지만을 다른 네 사람을 위하여 내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정이 가진 것은 절반은 다 못되어도 삼분의 일은 훨씬 넘었다. 그러나 정의 눈에는 그것이 며루치 전체의 오분지 일로 보인 모양이었다.

나는 강의 입에서 반드시 벼락이 내릴 것을 예기하고, 그것을 완화해볼 양으로 정더러,

“여보시오, 며루치가 고르게 분배되지 않은 모양이니 다시 분배를 하시오.”

하였으나, 정은 자기 그릇에 담았던 며루치 속에서 그 중 맛 없을 만한 것 서너 개를 골라서 이쪽 그릇에 덜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대단히 맛나는 듯이 제 그릇의 며루치를 집어먹는데, 그것도 그 중 맛나 보이는 것을 골라서 먼저 먹었다.

민은 아무 욕심도 없는 듯이 쌀 뜨물 같은 미음을 한 모금 마시고는 놓고, 또 한 모금 마시고는 놓고 할 뿐이요, 며루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으나, 윤은 못마땅한 듯이 연해 정을 곁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래도 며루치를 골라 먹고 있었다. 강만은 며루치에는 젓가락을 대어보지도 않고, 조밥 한 덩이를 다 먹고 나더니마는 며루치 그릇을 들어서 정의 그릇에 쏟아버렸다. 나도 웬일인지 며루치에는 젓가락을 대지 아니하였다.

정은 고개를 번쩍 들어 강을 바라보며,

“왜, 며루치 좋아 안하셔요?”

“우린 좋아 아니해요. 두었다 저녁에 자시오.”

하고 강은 아무 말 없이 물을 먹고는 제자리에 가서 드러누웠다. 나는 강의 속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몰라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정은 역시 강의 속이 무서운 모양이었으나, 다섯 사람이 먹을 며루치를 게다가 소금 절반이라고 할 만한 며루치를 거진 다 먹고 조금 남은 것을 저녁에 먹는다고 라디에이터 밑에 감추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