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윤의 당숙 되는 면장이 윤의 이론을 믿어서 돈 삼십 원을 보내어주기를 진실로 바랐다. 더구나 윤의 사식 차입이 끊어짐으로부터 내가 먹다가 남긴 밥을 윤과 민이 다투게 되매 그러하였다.
내가 민에게 밥 한 숟갈 준 것이 빌미가 됨인지, 민은 끼니 때마다 밥 한 숟가락을 내게 청하였고, 그럴 때마다 윤은 민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하면 밥그릇을 둘러엎었다. 한번은 윤과 민과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나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서로 주고받고 하였다.
그때에 마침 간수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윤을 나무랐다. 간수가 간 뒤에 윤은 자기가 간수에게 꾸지람 들은 것이 민 때문이라고 하여 더욱 민을 못 견디게 굴었다. 그 방법은 여전히 며칠 안 있으면 민이 죽으리라는 둥, 열 아홉 살 된 민의 아내가 벌써 어떤 젊은 놈하고 붙었으리라는 둥, 민의 아들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놈들이라는 둥 악담이었다.
나는 다시 사식을 중지하여 달라고 간수에게 청하였다.
그러나 내가 사식을 중지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감정을 완화할 수는 없었다. 별로 말이 없던 민도 내가 사식을 중지한 뒤로부터는 윤에게 지지 않게 악담을 하였다.
“요놈, 요 좀도적놈. 그래, 백주에 남의 땅을 빼앗아먹겠다고 재판소 도장을 위조를 해? 고 도장 파던 손목쟁이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을 줄 알구.”
이렇게 민이 윤을 공격하면 윤은,
“남의 집에 불 논 놈은 어떻고? 그 사람이 밉거든 차라리 칼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만 찔러 죽일 게지, 그래, 그집 식구는 다 태워 죽이고 저는 죄를 면하잔 말이지? 너 같은 놈은 자식새끼까지 다 잡아먹어야 해! 네 자식녀석들이 살아 남으면 또 남의 집에 불을 놓겠거든.”
이렇게 대꾸를 하였다.
하루는 간수가 우리 방문을 열어젖히고,
“구십구 호!”
하고 불렀다.
구십구 호를 십오 호로 잘못 들었는지, 윤이 벌떡 일어나며,
“네, 내게 편지 왔능기오?”
하였다.
윤은 당숙 면장의 편지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구십구 호를 십오 호로 잘못 들은 모양이다.
“네가 구십 구호냐?”
하고 간수는 소리를 질렀다.
정작 구십구 호인 민은 나를 부를 자가 천지에 어디 있으랴 하는 듯이 그 옴팍눈으로 팔월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구십구 호, 귀 먹었니?”
하는 소리와,
“이건 눈 뜨고 꿈을 꾸고 있는 셈인가? 단또상이 부르시는 소리도 못 들어?”
하고 윤이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민은 비로소 누운 대로 고개를 젖혀서 문을 열고 섰는 간수를 바라보았다.
“구십구 호, 네 물건 가지고 이리 나와.”
그제야 민은 정신이 드는 듯이 일어나 앉으며,
“우리집으로 내어보내주세요?”
하고, 그 해골 같은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쁜 빛이 드러난다.
“어서 나오라면 나와. 나와 보면 알지.”
“우리집에서 면회하러 왔어요?”
하고 민의 얼굴에 나타났던 기쁨은 반 이상이나 스러져버린다.
간수 뒤에 있던 키 큰 간병부가,
“전방이에요, 전방. 어서 그 약병이랑 다 들고 나와요.”
하는 말에 민은 약병과 수건과 제가 베고 있던 베개를 들고 지척거리고 문을 향하여 나간다. 민은 전방이라는 뜻을 알아들었는지 분명치 아니하였다. 간병부가,
“베개는 두고 나와요. 요 웃방으로 가는 게야요.”
하는 말에 비로소 민은 자기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어서 힘없이 베개를 내어던지고 잠깐 기쁨으로 빛나던 얼굴이 다시 해골같이 되어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다음 방인 이방에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또 문이 닫히고 짤깍 하고 쇠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민이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 어리둥절하여 누울 자리를 찾는 모양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에잇, 고자식 잘 나간다. 젠장, 더러워서 견딜 수가 있나? 목욕이란 한번도 안했으닝게. 아침에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 보셨능기오? 어떻게 생긴 자식인지 새 옷을 갈아입으래도 싫다는고만.”
하고 일변 민이 내어버리고 간 베개를 자기 베개 밑에 넣으며 떠나간 민의 험구를 계속한다 -
“민가가 왜 불을 놓았는지 진상 아시능기오? 성이 민가기 때문에 그랬던지, 서울 민** 대감네 마름 노릇을 수십 년 했지라오. 진상도 보시는 바와 같이 자식이 저렇게 독종으로 깍정이로 생겼으닝게 그 밑에 작인들이 배겨날 게요? 팔십 석이나 타작을 한다는 것도 작인들의 등을 쳐먹은 게지 무엇잉게라오? 그래 작인들이 원망이 생겨서 지주 집에 등장을 갔더라나요. 그래서 작년에 마름을 떼였단 말이오.
그리고 김 무엇인가 한 사람이 마름이 났는데요, 민가 녀석은 제 마름을 뗀 것이 새로 마름이 된 김가 때문이라고 해서 금년 음력 설날에 어디서 만났더라나, 만나서 욕지거리를 하고 한바탕 싸우고, 그리고는 요 뱅충맞은 것이 분해서 그날 밤중에 김가 집에 불을 놨단 말야. 마침 설날 밤이라, 밤이 깊도록 동네 사람들이 놀러다니다가 불이야! 소리를 쳐서 얼른 잡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김가네 집 식구가 죄다 타 죽을 뻔하지 않았능기오?”
하고 방화죄가 어떻게 흉악한 죄인 것을 한바탕 연설을 할 즈음에 간병부가 오는 것을 보고 말을 뚝 끊는다. 그것은 간병부도 방화범인 까닭이었다.
간병부가 다녀간 뒤에 윤은 계속하여 그 간병부들의 방화한 죄상을 또 한바탕 설명하고 나서,
“모두 흉악한 놈들이지요. 남의 집에 불을 놓다니! 그런 놈들은 씨알머리도 없이 없애버려야 하는 기라오.”
하고 심히 세상을 개탄하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