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먹을 때가 되어 정이 일어나 물을 받는 것까지는 참았으나, 밥과 국을 받으려고 할 때에는 윤이 벌떡 일어나 정을 떼밀치고 기어이 제가 받고야 말았다. 창 옆에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방 안에서는 큰 권리로 여기는 것이었다.
정은 윤에게 떼밀치어 머쓱해 물러서면서,
“그렇게 사람을 떼밀 거야 무엇이오? 그러니깐으로 간 데마다 인심을 잃지. 나 같은 사람과는 아무렇게 해도 관계치 않소마는 다른 사람보고는 그리 마시오! 뺨 맞지오! 뺨 맞아요.”
하고 나를 돌아보며 싱그레 웃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는 그만한 일에 성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 함인 것 같으나 그의 눈에는 속일 수 없이 분한 빛이 나타났다.
밥을 먹는 동안 폭풍우 전의 침묵이 계속되었으나 밥이 끝나고 먹은 그릇을 설겆이할 때에 또 충돌이 일어났다. 윤이 사타구니를 내어놓고 있다는 것과 제 그릇을 먼저 씻고 나서 내 그릇과 정의 그릇을 씻는다는 것과 개수통에 입을 대고 기침을 한다는 이유로 정은 윤을 책망하고 윤이 씻어놓은 제 밥그릇을 주전자의 물로 다시 씻어서 윤의 밥그릇에 닿지 않도록 따로 포개놓았다. 윤은 정더러,
“여보, 당신은 당신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 생각은 못하오? 그 주전자 물을 다 써버리면 밤에는 무엇을 먹고 아침에 네 식구가 세수는 무엇으로 한단 말이요? 사람이란 다른 사람 생각을 해야 쓰는 거여.”
하고 공격하였으나 정은 못 들은 체하고 주전자 물을 거진 다 써서 제 밥그릇과 국그릇과 젓가락을 한껏 정하게 씻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양으로 윤과 정과의 충돌은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정은 간병부와 내게 대해서는 아첨에 가까우리만치 공손하였다. 더구나 그가 농업이나, 광업이나, 한방의술이나, 신의술이나 심지어 법률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었고, 또 구변이 좋아서 이야기를 썩 잘하기 때문에 간병부들은 그를 크게 환영하였다.
이렇게 잠깐 동안에 간병부들의 환심을 샀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그릇씩 받아야 할 죽이나 국을 두 그릇씩도 받고, 또 소화약이나 고약이나 이러한 약도 가외로 더 얻을 수가 있었다. 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졸라대면 간병부들은 여간한 것은 거절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밥을 한 덩이씩 가외로 얻어서 맛날 듯한 것을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골라 먹고 그리고 남은 찌꺼기를 행주에다가 싸고 소금을 치고 그리고는 그것을 떡반죽하는 듯이 이겨서 떡을 만들어서는 요리로 한입, 조리로 한입 맛남직한 데는 다 뜯어먹고, 그리고 나머지를 싸두었다가 밤에 자러 들어온 간병부에게 주고는 크게 생색을 내었다. 한번은 정이 조밥으로 떡을 만들어 나를 돌아보고,
“간병부 녀석들은 이렇게 좀 먹여야 합니다. 이따금 달걀도 사주고 우유도 사주면 좋아하지요. 젊은 녀석들이 밤낮 굶주리고 있거든요. 이렇게 녹여놓아야 말을 잘 듣는단 말이야요. 간병부와 틀렸다가는 해가 많습니다. 그 녀석들이 제가 미워하는 사람의 일을 좋지 못하게 간수들한테 일러바치거든요.”
하면서 이겨진 떡을 요모조모 떼어 먹는다.
“여보, 그게 무에요? 데이상은 간병부를 대할 때 십년 만에 만나는 아자씨나 대한 듯이 살이라도 베어 먹일 듯이 아첨을 하다가 간병부가 나가기만 하면 언필칭 이 녀석 저 녀석 하니 사람이 그렇게 표리가 부동해서는 못쓰는 게여. 우리는 그런 사람은 아니여든. 대해 앉아서도 할 말은 하고 안 할 말은 안 하지. 사내 대장부가 그렇게 간사를 부려서는 못 쓰는 게여!
또 여보, 당신이 떡을 해주겠거든 숫밥으로 해주는 게지 당신 입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밥 알갱이마다 당신의 더러운 침을 발라 가지고, 그리고 먹다가 먹기가 싫으닝게 남을 주고 생색을 낸다? 그런 일을 해선 못쓰는 게여. 남 주고도 죄받는 일이어든. 당신 하는 일이 모두 그렇단 말여.
정말 간병부를 주고 싶거든 당신 돈으로 달걀 한 개라도 사서 주어. 흥, 공으로 밥 얻어서 실컷 처먹고, 먹기가 싫으닝게 남을 주고 생색을 낸다 - 웃기는 왜 웃소, 싱글싱글? 그래 내가 그른 말 해? 옳은 말은 들어두어요. 사람 되려거든. 나, 그 당신 싱글싱글 웃는 거 보면 느글느글해서 배창수가 다 나오려 든다닝게. 웃긴 왜 웃어? 무엇이 좋다고 웃는 게여?”
이렇게 윤은 정을 몰아세웠다.
정은 어이없는 듯이 듣고만 앉았더니,
“내가 할 소리를 당신이 하는구려? 그 배때기나 가리고 앉아요.”
그날 저녁이었다. 간병부가 하루 일이 끝이 나서 빨가벗고 뛰어들어왔다. 정은,
“아이, 오늘 얼마나 고생스러우셨어요? 그래도 하루가 지나가면 그만큼 나가실 날이 가까운 것이 아니오? 그걸로나 위로를 삼으셔야지. 그까진 한 삼사 년 잠깐 갑니다. 아 참, 백호하고 무슨 말다툼을 하시던 모양이든데.”
이 모양으로 아주 친절하게 위로하는 말을 하였다. 백호라는 것은 다음 방에 있는 키 작은 간병부의 번호이다. 나도 '이놈 저놈' 하며 둘이서 싸우는 소리를 아까 들었다.
간병부는 감빛 기결수 옷을 입고 제 자리에 앉으면서,
“고놈의 자식을 찢어 죽이려다가 참았지요. 아니꼬운 자식 같으니. 제가 무어길래? 제나 내나 다 마찬가지 전중이고 다 마찬가지 간병부지. 흥, 제 놈이 나보다 며칠이나 먼저 왔다고 나를 명령을 하려 들어? 쥐새끼 같은 놈 같으니. 나이로 말해도 내가 제 형뻘은 되고, 세상에 있을 때에 사회적 지위로 보더래도 나는 면서기까지 지낸 사람인데.
그래 제 따위, 한 자요 두 자요 하던 놈과 같은 줄 알고? 요 놈의 자식 내가 오늘은 참았지마는 다시 한번만 고 따위로 주둥아리를 놀려봐? 고놈의 아가리를 찢어놓고 다릿마댕이를 분질러놀걸. 우리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하고야 마는 사람이어든!”
하고 곁방에 있는 '백호'라는 간병부에게 들리라 하는 말로 남은 분풀이를 하였다. 정은 간병부에게 동정하는 듯이 혀를 여러 번 차고 나서,
“쩟쩟, 아 참으셔요. 신상 체면을 보셔야지, 고까짓 어린애녀석하고 무얼 말다툼을 하세요. 아이 나쁜 녀석! 고 녀석 눈깔딱지하고 주둥아리하고 독살스럽게도 생겨먹었지. 방정은 고게 무슨 방정이야? 고 녀석 인제 또 옥에서 나가는 날로 또 뉘 집에 불놓고 들어올걸. 원, 고 녀석, 글쎄, 남의 집에 불을 놓다니?”
간병부는 정의 마지막 말에 눈이 둥그래지며,
“그래, 나도 남의 집에 불놓았어. 그랬으니 어떻단 말이여? 귀신같이 남의 돈을 속여먹는 것은 괜찮고 남의 집에 불놓는 것만 나쁘단 말이오? 원, 별 아니꼬운 소리를 다 듣겠네. 여보, 그래 내가 불을 놓았으니 어떡허란 말이오? 웃기는 싱글싱글 왜 웃어? 그래 백호나 내가 남의 집에 불을 놓았으니 어떡허란 말이야?”
하고 정에게 향하여 상앗대질을 하였다. 정의 얼굴은 빨개졌다. 정은 모처럼 간병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던 것이 그만 탈선이 되어서 이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떠돌면서,
“아니 내 말이 어디 그런 말이오? 신상이 오해지.”
하고 변명하려는 것을 간병부는,
“오해? 육회가 어떠우?”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신상도 불을 놓셨지마는 신상은 술이 취해서 술김에 놓신 것이어든. 그 술김이 아니면 신상이 어디 불 놓실 양반이오? 신상이 우락부락해서 홧김에 때려 죽인다면 몰라도 천성이 대장부다우시니까 사기나 방화나 그런 죄는 안 지을 것이란 말이오! 그저 애매하게 방화죄를 지셨다는 말씀이지요. 내 말이 그 말이거든. 그런데 말이오. 저 백호, 그 녀석이야말로 정신이 말쩡해서 불을 논 것이 아니오? 그게 정말 방화죄거든. 내 말이 그 말씀이야, 인제 알아들으셨어요?”
정은 제 말에 심이라는 간병부의 분이 풀린 것을 보고,
“자 이거나 잡수세요.”
하며 밥그릇 통 속에 감추어두었던 조밥 떡을 내어 팔을 길다랗게 늘여서 간병부에게 준다.
“날마다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오?”
하고 간병부는 그 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