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부가 잠깐 일어나서 간수가 오나 아니 오나를 엿보고 난 뒤에 그 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까부터 간병부와 정과의 언쟁을 흥미 있는 눈으로 흘끗흘끗 곁눈질하던 윤이,

“아뿔싸 신상, 그것 잡숫지 마시오.”

하고 말만으로도 부족하여 손까지 살래살래 내흔들었다.

간병부는 꺼림칙한 듯이 떡을 입에 문 채로,

“왜요?”

하며 제 자리에 와 앉는다. 간병부 다음에 내가 누워 있고, 그 다음에 정, 그 다음에 윤, 우리들의 자리 순서는 이러하였다. 윤은 점잖게 도사리고 앉아서 부채를 딱딱 하며,

“내가 말라면 마슈. 내가 언제 거짓말 했거디? 우리는 목에 칼이 오더라도 바른말만 하는 사람이어든.”

그러는 동안에 간병부는 입에 베어 물었던 떡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지리가미에 싸서 등 뒤에 놓으면서,

“아니, 어째 먹지 말란 말이오?”

“그건 그리 아실 것 무어 있소? 자시면 좋지 못하겠으닝게 먹지 말랑 게지.”

“아이 말해요. 우리는 속이 갑갑해서, 그렇게 변죽만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가슴에 불이 일어나서 못 견디어.”

이때에 정이 매우 불쾌한 얼굴로,

“신상, 그 미친 소리 듣지 마시오. 어서 잡수세요. 내가 신상께 설마 못 잡수실 것을 드릴라구?”

하였건마는 간병부는 정의 말만으로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어서,

“윤 서방, 어서 말씀하시오.”

하고 약간 노기를 띤 어성으로 재차 묻는다.

“그렇게 아시고 싶을 건 무엇 있어서? 그저 부정한 것으로만 아시라닝게. 내가 신상께 해로운 말씀 할 사람은 아니닝게.”

“아따, 그 아가리 좀 못 닥쳐?”

하고 정이 참다 못해 벌떡 일어나서 윤을 흘겨본다.

윤은 까딱 아니하고 여전히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당신네 평안도서는 사람의 입을 아가리라고 하는지 모르겠소마는, 우리네 전라도서는 점잖은 사람이 그런 소리는 아니하오. 종교가 노릇을 이십 년이나 했다는 양반이 그 무슨 말버릇이란 말이오? 종교가 노릇을 이십 년이나 했길래도 남 먹으라고 주는 음식에 침만 발러주었지, 십년만 했으면 코발러줄 뻔했소그려?

내가 아까 그러지 않아도 이르지 않았거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려거든 숫으로 덜어서 주는 법이여. 침 묻은 젓가락으로 휘저어가면서 맛날 듯한 노란 좁쌀은 죄다 골라먹고 콩도 이것 집었다가 놓고, 저것 집었다가 놓고, 입에 댔다가 놓고, 노르스름한 놈은 죄다 골라먹고, 그리고는 퍼렇게 뜬 좁쌀, 썩은 콩만 남겨서 제 밥그릇, 죽 그릇, 젓가락 다 씻은 개숫물에 행주를 축여 가지고는 코 묻은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서 떡이라고 만들어 가지고 그런 뒤에도 요모조모 만날 듯싶은 데는 다 떼어먹고 그것을 남겼다가 사람을 먹으라고 주니, 벼락이 무섭지 않어?

그런 것은 남을 주고도 벌을 받는 법이라고 내가 그만큼 일렀단 말이여. 우리는 남의 흠담은 도무지 싫어하는 사람이닝게 이런 말도 안하려고 했거든. 신상, 내 어디 처음에야 말했가디? 저 진상도 증인이어. 내가 그만큼 옳은 말로 타일렀고, 또 덮어주었으면 평안도 상것이 '고맙습니다'하는 말은 못할망정 잠자코나 있어야 할 게지. 사람이면 그렇게 뻔뻔해서는 못쓰는 게어.”

윤의 말에 정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얼굴만 푸르락누르락하더니 얼른 다시 기막히고 우습다는 표정을 하며,

“참 기가 막히오. 어쩌면 그렇게 빤빤스럽게도 거짓말을 꾸며대오? 내가 밥에 모래와 쥐똥, 썩은 콩, 티검불 이런 걸 고르느라고 젓가락으로 밥을 저었지, 그래 내가 어떻게 보면 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신상더러 자시라고 할 사람 같어 보여? 앗으우, 앗으우. 그렇게 거짓말을 꾸며대면 혓바닥 잘린다고 했어. 신상, 아예 그 미친 소리 듣지 마시고 잡수시우. 내 말이 거짓말이면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겠소!”

하고 할말 다 했다는 듯이 자리에 눕는다. 정이 맹세하는 것을 듣고 머리가 쭈뼛함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렇게 영절스럽게 곁에다가 증인을 둘씩이나 두고도 벼락을 맞을 맹세까지 할 수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헤아릴 수 없이 무서운 것이라고 깊이깊이 느껴졌다. 내가 설마 나서서 증거야 서랴? 정은 이렇게 내 성격을 판단하고서 맘 놓고 이렇게 꾸며대인 것이다. 나는,

‘윤씨 말은 옳소, 정씨 말은 거짓말이오.’

이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이러한 용기가 없는 것을 정이 뻔히 들여다본 것이다. 윤도 정의 엄청난 거짓말에 기가 막힌 듯이 아무 말도 없이 딴 데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간병부는 사건의 진상을 내게서나 알려는 듯이 가만히 누워 있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게 직접 말로 묻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내게서 아무 말이 없음을 보고 간병부는 슬그머니 떡을 집어서 머리맡에 밀어놓으며,

“옛소, 데이상이나 잡수시오. 나 두 분 더 쌈 시키고 싶지 않소.”

하고는 쩝쩝 입맛을 다신다. 나는 속으로 참 잘한다 하고 간병부의 지혜로운 판단에 탄복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이 윤에게 대한 깊은 원한을 맺히게 한 원인이었다. 윤이 기침을 하면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라는 둥, 입을 막고 하라는 둥, 캥캥하는 소리를 좀 작게 하라는 둥, 소갈머리가 고약하게 생겨먹어서 기침도 고약하게 한다는 둥, 또 윤이 낮잠이 들어 코를 골면 팔꿈치로 윤의 옆구리를 찌르며 소갈머리가 고약하니깐 잘 때까지도 사람을 못 견디게 군다는 둥, 부채를 딱딱거리지 말라, 핼끔핼끔 곁눈질하는 것 보기 싫다, 이 모양으로 일일이 윤의 오금을 박았다.

윤도 지지 않고 정을 해댔으나, 입심으론 도저히 정의 적수가 아닐 뿐더러,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매양 윤이 곯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코를 골기로 말하면 정도 윤에게 지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정은 이가 뻐드러지고 입술이 뒤둥그러져서 코를 골기에는 십상이었지마는, 그래도 정은, 자기는 코를 골지 않노라고 언명하였다.

워낙 잠이 많은 윤은 정이 코를 고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간병부도 목침에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드는 사람이므로, 정과 윤이 코를 고는 데에 희생이 되는 사람은 잠이 잘 들지 못하는 나뿐이었다. 윤은 소프라노로, 정은 바리톤으로 코를 골아대면 언제까지든지 눈을 뜨고 창을 통하여 보이는 하늘에 별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은 윤의 입김이 싫다 하여 꼭 내 편으로 고개를 향하고 자고, 나는 반듯이밖에는 누울 수 없는 병자이기 때문에 정은 내 왼편 귀에다가 코를 골아 넣었다. 위 확장 병으로 위 속에서 음식이 썩는 정의 입김은 실로 참을 수 없으리만큼 냄새가 고약한데, 이 입김을 후끈후끈 밤새도록 내 왼편 뺨에 불어 붙였다.

나는 속으로 정이 반듯이 누워주었으면 하였으나 차마 그 말을 못하였다. 나는 이것을 향기로운 냄새로 생각해보라, 이렇게 힘도 써보았다. 만일 그 입김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입김이라면 내가 불쾌하게 여기지 아니할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뱃속엔들 똥은 없으며 썩은 음식은 없으랴? 모두 평등이 아니냐?

이러한 생각으로 코고는 소리와 냄새 나는 입김을 잊어버릴 공부를 해보았으나 공부가 그렇게 일조일석에 될 리가 만무하였다. 정더러 좀 돌아누워 달랄까 이런 생각을 하고는 또 하였다. 뒷절에서 울려오는 목탁소리가 들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새벽 목탁소리가 나면 아침 세시 반이다. 딱딱딱 하는 새벽 목탁소리는 퍽으나 사람의 맘을 맑게 하는 힘이 있다.

“원컨대는 이 종소리 법계에 고루 퍼져지이다.”

한다든지.

“일체 중생이 바로 깨달음을 얻어지이다.”

하는 새벽 종소리 귀절이 언제나 생각키었다.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요, 불붙는 집이라면, 감옥은 그중에도 가장 괴로운 데다. 게다가 옥중에서 병까지 들어서 병감에 한정 없이 뒹구는 것은 이 괴로움의 세 겹 괴로움이다. 이 괴로운 중생들이 서로서로 괴로와함을 볼 때에 중생의 업보는 ‘헤여 알기 어려워라’한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