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대단히 만족한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제자리에 와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얼마 아니해서 코를 골았다. 식곤증이 난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아무리 위장이 튼튼한 장정 일꾼이라도 자반 며루치 한 사발을 다 먹고 무사히 내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강도 그 눈치를 알았는지 배에 붕대를 끌러놓고 부채로 수술한 자리에 바람을 넣으면서 픽픽 웃고 앉았더니, 문득 일어나서 물 주전자 있는 자리에 와서 그것을 들어 흔들어보고 그리고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강은 나와 윤에게 물을 한 잔씩 따라서 권하고, 그리고는 자기가 두 보시기나 마시고 그 나머지로는 수건을 빨아서 제 배를 훔치고, 그리고는 물 한 방울도 없는 주전자를 마룻바닥에 내어던지듯이 덜컥 놓고는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강이 하는 양을 보고 앉았던 윤은,
“강 선생, 그것 잘 하셨소. 흥, 이제 잠만 깨면 목구멍에 불이 일어날 것이닝게.”
하고는 주전자 뚜껑을 열어 물이 한 방울도 아니 남은 것을 보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정은 숨이 막힐 듯이 코를 골더니 한 시간쯤 지나서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는 길로 주전자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전자에 물이 한 방울도 없는 것을 보고 와락 화를 내어 주전자를 내어동댕이를 치고 윤을 흘겨보면서,
“그래, 물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자신단 말이오? 내가 아까 물이 있는 걸 보고 잤는데 - 그렇게 남의 생각을 아니하고 제 욕심만 채우니겐두루 밤낮 똥질을 하지.”
하고 트집을 잡는다.
“뉘가 할 소리야? 그게 춘치자명이라는 것이어.”
하고 윤은 점잖을 뺀다.
“물은 내가 다 먹었소.”
하고 강이 나앉는다.
“며루치는 댁이 다 먹었으니, 우리는 물로나 배를 채워야 아니하오? 며루치도 혼자 다 먹고 물도 혼자 다 먹었으면 속이 시원하겠소?”
정은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모양이었다. 그는 누웠다 앉았다 도무지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그가 가끔 일어나서 철창으로 복도를 바라보는 것은 간병부더러 물을 청하려는 것인 듯하였다.
그러나 간병부는 어디 갔는지 좀체로 보이지 아니하였고, 그 동안에 간수와 부장이 두어 번 지나갔으나 차마 물 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이 퍽 오래 지난 것 같았다. 이때에 키 작은 간병부가 왔다. 정은 주전자를 들고 일어나서 창으로 마주 가며,
“햐꾸고오상, 여기 물 좀 주세요? 도무지 무엇을 먹지 못하니깐두루 헛헛증이 나고, 목이 말라서. 물이 한 방울도 없구먼요.”
하고 얼굴 전체가 웃음이 되어 아첨하는 빛을 보인다.
“여기를 어딘 줄 아슈? 감옥살이를 일년이나 해도 감옥소 규칙도 몰라? 저녁 때 아니고 무슨 물이 있단 말이오?”
백호는 이렇게 웃어버린다. 정은 주전자를 높이 들어 흔들며,
“그러니까 청이지요.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주는 것도 급수공덕이라는 말을 못 들으셨어요? 한 잔만 주세요. 수통에서 얼른 길어오면 안되오?”
“그렇게 배도 곯아보고, 목도 좀 말라보아야 합니다. 남의 돈 공으로 먹으려다가 붙들려왔으면 그만한 고생도 안해?”
하고 말하다가 간수 오는 것을 봄인지, 간병부는 얼른 가버리고 만다. 정은 머쓱해서 주전자를 방바닥에 놓고 자리에 와 앉는다. 옆방 장질부사 환자의 간호를 하고 있는 키 큰 간병부가 통행 금지하는 줄 저편에서 고개를 갸웃하여 우리들이 있는 방을 들여다보며,
“정 주사, 물 좀 줄까? 얼음 냉수 좀 줄까?”
하고 환자 머리 식히는 얼음 주머니에 넣던 얼음 조각을 한 줌 들어 보인다. 정은 벌떡 일어나서 창 밑으로 가며,
“규꼬오상, 그거 한 덩이만 던져주슈.”
하고 손을 내민다.
“이건 왜 이래? 장질부사 무섭지 않어? 내 손에 장질부사균이 득시글득시글한다나.”
“아따, 그 소독물에 좀 씻어서 한 덩어리만 던져주세요. 아주 목이 타는 것 같구료. 그렇찮으면 이 주전자에다가 물 한국이만 넣어주세요. 아주 가슴에 불이 인다니깐.”
“아까 들으니까 며루치를 혼자 자시는 모양입디다그려. 그걸 그냥 새겨야지 물을 먹으면 다 오줌으로 나가지 않우? 그냥 새겨야 얼굴이 반드르해진단 말야.”
그리고는 키 큰 간병부는 새끼손가락만한 얼음 한 덩이를 정을 향하고 집어던졌으나, 그것이 하필 쇠 창살에 맞고 복도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키 큰 간병부는 얼음 주머니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정은 제자리에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소금을 자슈. 체한 데는 소금을 먹어야 하는 게야.”
이것은 강의 처방이었다. 정은 원망스러운 듯이 강을 한번 힐끔 돌아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저 타구에 물이 좀 있지 않아? 양추물은 남의 세 갑절 쓰지? 그게 저 타구에 있지 않아? 그거라도 마시지.”
이것은 윤의 말이었다.
“아까 짠 것을 너무 자십디다. 속도 좋지 않은 이가 그렇게 자시고 무사할 리가 있소?”
하고 민이 자기 머리맡에 놓았던 반쯤 남은 우유 병을 정에게 주었다.
“이거라도 자셔 보슈.”
“고맙습니다. 그저 병환이 하루 바삐 나으시고 무죄가 되어서 나갑소사.”
하고 정은 정말 합장하여 민에게 절을 하고 나서 그 우유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람들이 그래서는 못쓰는 것이오. 남을 위할 줄 알아야 쓰는 게지. 남을 괴롭게 하고 비웃고 하면 천벌을 받는 법이오. 하느님이 다 내려다보시고 계시거든!”
정은 이렇게 한바탕 설교를 하고 다시는 물 얻어먹을 생각도 못하고 누워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사람은 아니오. 너무 처먹어서 목이 갈한데다가 또 우유를 먹으면 어떻거자는 말이오? 흥, 뱃속에서 야단이 나겠수. 탐욕이 많으면 그런 법입니다. 저 먹을 만큼만 먹으면 배탈이 왜 난단 말이오? 그저 이건 들여라 들여라니 당신 그러다가는 장 위가 아주 결딴이 나서 나중엔 미음도 못 먹게 되오! 알긴 경치게 많이 알면서 왜 제 몸 돌아볼 줄만은 몰라? 그리고는 남더러 천벌을 받는다고. 인제 오늘 밤중쯤 되면 당신이야말로 천벌 받는 것을 내가 볼걸.”
강은 이렇게 빈정대었다.
이러는 동안에 또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 저녁 한 때만은 사식을 먹는 정은 분명히 저녁을 굶어야 옳을 것이언만, 받아놓고 보니 하얀 밥과 섭산적과 자반고등어와 쇠꼬리 국과를 그냥 내어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저녁을랑 좀 적게 자시지오?”
하는 내 말에 정은,
“내가 점심에 무얼 먹었다고 그러십니까? 왜 다들 나를 철없는 어린애로 아슈?”
하고 화를 내었다.
무명 - 10. 며루치 사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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