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절망적인 눈길로 프리다 고모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시타인베르거가 누나의 안내를 받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누나의 눈은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였다. 눈 가장자리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울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유쾌한 것처럼 웃어 보이면서 시타인베르거를 맞이했다.
"시타인베르거 판사님, 이렇게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우리 시누이 프리다를 소개하죠. 전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시타인베르거는 프리다 고모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시타인베르거입니다. 전에 말씀은 들었지만, 오늘 처음 뵙는군요. 영광입니다."
프리다 고모는 마치 시타인베르거의 옷 치수라도 재는 것처럼 그를 아래위로 깐깐하게 뜯어보았다. 시타인베르거는 고모를 알게 되어서 매우 기쁘며, 이 곳이 고모의 마음에 드시기를 바란다고, 깎듯이 인사를 드렸다. 프리다 고모는 자기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자기 앵무새가 피해를 입지만 않으면 자기도 이곳이 마음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타인베르거는 프리다 고모의 말을 끝까지 듣지는 않았다. 안나의 눈이 빨갛게 된 것을 본 것이다. 그는 안나의 눈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안나는 부엌에서 연기가 나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대번에 안나의 신경을 들고 나왔다. 저렇게 신경이 약해서 걸핏하면 울어대서야 결혼을 해서 남편을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이 안나를 섬겨야 겨우 살까말까 하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를 화난 눈으로 쏘아보면서 말했다.
"고모, 고모가 도대체 우리 안나 신경에 대해서 뭘 한다고 그러세요? 안나는 몸도 건강하고, 신경도 건강한 아이에요. 우리 집안 일을 안나가 모두 도맡아 하지만, 지금까지 안나가 힘들어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요."
프리다 고모는 그러나 사실을 자기가 잘 안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 때 안나는 커피를 끓여 오겠다면서 부엌으로 나갔다.
시타인베르거는 프리다 고모에게 어디 사시느냐고 정중하게 물었다. 프리다 고모는 에르딩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곳이 물가가 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우린 정부에서 받는 연금이 몇 푼 되질 않거든요. 그런데 젊은 판사님께서는 혹시 안스바하에 가 보신 적이 있으세요?"
시타인베르거는 그 곳을 한 번 지나간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혹시 뢰머 씨를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뢰머 씨요?"
"그래요. 오스카 뢰머. 지금 그곳에서 참사관으로 있는 분 말이에요."
"전 잘 모르는 분인데요."
"그렇게 유명한 분을 댁이 모르신다니 이상하군요. 더구나 관리로 일하시는 분이 그 분을 모르신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구요."
"저는 그 고장을 그저 한 번 스쳐 지나친 적밖에 없어서요."
"그래도 그래요. 누구나 한 자리 하는 관리라면 그 분을 다 잘 알 텐데."
"저야 이제 겨우 올챙이 판사에 불과합니다. 어디 한 자리 하는 관리라고 할 수야 있나요. 저 같은 놈이야 그런 높은 분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요."
시타인베르거는 어느 때보다도 늠름하게 말을 잘 받는 것처럼 보였다. 프리다 고모는 자기가 바로 그 뢰머 씨의 부인이 될 뻔했던 여자라는 말을 기어코 시타인베르거에게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오빠들 때문이라우. 내 위로 오빠가 둘 있었는데, 그 둘이 공부를 한답시고 우리집 재산을 탕진해 버린 탓이지요."
시타인베르거는 그러시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평소 시타인베르거가 집에 오면 안나가 그와 함께 있도록 하고, 손수 나가서 커피를 끓였다. 그러나, 오늘은 도중에 한 번도 부엌에 나가 보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프리다 고모를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프리다 고모가 또 무슨 말을 해서 실례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 쪽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놓고 앉아 고모에게 연달아 질문을 해댔다. 산림 감독 마이어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그의 부인은 건강한가, 애들은 어떤 학교에 아니는가, 또 지금도 좋은 포인터 개를 기르고 있는가 등등...
프리다 고모는 그래서 계속해서 그 말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다 고모는 대답을 마치는 즉시 시타인베르거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즉시 또 다른 걸 묻곤 했다. 그러는 동안 멀거니 앉아 있던 시타인베르거는 부엌에 가서 연기 나는 것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기분 좋게 웃으며 어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가 나가자, 어머니는 그가 이렇게 사람이 침착하고 참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고모는 여전히 밉살스러운 말만 꺼냈다.
"난 또 사진이 잘못 나온 거라고 해서 실물이 사진보다 나은 줄 알았지 뭐유. 이제 보니 그 반대구려. 실물이 오히려 훨씬 더 사팔뜨기가 심하지 뭐야."
그러나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화도 내지 않았다. 고모에게 산림 감독 마이어 씨나 그의 개나 그의 아이들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고모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싹 무시한다는 듯, 혼자서 뜨개질만 열심히 했다. 프리다 고모는 몇 번 더 말을 내뱉어 보았지만, 어머니가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자 머쓱해지는 모양이었다.
그 때 안나가 쟁반에 커피 주전자와 커피 잔을 받쳐들고 왔다. 시타인베르거는 그 뒤에 따라 들어오면서 자기가 뭐 거들어 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와 나 셋이서만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듯, 시타인베르거가 무슨 소리만 하면 즐겁게 웃었다. 안나도 웃었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만은 웃지 않았다. 웃는 대신 무슨 고약한 계획을 세우는지 코만 비벼댔다.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에게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고모는 맛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네가 받는 연금으로는 커피를 사 마실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시타인베르거가 입을 열었다.
"그것 참 안 됐군요. 이 집 커피는 세상에서 제일 맛이 좋은 커피인데, 그걸 모르시다니요. 특히 안나 양이 끓였을 때는 그 맛이 더욱 좋지요."
프리다 고모는 시타인베르거에게 언제나 그렇게 커피를 즐기느냐고 몰었다. 시타인베르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깔깔 웃으면서 남자들은 커피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시타인베르거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을 나온 남자들은 대학 시절에 맥주를 퍼 마시던 버릇 때문에 맥주나 좋아하지,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타인베르거도 웃으면서, 자기는 부자가 아니어서 맥주는 못 마시고, 커피만 마시면서 대학을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는 그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왜 믿을 수 없다는 거죠, 고모? 술을 좋아하고 안하고는 체질에 따라 다른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인 거에요, 고모."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는 고개를 저었다.
악동 일기 (2) - 프리다 고모(6)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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