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는 우리가 그 방에서 나갈 때까지도 몸을 부르르 떨며 날개털을 추스리고 있었다.
"우리 불쌍한 로르, 이젠 겁낼 것 없다. 내가 다시는 물벼락을 맞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프리다 고모의 말이었다. 물론 그러시겠지. 프리다 고모는 앵무새를 얼러주더니, 이번에는 나를 무섭게 쏘아 보았다. 앵무새란 놈도 나를 아니꼽게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이제 두고 봐라. 내가 이제 화약을 터뜨리는 날에는 감히 날 쳐다보지도 못할 테니까. 왕창 겁을 먹게 만들어주마...
프리다 고모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고모의 코끝이 아주 하얗게 변한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고모는 숟가락으로 신경질적으로 수프를 저었다.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에게, 무사히 도착한 즐거운 기분을 망치지 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자기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어머니가 먼저 화를 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짐승을 못 살게 구는 집에서는 기쁠 일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이봐요, 고모. 앵무새 몸이 물에 좀 젖은 것 뿐인데 뭘 그러세요."
어머니의 말이었다. 누나도 목욕을 좀 하는 것은 새에게 별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우리가 자기를 그렇게 적대시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미 그런 데 만성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는 것처럼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물론 그 눈에서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옆에서 똑바로 지켜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 프리다 고모는 남을 울릴 줄만 알았지, 자기가 울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의 연극에 속아넘어갔다. 그리고 고모를 가엾게 여겼다. 어머니는 우리 집 식구들이 아버지와 남매 간인 고모를 모두 좋아한다, 그러니까 고모 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편하게 지내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이번만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이 그 동안 자기에게 한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더니 프리다 고모는 갑자기 명랑해졌다. 그것은 그 때 마침 구운 고기가 들어와서, 이빨로 물어뜯을 것이 생긴 까닭만은 아니었다. 고모는 벽난로 위에 있는 총각 판사 시타인베르거의 사진이 생각났던 것이다. 고모는 그 사진을 포크로 가리키면서 말문을 열었다.
"저기 저 사람은 어쩌면 저렇게 못생겼다죠? 사람이 저렇게 못생기기도 쉽지 않은 노릇일거에요."
"어디 누구 말이에요, 고모?"
어머니는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 저기 저 벽난로 위 사진 속 남자 말이에요. 원 끔찍스럽게 못생긴 남자더군요. 눈은 사팔뜨기고, 이마는 툭 불거져 훌렁 까졌고, 볼때기에는 살이 뒤룩뒤룩 하잖아요. 꼭 무슨 벌레 같아요. 그게 어디 사람 얼굴이에요? 저런 사진을 집에다 뭣 때문에 걸어 뒀어요?"
어머니는 얼굴이 빨개졌다. 안나 누나는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뛰어 달아났다. 방문을 통해 안나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옷깃을 가다듬더니, 시타인베르거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손님으로, 결코 남보다 못생긴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툭 불거져 나온 이마가 훌렁 까진데다가, 눈은 사팔뜨기고, 살은 돼지 배때기처럼 흐늘흐늘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사팔뜨기가 아니에요, 고모.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그렇게 보이는 거에요. 그리고 그 사람과 사귀는 것 자체가 명예스러운 일이라구요. 그 사람은 젊은 나이에 법원 판사가 된데다, 법학 박사에요. 아주 유능한 사람이랍니다."
프리다 고모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모로 보아서는 어디까지나 추물인 것이 사실이고, 조금도 유능하거나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그래요. 겉을 보면 속도 알 수 있는 거에요. 난 내가 본 것만 믿지, 남의 소리는 누가 뭐라고 그래도 믿질 않아요. 저 사람 생긴 걸로 봐서 술깨나 좋아하는 주정뱅이 같군요.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해도, 얼마 안 가서 그 못 생긴 얼굴을 시궁창에다 처박고 말 거에요. 그 얼굴에 그러면 제격이겠지."
그러자 어머니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문턱 있는 데서 이렇게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모가 오랜만에 오셨으니, 고모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만은 싸우지 않고 잘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그게 이렇게도 어려울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러고 나서 복도에서 어머니와 안나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뭐라고 달래고 있었지만, 안나는 여전히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는 그제서야 기분이 유쾌해진 것 같았다. 고모는 식사를 계속하면서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연방 갸웃거렸다.
"얘, 루드비히야. 네 누나 안나가 벌써부터 저런 병이 있는 모양이구나."
"무슨 병 말이에요?"
"글쎄, 걸핏하면 우는 그런 병 말이다."
"아뇨, 누나는 전혀 아프지 않아요."
"네가 모르는 소리다. 네 누이는 신경이 너무 허약해. 그러니까 저렇게 별안간 울어대곤 하지. 나는 항상 그 애가 너무 약질이라고 생각해왔어. 정말 사람 구실 하기는 힘든 아이지. 제 구실을 할 아이라면 그래 내 트렁크조차 들지 못할 리가 없지 않니."
그 때였다. 어머니가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 들어오셨다. 그러더니 프리다 고모 보고, 지금 시타인베르거 판사가 커피를 마시러 오셨다면서, 제발 이 때만은 좀 점잖게 행동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형님, 형님은 내가 우체국 화물계원하고 결혼했다고 해서 날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쯤은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판사다, 박사다 하는 것들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우체국 화물계원이나 별다를 것도 하나도 없다구요."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고모를 이대로 버려 두고 손님을 맞으러 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고모의 심술을 이 자리에서 아주 막아 놓아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어 엉거주춤한 채, 고모에게 그만 떠들라고 자꾸 손짓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모는 한층 더 신이 나서 보통 때보다 더 큰 소리로 계속 떠들었다.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사실이 그렇다구요. 게다가 대머리에다 사팔뜨기면, 우체국 화물계원 자격도 안 되는 추남이지 뭐야."
악동 일기 (2) - 프리다 고모(5)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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