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새장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앵무새를 보면서 말했다.

"자 이젠 다 왔단다. 이 집은 비싼 코크스 양탄자로 마루를 온통 덮을 만큼 부잣집이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내는 것도 괜찮을 거다."

그러더니 입술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새장 창살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새를 꼬이는 것이었다.

"자, 우리 예쁜 로르, 아줌마하고 뽀뽀를 해야지?"

앵무새는 횃대 위에서 고모의 입술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그러더니, 부리로 고모의 입술을 콕콕 찍었다. 그 꼴을 보고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결정했다. 하지만 만약 프리다 고모가 사과 상자나, 아니면 최소한 값싼 선물용 과자 상자라도 하나 들고 왔다면 나도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그런 짓까지 즉각 할 생각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고맙게도 프리다 고모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 번도 그래 본 적은 없었다.

항상 맨 손으로 와서는 우리집 식구들만 못살게 신경을 벅벅 긁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앵무새란 놈이 도대체 보기 싫었다. 그 커다란 부리며, 요란스러운 목소리가 나는 딱 질색이었다. 나는 앵무새의 털을 두어 개 잡아 뽑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또 새장 안에다 화약을 넣고 터뜨리면 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봤다.

프리다 고모는 내가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다. 고모는 나를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이 망나니야, 우리 로르에게는 제발 좀 얌전하게 해다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나도 새장 앞으로 걸어가서 입술을 새장 틈에 갖다 댔다. 그러면서 고모처럼 앵무새를 꼬드겨 보았다.

"자, 우리 로르, 나하고 뽀뽀를 한 번 해야지?"

그러나 앵무새는 얼른 뒷걸음질로 달아나더니 한쪽 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두 눈을 치켜 떴다. 마치 내가 머지 않아 화약을 그 안에 집어 넣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동작이다.

"얘, 얘, 넌 어서 저리 비켜라. 네 악마 같은 얼굴을 보면 우리 로르가 기절할지도 몰라."

나는 킬킬 웃으면서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고모는 어머니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 나는 이 때다 하고 얼른 고모 방으로 들어갔다. 가서, 주전자에서 물을 한 입 담아 물었다. 그리고 새장 앞으로 갔다. 앵무새는 또다시 뒤로 멀찍이 물러갔다. 그러나 그래 보았자 같은 새장 안이다. 나는 놈에게 물을 뿜어 흠뻑 젖도록 만들어 주었다. 앵무새는 머리를 흔들며 날개만 퍼득거릴 뿐, 소리도 못 질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재빨리 거실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고모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요즘 지내기가 어떠냐며 이야기하시는 중이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어떻게 지내겠어요."

고모는 돈도 없고, 연금 수당도 얼마 되지 않아 절약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고모부 요제프가 살았을 때 저축을 좀 해 두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요제프 고모부는 수입이 적은데도 그 돈으로 담배를 사 피우고, 1주일에 두 번씩이나 술집에 드나들어 한 푼도 저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면 친정 집이라도 넉넉해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 집 돈은 얘들 아버지가 공부를 한답시고 모두 날려 버렸지 뭐에요. 그러니, 뭐 어디 가서 기대볼 수나 있나요?"

이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아니, 얘 아버지가 공부하느라고 돈을 다 썼다니요?"

"그럼 다 썼지요. 우리집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린 게 우리 오라버니, 얘들 아버지에 누구겠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공부하면서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쓴 것은 한 푼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니, 우리 오라버니 총각 때 일을 형님이 어떻게 그리 잘 아신다고 그러세요?"

"그 이가 자기 공부하던 때 얘기를 가끔 했으니까 잘 알지요. 그이는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장학생이었어요. 그리고 나머지 학비와 하숙비는 가정 교사를 하면서 벌었어요. 대학에 가서도 그랬구요. 대학에 다닐 때는 어떤 남작을 가르쳤다는 얘기도 해주셨어요."

"흥, 오라버니가 꽤나 허튼 소리를 했나 보군. 집에서 학비를 한푼도 가져다 쓰지 않았다구요?"

"그래요. 오히려 가정 교사 노릇을 해서 집에다 매달 얼마씩은 보냈다고 그러시더군요."

"허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요! 오라버니도 어쩌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형님한테 뻥뻥 했을까."

프리다 고모는 음식을 입에다 꾸역꾸역 처넣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대꾸를 하곤 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고모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해 대는 것이 너무 불쾌했던 것이다.

"프리다 고모, 돌아가신 분을 그렇게 중상모략하는 게 아니에요! 그이는 평생 거짓말이나 허튼 소리는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구요!"

프리다 고모는 입으로 순대를 씹느라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음식을 목구멍으로 씹어 삼키자마자 코를 한 번 비비고 나더니 또다시 험담을 시작했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형님. 오라버니가 가정 교사를 하면서 대학까지 다녔다고 그럽시다. 그렇다면 그 많던 우리 집 재산은 다 어디로 간 거에요? 그건 형님보다 내가 훨씬 잘 알아요. 형님은 그 때 우리 오라버닐 알지도 못했잖아요. 하지만 나는 그 양반 동기간이잖아요. 누가 더 잘 알겠어요? 우리 여자 형제 셋은 오라버니 뒤치닥거리 하느라고 재산 한 푼 나누어 받지 못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