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모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에요. 고모네들 시집갈 때 집 한 채씩 사고도 남게 지참금을 가지고 간 것은 왜 생각하지 않아요?"

"집 한 채 사고도 남을 지참금이라고요? 아이고 맙소사. 아이고 하나님! 이건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대체 말도 안 나오는군. 내가 그렇게 지참금을 가진 처녀였다면 왜 그때 판사 시보로 있던 뢰머 씨와 결혼을 못했겠어요? 그 양반은 지금 안스바하 시에서 참사관을 지내고 있다구요. 정말 남부러울 것 하나도 없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어요.

집 한 채 값은커녕, 나한테 재산이 요만큼만 있었어도 그이는 나하고 결혼했을 거에요.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때요? 내가 그이하고 결혼을 했어요? 겨우 우체국 화물계원하고 결혼을 했지 않아요."

"세상에 어쩌면! 그래 고모는 죽은 남편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과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지 않아요?"

"내가 지금 죽은 남편한테 뭐라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저 우리 형제들이 우리집 재산을 그렇게 모두 써버리지만 않았다면 난 지금 참사관 부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라구요."

나는 프리다 고모가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마구 해대는 것을 듣고 몹시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당장 앵무새 새장에다 불꽃놀이를 해대던가 물이라도 한 바가지 더 부어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마침 그 때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셨기 때문에 기회가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자리를 뜨자 프리다 고모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사슴 트로피 밑에는 아버지의 대학 시절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대학 교모를 쓰고, 허리에 칼을 차고 가죽 장화를 신은 차림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이 바로 그 사진과 같았다고 한다. 사진 속 아버지는 카니발 행사의 횃불 행진을 하는 모습이었다. 프리다 고모는 그 사진을 보더니 또 입을 비쭉거리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루드비히야! 저게 너희 아버지란다. 저 사진만 보아도 너희 아버지가 대학생 때 돈을 얼마나 함부로 뿌리고 다녔는지 알 수 있지 않니."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복수를 다짐했다. 그 때 프리다 고모는 아버지 사진 밑 벽난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요즘 우리 누나와 친하게 지내는 총각 판사 시타인베르거의 사진이었다. 고모는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집에 자주 놀러 오는 총각 판사라고 말했다.

"너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총각 판사라구?"

그러면서 고모는 한참 동안 눈을 깜박거렸다.

"그 사람이 너희 집에 왜 자주 오는 거니?"

"커피도 마시고 뭐 그러려고 오는 거죠 뭐. 우리 엄마랑 아주 친해요."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알겠다는 듯이 심술궂은 얼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에?"

고모는 사진을 집어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머리가 너무 많이 벗겨졌고, 엄청난 사팔뜨기에다, 술꾼처럼 살이 쪘다며 흉을 보는 것이었다.

"원, 세상에... 젊은 사람치고 이처럼 볼품없는 사람도 드물겠다. 안 그러냐?"

나 역시 시타인베르거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작자가 무척 힘이 세게 생기고 덩치가 큰데다가 나더러 누나에게 착하게 굴지 않으면 개울에 던져 버리겠다고, 재미없이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자 생긴 것을 보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으로 생겨먹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누나 앞에서 그 자의 사팔뜨기 눈을 흉내내곤 했다. 그러면 누나는 악을 쓰곤 했다. 하지만 프리다 고모가 이렇게 그 작자를 헐뜯는 것을 들으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어머니와 누나에게 고모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두 사람이 다 소리소리 지르고 눈물을 뿌리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일부러 망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어머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고모의 손을 잡으면서 화해를 부탁했다.

"아까는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니 이제 그만두자구요."

프리다 고모는 또 코를 비볐다. 프리다 고모가 코를 비빈 다음에 그 아래에 붙은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향기롭지 못한 것들 뿐이다. 아니나다를까, 자기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라고 우겼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야말로 누이동생들이 제대로 시집도 가지 못하게 만든, 비난 받아서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먼저 화해하자고 말을 꺼내셨는데도 다시 그런 험담을 들고 나오는 것은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곧장 거실에서 나왔다.

"루드비히야, 곧 식사를 할 텐데 어딜 가는 거니?"

어머니가 등 뒤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불규칙 동사 변화를 얼른 좀 들여다보아야겠어요. 배웠던 게 있는데, 딱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자 어머니는 즐거운 듯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그래야지, 식사를 뒤로 미루면 미뤘지 공부는 뒤로 미루는 게 아니야. 어서 가서 공부해라. 너 올 때까지 우리도 식사하지 않고 기다릴 테니까."

"아니에요. 식사 들어오기 전에 금방 끝나요."

나는 요란하게 발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가서 방문을 일부러 큰 소리 나게 열었다 닫았다. 그러고는 발끝으로 가만가만 걸어서 고모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내가 정말 정신을 차려가는지, 요즘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