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안 횃대에 올라 앉아 있던 앵무새는 나를 보더니 부리나케 뛰어내려 한 구석으로 피해 몸을 사렸다. 나는 주전자째 들고 가서 새의 머리통에다 물을 부어 주었다. 앵무새는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놀랄 만큼 큰 소리로 휘파람 같은, 휙! 휙! 하는 소리를 냈다. 마치 내가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 때와 비슷한 소리다. 그러더니 앵무새는 다시 소리쳤다.
"로르 - !"
나는 그 순간 잽싸게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 들었다. 그때 앵무새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거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모가 급히 달려오면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아이구머니나! 도대체 우리 로르가 왜 나를 부를까?"
그리고 한참 동안은 조용했다. 그러더니 곧 프리다 고모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무슨 몹쓸 짓이야, 이 가엾은 새를!"
프리다 고모는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더니 로르가 흠뻑 젖은 꼴을 좀 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개망나니 외에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것은 물론 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 방 앞으로 오시더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정말 불규칙동사를 외우는 것처럼 혼자서 입 속으로 뭔가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혹시나 해서 물었다.
"루드비히야, 네가 앵무새에게 물을 끼얹어서 흠뻑 젖게 만들었니?"
나는 공부에 정신이 팔린 체하면서, 고개를 건성으로 들어 보였다. 물론 어머니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앵무새 말이에요?"
"고모님이 갖고 오신 앵무새 말이다."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됐는데요?"
"갑자기 물벼락을 맞아 함빡 젖지 않았니. 그래서 혹시 네가 그러지 않았나 해서 지금 물어보는 거야."
나는 그 소리에 기분이 몹시 상한 체하면서 이렇게 대꾸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모두 다 내가 했다고 그러는 거에요? 난 지금까지 내 방에서 불규칙 동사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이제 간신히 외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놈이 어떻게 또 동시에 그 방에 나타나서 앵무새에게 물을 끼얹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어머니 뒤에 서 있던 프리다 고모는 내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소리소리 질러댔다.
"네가 아니면 그래 누구란 말이냐! 누가 그랬단 말이야?"
"글쎄요. 알 수 있나요? 하지만, 아마 이 근처에 사는 다른 개구장이들이겠지요. 요즘 그 녀석들 한창 물총 장난을 하고 다니거든요. 아주 멀리까지 물을 쏘아댈 수가 있어요."
"그렇다면 어디 같이 가보자! 가서 조사를 해 보잔 말이다!"
프리다 고모는 악을 썼다. 그래서 나는 프리다 고모 방으로 함께 들어 갔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앵무새는 금방 머리를 날개 밑에 처박으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 나를 겁먹은 눈초리로 두리번두리번 쳐다봤다.
"자, 저것 좀 봐요, 형님! 이 녀석이 여기 왔던 거지 뭐에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로르가 이 녀석을 보고 저렇게 겁을 내겠어요? 우리 로르란 놈은 아주 영리해서 자기를 해친 녀석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구요!"
프리다 고모는 앵무새와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나를 믿어주셨다.
"글쎄, 앵무새가 우리 루드비히를 보고 그러는 것 같기는 한데요... 하지만 우리 루드비히는 제 방에서 불규칙 동사 공부를 하고 있었잖아요?"
"아이고, 형님은 그저 언제나 아이들 말만 믿는구려. 그래 놓으니 아이들이 모두 그 모양 그 꼴이 되는 거에요."
나는 창문을 살폈다. 다행히도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보세요, 고모님. 창문이 열려있잖아요. 이렇게 창문이 열려 있는 것으로 봐서 아이들이 지나가다가 울타리 너머로 물총을 쏜 것이 틀림없어요."
"이 녀석아, 허튼 수작 하지도 마라!"
프리다 고모는 아이들이 물총을 쏴서 맞히기에는 울타리가 높고 멀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창문이 전혀 젖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한 일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고모가 보기는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버티는 데야 별 재주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프리다 고모가 심술궂다고 해도 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물총을 아주 잘 쏜다구요. 아무리 목표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번 겨냥을 했다 하면, 어김없이 맞힌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절대 이 방엔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어른들도 안 계신데 제가 이 방에 무엇 때문에 들어오겠어요?"
"뭣하러 오기는 뭣하러 와? 우리 로르한테 물벼락을 주려고 온 거야!"
"아니, 왜요? 제가 왜 고모님 앵무새에게 물벼락을 꼭 준다는 거에요? 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고모님이 저한테 뭐 그렇게 미운 털이라도 박히셨다는 건가요? 전 도대체 잘 모르겠어요."
문 있는 곳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누나는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 때 테레즈 할멈이 수프를 식탁에 올려 놓았으니 모두 식사하러 오라고 불렀다. 그래서 앵무새의 물벼락 사건은 그걸로 일단 끝이 난 셈이었다. 우리는 모두 식탁으로 가야 했고, 식탁에서는 식탁에서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었으니까.
악동 일기 (2) - 프리다 고모(4)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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