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라는 곳은 말 그대로 미국의 양부모와 결연을 추진하는 단체이다. 그런 곳에 한때나마 찾아갔다는 건 지금까지 도일이 보여온 행동과는 몹시 대치되는 일이다. 그가 원하는 건 뭐든 구입해주는 아버지,어릴 적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아버지로서 조그만 과실도 저지르지 않았던 아버지, 그래서 도일도 세상에서 누구보다 존경하고 있다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또 다른 아버지를 구할 이유가 있었을까?

 

김씨가 자상하고 완벽한 아버지란 건 도일이 내게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사실이다. 녀석은 은근히 자신이 누구보다 원만한 가정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는 걸 뽐내 왔었다. 녀석의 그런 점이 나는 또 마음에 들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미덕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도일은 양연회라는 곳에 왜 갔을까? 도일이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고 말하는 데는 또 다른이유가 있었다. 도일은 평소에 미국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미국인과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저주의 말이나 혐오의 말을 퍼부었다는 건 아니다. 녀석은 나이에 비해 감정의 절제를 잘하는 편이어서 그런 식의 서 짓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미국이란 나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고 그쪽에다 아무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의식적으로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는 누가 미국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대뜸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이따금 거리에서 미국인과 마주쳤을 때 도일은 한번 힐끗 쳐다볼 뿐, 두번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런 때의 녀석의 표정은 싸늘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마치 미국인과 녀석은 잠시나마 같은 길을 걷거나 같은 실내에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는, 그런 숙명적인 타인의 관계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도일은 영어를 씩 잘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는 발 음도 무척 좋았고 어휘도 굉장히 풍부했다. 학과 성적 중에서 영어가 제일 높다는 걸 그 자신이 말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서 허튼소리라도 영어를 입에 올리는 걸 나는 들은 일이 없었다. 언젠가 나는 그의 뛰어난 영어 실력을 염두에 두고 도일에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미국에 가서 더 공부할 생각이 있겠지?”

 

도일은 대 웃음쳤다.

 

“미쳤어요? 그런 돈 있으면 여기서도 책을 갖다가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데 뒷 땜에 그런 델 갑니까?”

 

“그래도 누구나 미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아?”

 

“난 안 그래요. 흥미없어요. 가고 싶은 사람들 실컷 가라지요.”

 

그는 여기서도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자기는 어학만은 철저히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녀석의 말이 전혀 엉터리는 아니라고 해도 다소 무려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 무리한 논법에는 녀석이 어떻게든 미국이란 나라를 회피하려고 하는 흔적이 엿보이는 것이다. 마치 녀석은 앞으로의 자기 삶의 과정에 그 나라가 관련되는 걸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라도 한 듯 보였다. 그랬던 도일이 비록 오래 전 일이라고 하지만 양연에 찾아갔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가면서 도일은 학업 때문에 점점 더 바빠졌다. 학교 수업을 끝낸 다음에도 그는 다시 학원에 나가 공부했다. 어떤 때는 종일 집에서 녀석을 못 만날 때도 있었다. 그가 없을 때도 나는 그의 방에 이따금 들어가서 라디오를 듣거나 전축을 돌리곤 했는데 그건 물론 방주인이 그걸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나는 깝깜한 방에 앉아 있기가 지루해서 라디오나 들을까 하고 도일의 방을 찾아 갔다. 그 방은 이 집 가정부에 의해 언제나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 나는 주인이 없는 빈 방에 들어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의 목록을 하나하나 읽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생활의 발견>이란 책에 눈길이 갔다. 그건 임어당 선생의 수상록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책을 서가에서 뽑아들었다. 그때 사진 한 장이 책갈피 속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 가벼운 호기심에서 나는 그걸 주워들었다. 그건 무척 낡은 흑백사진이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와 역시 그 또래의 계집아이 둘이서 서로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아이들은 영양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배경에 ‘천혜원’이라고 쓰인 입갑판이 보였는데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느 고아원의 입구쯤 되는 것 같았다. 두 아이 모두 옷차림이 남루했는데 사내아이보다 계집애 쪽이 더 측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두 아이는 마치 떨어질 수 없는 오누이처럼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 었다. 나는 사진 속의 사내아이가 누군가를 금방 알아냈다. 비쩍 마른 얼굴로 슬프게 허공을 보고 있는 그 아이가 바로 도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누가 이 비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꼬마애를 지금의 도일이라고 쉽게 믿겠는가? 그건 너무나 엄청난 변화였다.

 

그런데 이 계집아이는 누굴까? 나는 어찐지 그녀가 낯이 익었다. 결국 나는 알아내고 말았다. 얼굴의 몇 가지 특징을 유심히 관찰하자,내가 그린하우스에서 보았던 그 아가씨의 화사한 얼굴이 쉽게 떠올랐다. 이름이 순영이라고 했던가?

 

이 사진을 찍은 건 아마 도일아 김씨를 따라 고아원을 나오기 직 전일 것이다. 어쩌면 그곳을 나오면서, 그러니까 그녀와의 작별을 기념삼아 이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일은 양연에 갔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났을 뿐이라고 내게 거짓말을 했었다.

 

순영이는 도일이 떠나고 얼마 뒤에 그녀 역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서 나온다. 그녀는 그날 이후 줄곧 도일의 소재를 찾았고 이고는 찾아낸다. 그녀에겐 도일이 연인이자 오빠이며 유일한 혈육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혈연관계 같은 건 있을 턱이 없지만 순영으로서는 도일이 말고 혈육의 감정을 느낄 대상이 따로 없다. 그래서 그녀는 한사코 도일에게 가까와지려고 애쓴다. 사실 두 사람은 얼굴이 많이 닮기도 했다.

 

그러나 도일은 순영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녀와 공유했던 세계, 거기서 그는 이미 멀리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혼혈아가 아닌 것이다.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은 얼마나 자기를 채찍질했던가? 순영을 받아들인다는 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혼혈아의 세계로 말이다.

 

이건 내가 순영과 도일의 관계를 두고 한번 멋대로 상상해본 줄 거리다. 내 생각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일로부터 직접 고백을 듣지 못하는 한 그밖에 달리 생각할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