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대낮에 새까만 이불 뒤집어쓰고 마치 만성 결핵환자 같은 창백한 얼굴 누워 있는 걸 보고는 모두 질겁하고 달아나버렸다. 처음에는 나는 방을 혼자 쓰기 위해 거짓으로 환자 같은 모습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 아줌마에게 차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내딴엔 방을 깨끗하게 치우기도 하고 내 자신의 외모를 단정하게 가꿔 보기도 했다.

 

이건 마치 술집색시가 갑자기 없는 모양을 내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명한 손님은 이번에도 나에게 속지 않았다. 아줌마는 내가 그 방에 있는 한 결코 동숙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눈 내린 겨울 아침에 갑자기 나를 쫓아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사정이 급했으므로 새 방을 구하기 위해 정오에 행길로 나왔다.

 

대현동에는 도처에 빈 하숙방이 널려 있었다. 만약 단독으로 쓸 방을 구하기로 했다면 나는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은신처를 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합숙방을 그것도 한 사람은 이미 들어 있고 나 머지 빈 자리의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합숙방을 구했기 때문에 그런 방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단 한번 그런 방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먼저 그 방에 들어있는 기득권자가 노골적으로 나를 배척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대여섯 살이나 어려 보였는데 내가 나이가 많고 또 행색조차 그다지 단정치 않다는 게 맘에 걸린 모양이었다. 복덕방 영감님과 함께 그 집에서 물러나왔을 때는 이미 저녁 어스름이 허공에 깔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지쳤고 방을 구한다는 희망도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에 잠겼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내 하숙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이번에는 그날의 내 운세를 시험하는 기분으로(이미 자포자기 상태였기 때문에 내게 그런 여유가 생겼다), 문득 길가의 허름한 복덕방으로 들어갔다. 노인 두 사람과 오십이 조금 지난 듯한 남자 하나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구하는 방을 설명하자, 노인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머리를 옆으로 들었다.

 

그러자, 나는 두말 없이 돌아섰다. 그때 오십대의 남자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머리를 나이에 안 어울리게 병정처럼 짧게 깎아올렸고 얼굴이나 몸에 살이라곤 붙어 있지 않아서 무척 인색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처음 한 말은 자기는 복덕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놀러온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로 그는 합숙비용으로 독방을 줄 수 있는데 그대신 방이 깝해도 좋겠는가를 내게 물었다.

 

그는 방이 깝깝해서 그 방은 일부러 지금까지 비워두었으며 만약 내가 입주한다면 특별히 종일 전기를 켤 수 있도록 허용하겠고 전기값은 받지 않겠다는 말도 결들였다.

 

“김씨, 잘 생각했어. 공연히 방을 비워두면 될 해?’’

 

노인 한 사람이 오십대 남자에게 말했고 다른 노인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운이 좋으시구려. 아주 잘만났어.”

 

노인의 그 말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깜깜하면 얼마나 깜하랴 - 설마 지옥보다 더할라구. 지옥이 깜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더구나 나는 어지간히 어두운 곳에서는 잘 견만큼 단련이 되어 있다. 나는 즉시 김씨를 따라 나섰다.

 

그의 집은 지척에 있었다. 조그만 기와집인데 대문 - 옆에는 세탁소를 차려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씨는 직접 세탁소 일은 하지 않고 사람을 고용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하숙생을 여 씩 두고 있는 알부자인 셈이었다.

 

나는 주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서 방을 구경했다. 그 방은 마당에서 복도로 들어가면 복도 끝에 있었다. 방은 겨우 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그 방이 그렇게 작다는 것도 전을 켜놓고 나서야 알았다. 출입문의 반대쪽에 제법 큰 유리창이 있어서 다가가 보았더니 창밖이 이웃집의 담벽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방에는 일 년 열두 달 동안 햇빛이 찾아올 수가 없는 셈이다. 그날 밤에 나는 리어카에 이불 보따리와 약간의 가재도구를 고 김씨의 그 방으로 옮겨갔다.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나는 세수를 하려고 아침 일찍 마당의 세면장으로 나갔다. 이 집의 하숙생은 나를 제외하고 네 사람이 있었는데 둘은 직장에 나가고 둘은 학생이었다. 김씨가 전날 저녁에 집안의 그런 실정을 내게 알려 주었었다. 그들은 휴일의 늦잠을 즐기는지 마당에는 아직 얼씬도 하지 않았다.

 

런데 내가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냉수에 얼굴을 씻고 마악 돌아서려는데 밖에서 파란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헐레벌떡 마당으로 뛰어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미끄러운 마당의 얼음 바닥 위로 넘어질 뻔했다.

 

방금 마당으로 들어온 사람이 바로 내가 신의 가장 걸출한 피조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백색혼혈아였던 것이다. 나를 발견한 그녀석도 우 놀란 듯했다. 그는 마당 한 쪽에 갑자기 멈춰서서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말은 없었다. 다고 차 무슨 적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녀석이 이 집의 가족의 한 사람일까? 아니면 하숙생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재빨리 머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맙게도 곧 이 의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안방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때마침 들렸던 것이다.

 

“얘, 도일이 왔니? 빨리 들어와 아침을 먹어야지.”

 

그건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 말소리가 들리자,마당가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던 녀석이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새로운 의문에 사로잡혔다. 아버지 쪽일까? 어머니 쪽일까? 그건 아주 고약스런 상상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녀석과 닮은 데라곤 없었다.

 

김씨는 얼굴이 주먹 만큼 작고 얼굴 빛깔도 구리색이다. 그의 아내는 반대로 머통이 크고 용모는 에스키모 여인처럼 코도 눈도 입술도 모두 넙적넙적하다. 게다가 난장이를 겨우 모면했을 정도로 키가 작았다. 만약 그녀가 정말 녀석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에서 상상을 그쳤다. 아직 정리하지 않은 책보따리가 세 개씩이나 방바닥에 뒹굴고 었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에 정말 뜻밖의 일이 생겼다. 도일이란 녀석이 내 방에 찾아온 것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세상에는 귀빈의 방문이란 말이 있지만 이거야말로 진짜 귀빈의 방문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가장 절묘한 피조물인 녀석이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그건 내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런 일이 있을 만한 개연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내 방은 마당에서도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다. 그런 곳에 처박혀 있는 인간을 못 본 척 무시하고 지난들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 황송스럽고 고마운 심정으로 녀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