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너무어두워요.’’

 

방 안에 들어온 도일이 약간 장난기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게 내 입장을 위로하는 뜻이란 걸 나는 알았다. 도일은 스스럼없이 방바닥에 털씩 주저앉았다. 가까이서 봐도 역시 녀석의 용모는 어느 곳 하나 잡을 데가 없을 만큼 수려하고 단정했다.

 

“아버님에게서 아저씨 얘길 들었어요. 글을 쓰신다더군요.”

 

“아니, . 할일 없으니까 끄적이고 있을 뿐인 걸.”

 

“앞으로 책도 좀 얻어보고 좋은 말씀도 듣고 싶어요. 제가 가끔 놀러와도 괜찮을까요?”

 

“그야 물론이지. 나도 말벗이 없어서 무료할 때가 많다구.”

 

“고마와요. 그런데 저는 전에 아저씨를 본 기억이 있어요.”

 

“나를 봤다구? 어디서야.”

 

“그린하우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걸 봤어요. 그 집엔 아저씨 같은 어른은 없어요. 그래서 특별히 기억하고 있나봐요.”

 

“오, 그랬었군. 내가 우습게 보이지 않았어? 어른이 아이들 속에 섞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모습이 말야. 마치 자신도 아이나 소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았을 걸.”

 

“아닙니다. 조금도 우습지 않았어요. 누가 그걸 보고 우습다고 생각합니까? 어른도 아이스크림은 좋아할 수 있는 거. 안 그런가요?”

 

도일은 완고하게 내 말을 부인했다. 그의 고지식한 말투가 내 맘에 들었다. 말투는 완고했지만 생각은 아주 자유롭고 대범한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이 잘 자라온, 아주 좋은 소년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물론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그린하우스에 자주 가는 거야.”

 

“남이 생각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나하고 의견이 맞는 걸 보니까 우린 친구가 되겠구나. 그렇지?”

 

‘‘그럼요,나도 아저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걸요.”

 

“사실은 나도 너를 그때 봤어. 그래서 아침에 마당에서 너와 마주쳤을 때 조금 놀랐었지.”

 

“왜 놀라셨죠?”

 

나는 잠시 멈칫했다. 막상 그렇게 물어오니까 할 말이 안 떠올랐다. 도일의 눈빛은 맑으면서도 지혜로 가득했다. 섣불리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기와집에서, 더구나 김씨가 주인인 이 집 마당에서 너를 만난 건 뜻밖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날 그린하우스에서 네 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거야. 그때 굉장히 쾌활했었지. 그게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야. 언제쯤 너하고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어.”

 

“아주 잘 되었군요, 이렇게 만나서.”

 

도일은 내가 거짓말을 한 걸 알고 있었으나 더 따지지는 않았다. 사실은 이 점이 녀석의 큰 미덕이었다. 남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을 만큼, 너그러운 성격을 그는 갖고 있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이 자기 약점을 파고드는 걸 허용하지 않을 만큼 그는 빈틈없이 행동했다. 그건 이제 겨우 고학교 이학년의 소년에겐 걸맞지 않는 것이지만 결점일 수는 없었다.

 

녀석의 그 빈틈없는 태도 때문에 나는 몇 가지 궁금한 사실을 하나도 묻지 못했다.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너는 아버지 쪽이냐? 어머니 쪽이냐? 둘 모두 아니라면 언제부터 김씨의 아들이 되었느냐? 그밖에도 궁금한 일이 많았다. 도일과 김씨와의 그 다정한 부자관계에 관해서도 나는 알고 싶었다. 사실은 무엇보다 여기에 홍미가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린하우스에는 자주 안 가는 편이지?”

 

“가끔 가고 싶지만 어찐지 싫어요. 그집 우동 참 맛있던데요.”

 

“그렇다면 싫을 것도 없잖니?”

 

도일이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알면서도 나는 짐짓 이런 말을 했다. 도일은 말이 없었다.

 

“다음번에 나랑 같이 거기 안 갈 거야?”

 

“생각해 보죠.”

 

잠시 후 도일은 일어섰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다 돌아서서 그가 말했다.

 

“저기 건방이 제 방이에요. 저녁식사 하시고 시간 있을 때 놀러 오세요.”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의 초대가 사실은 반가왔다.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도일이 내게 특별한 호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그 한마디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종일 전등을 켜놓고 있다고 해도 그 방에 앉아 있으면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떻게든 구실을 붙여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 심정인데 도일의 초대가 반갑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식사 후에 나는 십 분쯤 시간을 끌다가 도일의 방을 찾아갔다. 그 방은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 있는 방인데 이를테면 이 집에서 두번째로 좋은 방이었다. 그만큼 도일의 양친이 아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중거였다. 막상 도일의 방에 들어간 나는 그들 양친의 아들에 대한 정성에 더욱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