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동에 있는 그린하우스라는 가게는 한때 내가 매우 자주 출입하던 가게다. 우리말로 하면 초록의 집이란 뜻이겠는데 그야 어떻든 나는 그 조그만 가게의 몇가지 메뉴들을 지극히 애용했었다. 거기서 주로 취급하는 건 국수 종류의 음식과 아이스크림으로 대별되는데 국수류에도 비빔국수, 남비국수, 그리고 냉채국수가 있고 아이스크림에는 소프트와 하드의 두 종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건 남비국수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남비국수는 특히 그 고소한 국물이 일품이었고 아이스크림으로 말한다면 이 그린하우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담백함이 있었다.
이 가게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 즉석에서 최신형 크림 제조기를 손님이 보는 앞에서 가동시켜 금방 만들어진 크림을 손님에게 가져온다. 좌석에 앉아서 이윽고 하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조그만 출구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나에겐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이런 얘기보다 정작 내가 그집을 자주 가지 않을 수 없었던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때 나는 하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대현동의 하숙방들에 공통되는 특징의 하나는 방이 형편없이 좁다는 것과 하나는 거의 대부분의 방들이 채광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대낮에도 마치 동굴속에 갇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낮에 마음대로 전등을 켤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런 때는 공연히 비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자연히 낮에는 그 방을 피해서 어딘가 앉아 있을 만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갈 곳을 미리 정하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딘가 찾아갈 장소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인간의 막막한 심정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심정에 내가 빠져 있을 때 나를 구해준 곳이 그린하우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곳에 나가 앉아 있어도 내가 당장 만날 사람이나 기다릴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그것을 혀로 핥는다기보다 표면에서 녹아내리는 액체를 거두어 들이는 정도로 야금야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능하면 시간을 오래 끌었다. 나는 가게에 드나드는 손님들의 행색이나 용모를 감상하기도 하고 최신형 크림 제조기에서 뿌연 아이스크림이 홀러 나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그 가게의 손님들 가운데서 나이가 많은 축에 끼었다. 그곳의 주된 손님은 고등학교 학생이나 대학의 초급생 정도가 고작이었으니 이미 서른을 넘긴 어른인 나는 좀 별난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종업원 아가씨들이나 다른 손님들이 내가 그곳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매우 신기한 듯 흘끔흘끔 내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으나 내가 어떤 때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곳에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누구나 내가 거기 앉아있는 걸 아주 당연하게 보게 되었다. 나 자신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눈길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날 나는 그린하우스에서 아주 낯선 얼굴을 발견하고 무척 흥미를 느낀 일이 있었다. 그 얼굴은 그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주 무더운 대낮이었는데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 언제나 내가 앉아 있던 안쪽 구석자리로 다가갔을 때 이미 그곳에 세 사람의 고등학교 학생 쯤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할 수 없이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내 지정석을 미리 차지하고 있는 손님들 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때 그들 중의 한 사람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전류에 감전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나는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눈빛이 내가 늘 보아오던 몽골리언의 까맣고 다소 음침해 보이는 눈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옅은 갈색이었는데 굉장히 맑고 시원해 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석의 표정에도 전혀 망설임 같은 건 없고 의젓하고 태연했다.
알고보니 그는 백색 혼혈아였다. 물론 그의 머리칼도 열은 갈색이었고 피부빛도 옆에 앉아 있는 그의 친구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될 만큼 허여멀쑥했다.
그는 유창하게 서울의 표준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게 당연한 일이건만 내 귀에는 그게 신기하게 들렸다. 그 녀석은 좌중에서 유난히 말을 많이 했고 그리고 그 태도가 유난히 쾌활했다. 그런 태도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그 녀석의 잘 생긴 용모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 얼굴이야말로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걸작에 해당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결코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조화와 균형이란 측면에서 엄밀하게 따져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보통의 서양인은 코가 지나치게 돌출해서 균형미는 고사하고 위태위태하게 보인다. 눈은 또 어떤가? 너무 심연 깊숙이 들어가 버려서 자칫하면 괴물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물론 우리 같은 몽골리언은 그와 정반대의 미적 결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녀석은 내가 자기 용모에 감탄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쪽엔 더 관심을 주지 않고 계속 쾌활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손님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몰려들었다. 다소 한적했던 가게 안의 좌석들이 손님으로 모두 점령되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그 녀석에게 쓸렸다.
그 까닭은 그 녀석이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지나치게 쾌활하게 떠든 탓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녀석의 용모가 다른 사람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녀석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하던 말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녀석은 계속 떠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녀석의 태도가 흥미를 돋귀준 것이다.
어디, 어떻게 하나 보자. 계속해서 네가 유창한 서울말로 떠들 수 있나 보자,사람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 앞에서 바야흐로 벌어지는 원숭이의 재롱을 기다리는 구경꾼들의 표정과 홉사한 표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웬일인지 몸이 오싹 얼어붙는 듯한 긴장 속에서 다음 시간을 기다렸다.
그 녀석은 점점 얼굴이 빨개졌다. 피부빛 때문에 그의 얼굴에 나타난 홍조가 더욱 선명했다. 녀석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천천히 나가 버렸다. 그 뒤를 따라 그의 두 친구들이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갔다. 군중이란 때로는 잔인한 것이다. 그때 나는 내 피부가 황색이란 점에 대해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하나님의 가장 걸출한 피조물인 그 녀석은 다시는 그린하우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녀석과 나 사이에는 둘을 연결하는 눈에 안 보이는 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해 겨울 나는 갑자기 하숙방을 옮겨야 할 처지가 되었다. 길에는 눈이 내려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보료 위를 걷는 것처럼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 되는 그런 날씨였다. 오십대의 과부인 하숙집 아줌마는 그날 아침 결단을 내리고 나더러 방을 비워달라고 말했다.
본래 내가 쓰던 방은 두 사람의 합숙용이었고 따라서 나는 합숙에 해당하는 돈만 지불해왔다. 그런데 나와 방을 함께 쓸 동숙자가 아무래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주인 여자는 몇 달씩이나 손해를 감수하고 있었다. 사실은 동숙자가 나타나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세 사람씩이나 나타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