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에 들어 갔을 때 도일은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녀석의 기타 솜씨는 그저 그런 정도였지만 그가 들고 있는 기타는 아주 값 나가는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도일은 기타를 벽에 걸어놓고 방바닥에 내려앉았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때에 와주셨군요.”

 

“어디 나갈 생각이었나?”

 

“아뇨, 문간방에 있는 사람이 자꾸 자기 방에 와달라고 아까부터 성화예요. 은행에 나가는데 지난달에 들어왔죠.”

 

“와달라면 가면 되지 않나?”

 

“그런 초대는 괴로와요. 단순한 호기심, 그런 거 있아요.”

 

도일은 정말 귀찮다는 표정을지었다.

 

“야아, 이 방은 정말 호화판인데. 눈이 부시구나.”

 

내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방은 넓고 깨끗했다. 책상과 서가 이 모두 상급품이고 한쪽 벽을 모두 점령한 책장에는 동서고금의 양서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그중에는 물론 소설책도 많이 있었고 시집도 있었다. 나는 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녀석이 내 방에 들어왔을 때 나의 빈약한 서가를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생각했을까?

 

책상 옆자리에는 오디오 세트가 있었는데 그것도 단순한 장난감의 수준은 넘는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건 커다란 옷장이었다. 나는 하숙방을 전전하면서도 옷장이란 걸 가져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녀석은 커다란 옷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 옷장에는 계절마다 바꿔 입을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옷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정말 부럽군.’’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러실 줄 알았죠. 모두 부모님들 덕분이죠. . 내가 필요하다는 건 뭐든 마련해 주시려고 해요. 그런데 하나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 방에는 부모님을 빼놓곤 아저씨가 처음 들어오신 겁니다. 아시겠어요?’’

 

도일은 자기 말이 우스운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정말 영광이로군. 그런데 난 네게 줄 게 없으니 어떡하지?”

 

“그냥 친구가 되어 주신 걸로 충분해요.”

 

책상 위의 액자로 문득 내 사선이 향했다. 그건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인데 놓여 있는 위치로 봐서 매우 소중한 사진 같았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책상으로 다가갔다. 사진은 오래된 사진이었다. 도일이 가운데 서있고 김씨 내외가 양쪽에 서 있었는데 도일은 겨우 다섯 살 정도로 어렸다. 물론 김씨 내외도 지금보다는 십년 이상 젊어보였다. 도일은 꼬마 신사복을 말쑥하게 입고 있었고 나비넥타이도 매고 있었다. 그때도 역시 녀석은 인형처럼 예쁜 얼굴이었다.

 

“몇 살 때였지?”

 

“여섯 살. 내가 유치원에 들어간 날이었어요.”

 

김씨가 도일의 아버지가 된 건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그 사진을 보는 동안 김씨 내외 가운데 한쪽이 도일과 혈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그 사진의 정겨운 풍경이나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그런 상상을 강하게 심어 주었다. 그만큼 인물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고 의했다. 나는 사진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다시 방바닥에 앉았다. 그때 도일이 뜻밖의 말을 내게 던졌다.

 

“아저씨는 왜 내게 묻지 않으세요? 가령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디 있었느냐? 이런 것 말예요. 또 있죠. 아버지 쪽이냐? 머니 쪽이냐? 이런게 궁금하지 않으세요?”

 

“내가 그런걸 묻길 원하니?”

 

“그건 제 사정이구요.”

 

나는 잠시 도일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지. 너도 그걸 원하고 있지?”

 

“물론 그렇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마치 옷가게의 마네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생각도 없고 고민도 없는 인간 말예요. 나 자신은 그런 데 무관심하려고 애쓰지만 이따금 그런 시선을 느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거니까 신경 쓸 가치가 없는 문제야. 이 지구상에는 수백 수천의 다른 종족이 있어. 인간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구. 같은 종족도 성격과 용모가 제각각 다르지. 과테말라나 필리핀은 국민의 태반이 혼혈족이야. 그걸 보면 나같은 사람도 혼혈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거야. 수천 년전,혹은 수백 년 전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누가 장담하겠니? 결국 너는 혼자고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일 뿐 그밖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구. 나나 너나 모두 이 지구상의 한 인간일 뿐이야.”

 

“그렇게 간단하다면 좋겠는데.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됐어. 네 생각은 모두 옳다.”

 

“아저씨는 진정한 내 친구니까 내가 자신의 얘기를 해도 괜찮겠죠. 사실 난 자신의 이력을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니다. 사람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죠. 이건 나도 최근에야 아님으로부터 들 어서 알게 된 사실이에요. 그 이전까지는 지금 부모님께서 나를 낳아 주신 걸로만 알고 있었죠.

 

아버님은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제서야 진실을 말씀해 주셨어요. 지금 부모은 나를 낳지 않으셨어요. 나는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지금의 부모를 따라 나왔었죠. 정작 나를 낳은 양친에 관해선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답니다. 다만 아버지 쪽이 백인이고 어머니 쪽이 황색인이라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어요.

 

그들이 때문에 나를 낳아 놓고 달아났는지 그것도 모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요. 아마 죽었을 가능성도 많다고 봐야겠죠. 지금 아버님은 당시 미군부대에서 세탁부로 일을 하고 계셨나봐요. 아시다시피 어머니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으니까 나를 데려다 기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