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몇번이나 혀를 차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실은 나도 입대했던 첫해에 도망친 일이 있었죠. 두 번씩이나 부대에서 이탈했다가 붙잡혀가지고 되게 혼이 났죠.

 

병장이 무슨 자랑처럼 그의 경험담을 털어놓닸다.

 

정말 그때는 선임자들 등쌀에 하루도 배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구요. 에라 될 대로 되어라. 어디 가서 술이나 잔뜩 마셔버릴까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생각이 솟구쳤지 뭐요.

 

야, 임마. 말도 말아. 네 따위는 인제 겨우 시작이야. 나는 이 생활이 십년째야. 입에서 썩은 냄새가 풀풀 나오는 지경이라구.

 

상사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병장으로 건너다보았다.

 

누구나 좋아서 하는 놈은 없다 이거야. 너나 나나 그리고 이양반까지도. 이 양반은 싫다고 걷어차고 나가버렸지만 그러나 이 양반도 비록 본의는 아니겠지만 다시 돌아오고 있으니까 마찬가지 입장이지.

 

어때, 교원 생활은 재미가 좋았소?

 

상사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나서 기요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기요가 한 대의 궐련을 받아 입에 물자, 그가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여주었다. 기요는 담배를 한모금 태우고 난 뒤에 말했다.

 

사실은 가르치는 일도 매일 되풀이하다보면 지독한 고역이죠. 그러나 지금 생각은 그렇지만은 않은데요.

 

알 만하겠소.

 

상사가 기요의 얼굴을 힐끗 돌아다봤다.

 

나도 중학교 다니는 놈이 하나 있다우. 선생은 담당과목이 뭣이었소?

 

영어요.

 

영어? 우리집 그놈은 그런데 영어를 지독하게 못한단 말야. 이놈이 수학은 어지간히 하는데 말이지. 영어 공부는 어떻게 시키면 되우?

 

특별한 방법이 없지요. 집에서 보게시리 좋은 참고서나 한 권 사주시오.

 

아이구, 말 마쇼. 내가 사준 책이 열 권도 더 될 거라구. 하여튼 난 사달라는 대로 죄다 사줬으니까.

 

그렇게 많이 사주면 더 공부를 안하게 되죠. 참고서는 딱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그런가요? 무얼 알아야 면장을 해먹지.

 

택시가 합정동 로터리에서 강변도로로 접어들자, 차창을 통해 마포 강변이 펼쳐졌고 강변 저쪽 건너편으로 영등포 공장지대의 우뚝우뚝 솟아오른 굴뚝들이 멀리 바라다보였다. 그들은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부질없는 사담을 뚝 그쳤다. 특히 기요의 양쪽에 앉아 있는 상사와 병장은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과 그들 자신과의 관계를 새삼스럽게 깨닫고 금방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이때 기요는 팔목의 시계를 보았다. 벌써 오후의 두번째 수업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누가 나의 대리로 수업에 들어갔을까? 내가 돌연 수업에 나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그는 비로소 그 학교의 교실과 아이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도 그 아이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알려질 필요는 없다. 기요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방동 어디라고 하셨죠?

 

제이한강교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물어왔다.

 

파견대가 있는 곳을 아오?

 

병장이 운전사에게 다시 물었다.

 

네. 압니다.

 

그럼 됐소. 목적지는 거기요.

 

병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택시는 파견대의 정문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지점에서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그길로 곧장 파견대로 향하지 않고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여태 점심도 거른 채 돌아다녔지 뭐요. 이 직업이 원래 그런 직업이라구. 맨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서던 상사가 기요를 돌아다보며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들은 이 식당에서 제일 조용한 방이라고 생각되는 맨 구석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두 사람은 간단하게 우동으로 하겠는데 댁은 뭘 드실라우?

 

상사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기요를 보면서 물었다. 기요가 머리를 옆으로 흔들자, 상사가 다시 말했다.

 

먹기 싫어도 무어든 시키쇼. 이거는 사회에서 마지막 식사가 될 테니까 무어든 기름기 있는 걸로 시키쇼. 사실 우리는 구내 식당에 가면 더 싸게 먹을 수 있지만 일부러 여기 온 거요. 내 말뜻 알겠소? 그러나 요금은 각자 부담이니까 그런 줄 아쇼.

 

기요는 상사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그가 상사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