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교장실로 자기들을 안내하라는 듯이 기요를 쳐다보았다. 기요는 잠깐 망설였으나 이내 그들을 교장실로 데리고 갔다. 기요는 그 남자가 하필이면 <가장 조용한 방>을 찾는 것이 얼핏 의아스러웠지만 왜 그런 곳을 찾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교장실에는 마침 방의 임자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기요는 우선 그들에게 소파의 자리를 권했다.
괜찮아요. 우리는.
나이가 많은 남자가 손을 휘저으며 사양했고 한편으로는 안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그만 수첩을 꺼냈다. 그는 수첩을 펼치며 기요의 코밑으로 바짝 내어밀면서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왔습니다.
기요는 그 남자가 내미는 수첩을 얼핏 보았으나 졸지간에 눈이 어찔어찔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내지 못했다. 젊은 남자는 자기 선임자의 뒤켠에 우두커니 서서 기요의 일거일동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알겠소?
나이가 많은 남자가 수첩을 거둬들이면서 넌지시 물었다. 기요는 그의 수첩을 분명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동안 꼿꼿하게 서서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교장실 창 바깥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었고 그 화단에는 지금 초여름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한참 내려쬐고 있었다. 작은 완상목들과 꽃나무들은 요즈음 자라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맘때에는 누구든지 자기의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욕을 느끼는 것이라고 기요는 문득 생각했다. 벌써 수업이 시작되었는지 교사 의 주위가 조용했다. 그는 얼떨결에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수업이 시작되었다면 서둘러서 담당한 교실로 돌아가야지. 버릇처럼 이런 조바심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기요는 서 있는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사환아이가 서무실로 들어와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어디로 가셨지?
대답소리가 없자 답답한 듯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제가 나가서 말해주고 오겠어요.
선임자를 향해 이렇게 말하면서 기요가 마악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갑자기 기요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그의 선임자보다 한층 긴장된 표정으로 기요를 쏘아보며 몹시 거칠게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허락없이 꼼짝도 하면 안된다구.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수업에 들여보내야 할 게 아닙니까?
기요는 억지로 웃어보이며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말했다. 그 남자는 기요의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고 자기 동료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역시 이 기관의 책임자에게 얘기는 하고 가야겠지?
교장이 지금 없는데 어떻게 기다리죠? 상사님, 까짓거 그냥 갑시다요. 아냐. 얘기는 해두는 게 뒤에 탈이 없다구. 교장선생은 어디가셨수? 상사라고 불린 남자가 기요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바쁘시다면 서무과에 얘길 해도 괜찮겠지요. 그럼 내가 서무과에 갔다오겠으니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상사는 젊은이에게 당부하고 교장실과 이웃하여 있는 서무실로 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 사람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다. 이분쯤 지난 뒤에야 상사가 서무계 서기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서무계 서기는 매우 마땅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기요에게 대뜸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