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이렇게 말하고 먼저 교장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세 사람이 복도로 나왔을 때 복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긴 복도를 지나서 현관으로 나왔다. 그들이 현관 바깥으로 마악 나오려고 했을 때 뒤에서 수업계 담당교사가 헐떡이며 쫓아나왔다.
김 선생, 오후에 두 시간이 더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소? 금방 돌아오신다면 그대로 두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요.
오늘은 수업하기 어렵겠는데요.
기요는 웃어보이며 수업계 담당교사에게 말했다.
졸지간에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딱하게 되었군요.
그러나 한 시간 정도면 돌아오실 수 있지 않겠어요? 무슨 그렇게 긴 얘기가 있습니까?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는 수업계 담당교사가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여튼 제가 가급적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지요. 그럼 수고 좀 하십시오.
기요는 서둘러서 말끝을 맺었다.
교문을 빠져나오자, 기요는 한층 흥분이 가라앉았다. 길을 걸을 때는 상사와 젊은이가 기요의 양편에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들은 한발자국도 앞서거나 뒤로 처지지 않고 매우 신중하게 기요의 옆에 붙어서 걸어갔다.
버스로 갈까요? 상사님.
젊은이가 상사에게 물었다.
가만있어. 우선 어디서 수갑을 채우고 가야지.
상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번잡한 거리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수갑을 채우는 데 마땅한 장소가 얼핏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 근처에 파출소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 근처에 파출소가 없습니까?
여기서 이백 미터쯤 걸어가면 있지요.
기요가 행길 저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갑시다, 거기로.
상사가 말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기요의 양쪽에 꼭 붙어서 걸었다. 그들은 이렇게 신중한 동작이 이미 몸에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동안 쭈욱 어디에 숨어 있었소?
상사가 약간 부드러운 말투로 기요에게 물었다.
나는 특별히 내가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신들이 나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지요.
하하, 이친구 뱃심이 보기와는 다르구먼. 그러니까 내가 떳떳하게 돌아다녀도 너희들이 감히 나를 찾아내겠냐 이말이군. 이거 보쇼, 우리가 오년 동안 당신을 줄곧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기요는 묵묵히 걷고만 있다가 한참만에 힘없이 말했다.
그 기간은 내게도 아주 지루했지요. 언제쯤 이런 때가 올 줄은 알고 있었지요. 이제 그때가 왔으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군요.
당신은 왜 군대를 걷어차고 나가버렸소? 더구나 장교 신분을 가졌던 사람이. 군인이 싫어졌소? 싫어졌다면 정당하게 나가는 길도 있었지 않소.
그때 상황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죠. 군인이 싫다거나 좋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정당하게 빠져나올 기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때 내가 튀어나오게 된 것은, 아니,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관두겠소.
그럼 그 이야기는 두었다가 검찰관 앞에 가서 하쇼. 우리는 당신을 데리고 가는 것이 임무이니까.
파출소 앞에까지 와서 그들은 멈춰섰다. 상사가 먼저 파출소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경관 한 사람이 사무실 입구에 앉아서 무엇인가 끄적이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상사를 쳐다보았다. 상사는 안호주머니에서 조금 전에 기요에게 보여줬던 수첩을 꺼내서 경관에게 살짝 보여주며 뭐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경관은 잘 알겠다는 듯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상사가 뒤를 돌아다보며 파출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때 젊은 남자가 갑자기 기요의 한쪽 팔을 붙잡고 파출소 안으로 떠밀고 갔다. 혼자서 파출소를 지키고 있던 경관은 별다른 흥미도 없다는 듯이 매우 덤덤한 눈길로 그들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기요는 얼떨결에 두손을 모아서 앞으로 내밀었는데 젊은 남자가 기요에게 바른쪽 팔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젊은 남자는 뒷호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더니 한쪽은 기요의 왼쪽 팔에 채우고 한쪽은 자기의 오른쪽 팔에 채웠다. 그때 기요는 자기의 왼쪽 손가락에 아직까지 백묵가루가 허옇게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미처 손을 씻고 나올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훈장은 역시 별수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