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로 돌아와 헤어질 때 나는 불라지미르에게 내일은 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자기 문제로 심사가 복잡한 그가 잠시나마 내게 얽매이는 걸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굳이 오겠다고 고집하다가 내가 혼자 있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 고집을 꺽었다.
"그렇지만 방으로 전화는 자주 걸 께요."
"그야 물론. 서로 연락은 해야지요."
블라지미르는 돌아서서 피앙세가 기다리는 아파트 쪽으로 빨리 걸어갔다. 이미 밤이 되었는데 그가 가고 있는 아파트 부근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저녁에는 새로 문을 열었다는 8층의 한국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젊은 러시아인 남녀 종업원들이 손님들 시중을 드느라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발음이 서툴지만 간단한 인사말도 한국말로 할 줄 알았다. 사십대 한국 남성이 카운터에 앉아 러시아인 종업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계산대로 가자, 사장으로 보이는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러시면 안내자도 필요하실 텐데요. 이곳 지리도 잘 알고 말도 잘 통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소개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 학생인가요?"
"물론이죠."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블라지미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것이다. 식당주인과 학생을 소개받기로 약속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금방 블라지미르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일찍 호텔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을 소개받기로 한 걸 알려주고 그의 안내 제안을 사양했다.
다음날 오전 호텔 로비에 앉아있는데 대학 초급생 또래의 한국 여학생이 내게 와서 인사를 했다. 그녀는 방금 식당 주인의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왔노라고 말했다. 그 학생과 함께 호텔 밖으로 나와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러시아에서는 허가받은 택시를 이용하기보다 지나가는 자가용을 세워 요금을 흥정하고 이용하는 것이 상례화되어 있다.
나는 또 네브스키 대로 쪽으로 나가볼 예정이었다. 그 학생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과 요금을 놓고 운전기사와 흥정을 시도했는데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다. 러시아인 차주가 여학생의 더듬거리는 서툰 러시아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이유였다. 차는 곧 자기 갈 길로 떠나버렸다. 그 여학생은 자기는 러시아에 온지 6개월이 조금 지났는데 아직 러시아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지리도 어둡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럼 네가 아는 곳이 한군데도 없겠구나. 정말 그래?"
"있어요. 스파케티 좋아하세요? 멋있는 이딸리아 식당 한군데를 알아요. 여기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잘 됐다.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니까."
여학생은 싱긋 웃었다. 호텔 앞 광장에서 십오 분쯤 걸어가자, 주택가 골목에 <이딸리안 레스토랑>이란 간판을 붙인 하얀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날 처음 만난 여학생과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었다. 그 여학생의 이름도 소속된 학교도 나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질문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딸리아 식당에서 나오자, 따로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 그 여학생에게 하루치 수고비를 지불하고 이제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맛있는 점심만 얻어먹고 돈까지 받는 것이 미안하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런 뒤 그녀는 금방 어디론가 가버렸다.
오후에 나는 호텔 앞 대리석 계단에 앉아 있었다. 날씨가 푸근했고 밝은 햇빛이 부근을 비쳐주고 있었다. 오후 네 시쯤 되었을 때 블라지미르가 자기 숙소 쪽에서 혼자 호텔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걱정이 되어 그는 호텔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고개를 잔뜩 숙이고 걸었다. 계단 앞까지 온 그는 거기 혼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 이러고 계십니까? 어디 구경 가시지 않았어요?"
나는 그 여학생과 이딸리아 식당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여학생을 보내놓고 내가 자기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 자기는 언제라도 달려오려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발로자, 무슨 일이 있었소? 표정이 어두운데."
블라지미르는 잠시 망설이다 피앙세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피앙세가 누구랑 전화로 언쟁을 벌였는데 발단이 자기 문제였기 때문에 무척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러시아 사람이오?"
"아닙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 누굴까?"
블라지미르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듯 또 머뭇거렸다.
"사실은 제가 이 호텔 8층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볼까 하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이 저와 얘기해보고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임금 때문에 결국 어긋났어요. 주인이 제시한 금액과 제 요구가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준다고 했는데요?"
"그것 참. 저는 한국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다른 한국 사람과 아주 같지는 않더라도 이분의 일, 아니면 삼분의 일도 좋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 식당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이 얼마 받는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주인남자가 뭐라 한줄 아세요? 어린 러시아 놈이 건방지고 되어먹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는 다른 러시아 종업원이 받는 50달러에서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고 했어요. 피앙세가 그 얘길 듣고 분개해서 식당 주인과 전화로 막 싸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어제 나도 그 사람 잠시 봤는데 그렇게 폭언할 사람 같지는 않던데."
"제 말은 그가 나쁜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식당 같은 데서 일하는 러시아 사람 임금이 보통 그 정도니까요. 돈을 벌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자선사업을 할 이유는 없지 않겠어요? 저는 이해해요. 다만 저는 50 달러 받고 거기서 일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피앙세가 요즘 신경이 좀 날카로워요.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블라지미르가 왜 식당 근무를 자청했을까? 이틀 전만 해도 그는 영국으로 떠날 계획을 말하지 않았는가. 잠시 머릿속에 혼란이 생겼으나 곧 해답이 나왔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그는 생활하기에도 벅차서 외국에 가자면 따로 경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50 달러 받아가지고는 언제 비행기를 타게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참 미안하게 되었어요."
"뭐가요?"
"사실은 피앙세가 선생님을 위해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하려고 준비까지 했는데 지금 마음이 아파서 힘들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충분히 이해해요. 나도 조금 전 이딸리아 식당에 있을 때 발로자와 피앙세를 거기 불러내서 함께 식사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소. "
"거긴 좋은 식당입니다. 하지만 서민에겐 매우 비싼 곳이죠. 피앙세가 지금 마음이 아파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준비는 부족하지만 마땅히 저희가 선생님을 초대해야죠."
“아직 여기 머물 시간 있으니 급할 것 없어요.”
블라지미르와 나는 차를 타고 네브스키 대로로 나가서 이틀 전 봤던 빠샤의 그림 한 점을 1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마늘과 사과를 극사실로 그린 우표 두 장 크기의 작은 그림이었다. 빠샤는 또 술병이 나서 못 나오고 그의 친구가 그림을 대신 포장해주었다. 이 그림이 이번 페테르부르그 여행의 좋은 기념이 될 거라고 생각되었다. 오는 길에 블라지미르는 또 여행사에 들러 꽤 오랜 시간 그 중년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사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그가 부모님의 이스라엘 귀환 얘기를 잠시 들려줬다.
"이번엔 부모님 심부름이었어요. 이스라엘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항공 티켓에 관해 그 직원이 다시 알아보고 해답을 주기로 했거든요."
"부모님께서 그쪽으로 가십니까?"
"아마 가실 것 같아요. 지금껏 귀환을 하지 않고 버틴 거죠. 부모님도 이곳을 무척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더 이상 연금만 가지고 생활하기 어려워요. 작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여길 떠나는 건 상상도 못해 봤어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슬퍼요. 제가 여길 떠나야 하는 것도 그렇구요. 이곳은 제 고향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곳 바람과 네바강 햇빛을 무엇보다 좋아합니다. 이 지구에서 이곳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저는 발틱해의 소금기가 묻어있는 이곳 바람을 맞으며 어릴 때부터 자라왔어요. 네바강에 비치는 햇빛은 계절마다 색깔이 달라집니다."
"떠나더라도 발로자는 상황이 개선되면 다시 돌아와야지요."
"물론입니다."
그날 이후 블라지미르와 나는 한 차례 더 시내 나들이를 했다.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우리는 네브스끼 사원에 다시 들렀고 네바강의 궁전대교까지 걸어가서 다리 복판에서 강의 양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산책은 첫날처럼 즐겁지는 않았고 두 사람 모두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불과 며칠 뒤 떠나기로 작정한 블라지미르에게도 이 산책은 이 도시와의 작별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다리 위 그 지점에서는 푸른 벽돌로 지어진 대학 건물들이 원경으로 바라다 보였는데 블라지미르는 오랫동안 모교인 대학건물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블라지미르는 그때까지 저녁 초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도 조금은 아쉬웠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전공한다는 그의 연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블라지미르 같은 이방 남자를 목숨 걸고 사랑하는 한국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의 피앙세는 저녁 초대 대신 내가 떠나는 날 아침 블라지미르를 통해 내게 작은 선물 꾸러미를 보내왔다. 아침 일찍 호텔 방으로 찾아온 블라지미르는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피앙세가 선생님께 드리라고 주었어요. 비행기 속에서 드시라고. 피앙세는 저녁초대를 못해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구요. 정말 미안합니다."
'이게 뭘까?' 봉지를 열어보니 김치와 밀가루를 버무려 만든 김치부침개 두 장이었다. 있는 재료를 다 뒤져 내 식성에 맞추려고 애써 만든 그 선물을 나는 휴대용 가방 속에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나는 비행기 속에서 꼭 이걸 먹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저희도 며칠 뒤 여길 떠날 겁니다. 오늘 아파트로 새로 오겠다는 사람이 집을 보러 오기로 했어요."
"준비도 없이 그렇게 빨리 떠나요?"
"준비할 것도 없어요. 짐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만약 내가 다음에 여기 또 와도 그땐 발로자가 없겠군."
"당분간 그럴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시 돌아올 겁니다. 제가 여기 있게 되었을 때 또 오세요."
블라지미르는 공항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