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레닌 동상 앞에 서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연설하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나요?'
블라지미르는 들어줄 가치도 없다는 듯 비웃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봤다.
"물가가 살인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옐찐은 책임을 지고 안나 까레니나처럼 열차 앞으로 달려가서 자살하라는 겁니다. 옐찐은 지난번 선거할 때 만약 물가를 못 잡으면 열차와 충돌해서 자살하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저 플래카드엔 뭐라고 씌어있죠?"
"형편없는 깡패 옐찐을 재판에 부치자, 미국놈들은 러시아에서 손을 떼라, 사회주의는 최고의 가치다, 뭐 이런 내용들이죠. 이 사람들은 대부분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인데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소련시절에 향수를 갖고 있죠."
"공산당 시절 좋은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많겠군."
"대부분 그렇습니다. 옛날에 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이죠."
"늙고 가난해지니 공산당원도 아주 무기력해 보이는군. 내가 어릴 때 한국에서는 공산당원이 아주 무서운 존재였소."
"그땐 러시아도 마찬가지죠. 지금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레닌 동상 앞을 떠나 여러 개의 붉은 벽돌 건물이 모여 있는 지역을 거쳐서 다시 큰길로 나갔는데 그 붉은 벽돌건물들이 전에 대포를 만들던 공장이었다고 블라지미르가 알려줬다. 큰길에서는 뜻밖에도 자유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많은 여인들이 길가 인도에 수백 미터나 될 정도로 길게 줄지어 서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전문 장사꾼이 아니고 가정주부나 그들의 자녀들인데 파는 상품은 집에서 사용하던 중고품으로 털 스웨터, 행주치마, 구두, 탁상시계, 집에서 손으로 만든 여러 가지 수예품 등 가짓수가 다양했다. 그들 가운데 공장에서 생산한 값싼 생활용품을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진짜 장사치도 섞여 있었다.
우리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비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때 겨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인형 하나를 내 앞에 불쑥 내미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것은 고양이였는데 재료가 썩 좋지 않았고 형태도 조잡해서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얼마냐고 묻자, 소녀가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보여줬다. 나는 누가 볼까봐 재빨리 2달러를 아이에게 건네주고 고양이를 냉큼 건네받았다. 블라지미르는 저만치 앞에서 걷고 있었다. 인파 속에서 거의 빠져나왔을 때 나는 블라지미르에게 말했다.
"발로자, 내가 방금 이걸 샀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용도가 떠오르지를 않는군.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고. 어떻게 하면 좋지요?"
"저 주세요. 피앙세에게 가져다주겠어요.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블라지미르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내 손에서 고양이 인형을 받아갔다.
벌써 한낮이 되어 우리는 뒷골목 싸구려 식당을 찾아갔다. 러시아식으로 간단한 점심식사가 나왔는데 보리빵과 여러 가지 야채를 넣은 붉은 국이 주요 메뉴였다. 보르시라는 이 국은 국물이 빨간 게 특징인데 보기에 맛있을 것 같았지만 매우 짜고 내 식성에는 맞지 않았다. 블라지미르는 보르시와 보리빵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 바람에 덩달아 나도 내 몫을 먹느라고 무진 애를 먹었다.
점심 뒤 우리는 네브스끼 대로로 나가서 옷가게나 악기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책을 쌓아놓고 파는 거리 행상 앞에서 잠시 책을 뒤적여보기도 했다. 거리 한쪽 모퉁이에 터를 잡고 야외전시장처럼 그림을 전시하는 곳이 있었다. 여러 명의 화가들이 무리로 한곳에 모여 빠리의 몽마르뜨르처럼 행인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주거나 전시된 그림을 파는 곳이었다. 그림들은 분방하고 자유로운 추상화부터 극사실화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내가 잠시 그림을 살펴보는 사이 블라지미르는 화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더니 머리가 더부룩하고 턱수염을 기른 어떤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쳤다. 그 남자는 순수 슬라브 혈통이 아닌, 따따르 계통이거나 터어키 계통의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술병을 가운데 놓고 동료들과 맨바닥에 둘러앉아 얘기하고 있던 그 남자가 뒤돌아보더니 싱긋 웃으며 블라지미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그 남자의 티 없는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친구 사이인가? 나는 화가와 블라지미르가 다정하게 얘기 나누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잠시 후 블라지미르가 내게 와서 말했다.
"빠샤(바실리의 애칭)는 옛날 친척입니다. 한동안 볼 수 없었는데 몇 달만에 만났어요. 그동안 몸이 아파서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옛날 친척이면 지금은 친척이 아니란 얘기요?"
"빠샤는 제 누이동생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헤어졌으니까 친척이 아니죠."
"그렇게 큰 누이가 있었나요?"
"우리는 남매 둘입니다. 누이동생은 열여덟 살에 결혼했어요.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곧 핀란드 사람하고 결혼할 겁니다."
누이와 헤어진 남자와 여전히 다정한 친구처럼 재회하는 블라지미르의 스스럼없는 태도가 부러웠다. 그는 지금도 빠샤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빠샤는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게 흠이지만 페테르부르그 미술학교에서는 천재로 알려졌던 재주꾼이었다고 한다.
빠샤가 그린 그림 두 점을 봤는데 하나는 무슨 벌레 같은 것들이 난무하는 요란한 추상화였고 하나는 작은 화폭에 마늘과 사과를 대비시켜 그려놓은 극사실화였다. 두 그림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한 사람의 그림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빠샤가 선생님 얼굴을 그려주겠대요. 물론 돈은 받지 않습니다."
빠샤가 호의가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블라지미르의 친구니까 그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나는 블라지미르에게 고맙지만 사양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거리에 저녁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블라지미르는 대리석으로 지은 어느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층에 넓은 홀이 있고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드나들었다. 블라지미르가 안내창구로 가서 어떤 중년여자 직원과 얘기하는 동안 나는 대기석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블라지미르는 꽤 오래 그 여성 직원과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그 건물에서 나올 때쯤 나는 겨우 그곳이 여행사 사무소란 걸 알았다. 나는 블라지미르에게 외국으로 나갈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사실은 며칠 뒤 영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영국에는 무슨 일로?"
"그쪽 대학에 아는 분이 있어서 전부터 연락을 해왔어요. 거기서 일자리를 얻어볼까 하구요."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는 건 아닌가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군대에 가게 될지 몰라요. 러시아 군대, 지금 입대하는 건 자살 행위나 같습니다. 불과 몇 주 훈련 마치고 체쩬으로 보내질 거에요. 저는 그런 미친 전쟁에 나가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아요. 요행히 체쩬에서 빠진다고 해도 군대 폭력 때문에 복무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온다고 장담 못해요."
"외국에 나가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외국에서 직업 얻으면 일단 소집은 미룰 수 있습니다. 여기 청년들이 다 군대 나가는 줄 아십니까? 군대 가는 사람들은 시골 청년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뿐이에요. 돈이 있거나 조금 그럴듯한 배경만 있으면 모두 빠져요."
“나는 블라지미르가 여기 대학에 남아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래야 내가 다음에 또 페테르부르그에 올 수 있지.”
"저도 그러길 바라죠. 그런데 소집영장 아니어도 당분간 그걸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교수님이 저를 환영하지 않아요."
"왜요? 전에 학과 여교수님이 발로자를 수제자로 키운다고 말하지 않았소?"
"상황이 바뀌었어요. 저에게 배반감을 느끼나 봐요."
"배반감이라니, 이해가 안되는데요."
"외국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 것 때문이죠."
"그 분은 나이가 아주 많으시다고 들었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여성이라 그러는 게 아니고 페테르부르그 분위기, 특히 대학이나 여기 남아있는 지식인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굉장히 미워합니다. 외국인과 사귀는 것조차 싫어해요. 그동안 무척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으니까요. 교수님은 저 녀석도 결국 나갈 녀석이고 키워봤자, 헛수고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저를 배척하기 전까지 저는 한 번도 페테르부르그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어요. 피앙세랑 결혼하더라도 우리는 여기 남아 살려고 했고 피앙세도 이곳을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그러겠다고 맹세했어요. 교수님의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피앙세랑 몇 번이나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만나주지 않았어요. 정말 지독하게 완고하신 분입니다."
결국 블라지미르도 이방인과의 결혼의 댓가를 치르는 셈인가. 그건 내게 매우 뜻밖의 사태였다. 러시아 같은 다민족 사회에서, 그것도 대학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것도 슬라브 정신의 정통성을 고집하는 페테르부르그의 자존심의 표현일지 모른다. 블라지미르는 대학 동양학부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는 당연히 그 대학에서 뿌리를 내릴 줄만 알았다. 블라지미르도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가 대학에서 사실상 거부되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아픈 치명상이었다.
뿔까보 공항에서 몇 해만에 블라지미르를 만났을 때 나는 막연히 그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 거라는 예감을 가졌다. 그 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블라지미르는 지금 페테르부르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전처럼 침착하지 못하고 어딘지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