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2년 내가 러시아를 처음 방문했던 얘기가 주내용이 된다. 몇 사람 지명인사가 등장할 수도 있는데 종이 잡지에서 하듯 실명을 쓸 것이며 거기에 대한 배려는 필자의 몫이므로 미리 양해를 구해둔다.
전두환 이전만 해도 일반시민은 물론 작가들도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바늘구명이었다. 문인 중에도 부유층이거나 재간이 좋은 사람이면 몰라도 보통 사람은 김포공항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로 소설가협회라는 것이 있다. 평소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내는데 이곳에서 이따금 염가 해외여행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사람을 불러 모은다. 행선지가 러시아로 밝혀지자,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참여 신청을 했다. 이렇게 해서 삼십명 가까운 남과 여 문인들-그 가운데 영화감독, 무슨 평론가, 시인 너댓명이 끼었다-이 모두 비행기를 타고 난생 처음 철의 장막이 이제 막 걷혔다는 러시아를 향해 날아갔다.
한국의 문인들 치고 러시아 문학의 신세를 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히 소설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요즘 신세대 작가들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60~70년대 작가들은 도도한 러시아 산문의 세례를 누구나 다 받아왔다. 조금 심한 경우는 도스또에프스끼의 도박벽을 흉내 내느라고 밤에 어느 아지트에 몇 사람이 모여서 푼돈을 늘어놓고 눈이 벌개지는 새벽녘까지 포커게임에 몰두하는 장면도 목격한 바가 있다. 이제 얘기지만 70~80년대 광풍처럼 불어온 이른바 민중문학이란 것도 그 흐름을 보면 다분히 러시아의 고골, 고리끼, 에세닌과 맥이 통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행 모두 첫 러시아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몹시 들떠 있었다. 일행 가운데 작고한 유현목 영화감독이 최고령자로 참여했던 것이 떠오른다.
일행이 처음 묵게 된 숙소는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이류급 호텔, 아니 삼류급인 인투어리스트 호텔로 규모는 큰 편이나 시설은 아주 낡았고 로비나 복도 분위기는 마치 시장어귀처럼 어수선 했다. 서로 몸이 부딪힐 정도로 정체 모를 사람들이 그곳에 북적거렸다. 호텔이 대로변에 있었는데 거리에는 크고 작은 휴지조각들이 널부러져 있고 낡은 승용차들이 이따금 생각난 듯 한 두 대씩 빠른 속도로 지나다녔다.
인투어리스트 호텔이 3류라는 것은 그 호텔 로비에 북적거리는 모스크바의 그 이름난 유녀들 때문이다. 일급이나 이류 정도 호텔이라면 아무리 경제가 불황이고 치안상태가 엉망이더라도 그 유녀들이 호텔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은 로비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아무나 소매를 붙잡고 거래를 시도하곤 했다. 그 바람에 점잖은(?) 한국의 작가들은 그녀들을 피해 방과 로비를 오가느라고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도착 첫날 저녁 시간에 호텔 대식당에는 그럴듯한 만찬 자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인솔 주무의 말을 들어보니 그날 저녁 러시아 작가협회 회원들과 그곳에서 상견례의 만찬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가슴을 설레며 이 소식을 반겼고 큰 기대감을 갖고 그 시간을 기다렸다. 사실 얼떨결에 러시아로 날아오긴 했지만 그곳 대표 작가들과 서로 만나 우의를 다진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멋진 기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