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지미르가 설마 서울에? 이렇게도 빨리?'
"거기 어디요? 페테르부르그?"
"아닙니다. 서울에 왔어요. 지금 제기동의 A아파트에 있어요."
블라지미르는 한국을 찾는 페테르부르그 지역 기업인들과 연결이 되어 통역 겸 안내자로 갑자기 서울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은 3일 전 서울에 왔는데요. 그동안 동행자들 일을 돕느라고 바빴어요. 겨우 오늘에야 시간이 났습니다."
"서울에서 언제 떠나지요?"
"내일 갑니다. 여기 일정 모두 끝났어요."
"그럼 어떡하지? 친구 얼굴은 봐야 할 텐데.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저도 뵙고 싶어요. 선생님 댁으로 지금 찾아가면 안될까요?"
"그거야 환영이죠. 근데 여길 찾아올 수 있겠소?"
"저는 찾아갈 수 있습니다. 위치만 가르쳐주세요."
블라지미르에게 집 위치를 가르쳐 주고 전화를 끊었다. 마치 오랜만에 연인과 통화한 사람처럼 가슴이 쿵당쿵당 뛰었다.
어수선한 밤 기차역에서 스쳐가듯 겨우 말 몇 마디 나눈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가 올 때쯤 나는 미리 아파트 마당으로 나가서 그를 기다렸다. 낮에는 무더웠으나 저녁이 되어 제법 선선했다. 밤 기차역에서 문득 던진 한마디 말이 씨앗이 되어 이방의 청년이 나의 처소까지 찾아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로 사귀자는 제안을 내가 했지만 그 여행 이후 나는 약속에 뒤따르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전화 한번 걸지 않았고 엽서 한 장 보내지도 않았다.
키가 큰 남자가 아파트 정문 쪽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나는 블라지미르를 첫눈에 알아봤다. 몹시 반가웠다. 그를 집으로 안내해서 미리 준비해둔 저녁식탁에 마주 앉았다. 며칠 동안 과로한 탓인지 얼굴은 조금 수척했지만 페테르부르그에서 보던 때보다 표정은 쾌활하고 밝았다. 그는 시간이 많지 않아 식사만 끝나면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식탁에 특별히 마련된 메뉴는 없고 평소 식단 그대로였다. 블라지미르는 된장국과 김치를 맛있게 먹었는데 한국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다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아내가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블라지미르가 재미있는 답변을 했다.
"우리 교수님께서 외국어를 잘하고 싶으면 그 나라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하셨어요."
그는 웃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나! 좋아하는 한국 여성이 있겠네요."
"있어요."
"그 여성 어디 있죠?"
"피앙세는 이번에 저와 함께 와서 지금 언니 집에 머물고 있어요. 내일 함께 떠납니다."
러시아는 이십 세 전후가 되면 결혼들을 한다. 한국에 비하면 대단한 조혼인 셈이나 그들은 성인이 되었으니 결혼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블라지미르의 피앙세가 페테르부르그 컨서바토리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한국 여성인 것을 그때 알았다. 시간이 없어 식사가 끝나자 말자, 블라지미르는 일어섰다. 나는 그를 버스정류장까지 나가서 배웅했다. 버스가 도착했고 그가 버스에 오를 때 나는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페테르부르그에서 만납시다."
이때만 해도 내게 러시아 여행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떠나는 블라지미르를 향해 그렇게 말한 것은 '막연한 희망사항'을 피력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할까. 블라지미르가 다녀간 뒤 이년 쯤 지나 동창모임에 나갔다가 러시아정치 전공인 박 교수로부터 아주 반가운 제안을 받았다.
"방학 기간에 제가 러시아에 다녀올까 하는데요. 선배님도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가시죠. 모스크바 체재 기간에는 상사 주재원으로 있는 제자 집에 머물기로 되어 따로 체재 비용은 필요 없습니다만."
물실호기라는 게 바로 이런 경우다. 나는 박 교수 일정에 맞추어 당장 여행수속을 밟았다.
1995년도에 있었던 이 러시아 여행은 여러 가지로 내게는 홀가분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꾼쩨바(꾼쩹스까야)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삼십분 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타나는 전원풍의 마을이다. 여기에 박 교수의 제자인 정 사장(기업 지사장을 이렇게 불렀다)의 그 풍치 좋은 아파트가 있었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타워형의 독립 아파트인데 2층에서 보면 앵두만한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라비냐 나무 가지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창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저녁에 전등을 켜면 불빛에 비친 그 열매들은 루비처럼 황홀하게 빛을 뿜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면 집주인과 박 교수와 나, 세 사람은 거실 탁자에 보드카 잔을 놓고 그날 있었던 일을 소재삼아 담소를 나누곤 했다. 정 사장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박 교수는 주로 무슨 학회를 찾아가서 만났던 저명한 석학 얘기, 유난히 퉁명스럽게 자기를 대했다는 그곳 여직원 얘기 등을 늘어놓았다. 나는 하루는 박 교수와 동행하고 하루는 혼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식으로 며칠을 소일했다.
꾼쩨바에서는 모스크바 강이 가까왔다. 마을 사람들이 오후에는 그 강기슭으로 산책들을 나갔는데 집에서 숲길을 십오 분쯤 부지런히 걸어가면 강기슭이 나타났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혼자 그곳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개와 인간과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그 문제에 관해 골돌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동양이건 서구이건 사람들이 개와 친한 건 공통사항이지만 러시아인들만큼 개와 가까이 지내는 국민이 이 지구위에 또 있을까? 산책을 나가보면 한 사람이건, 혹은 가족 세 사람이 짝을 이루었건 사람만 산책 나온 경우는 볼 수가 없었다. 누구나 개와 함께 동행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개들이 주인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빼닮았던 것이다. 하나의 예외도 없이.
늘씬한 각선미와 미모를 뽐내는 아가씨가 개를 끌고 앞에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길을 가다 가끔 정신이 아뜩할 정도로 귀신처럼 아름다운 여성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 멋장이 아가씨가 동반한 개는 족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하이얀 털에 귀와 코, 목 언저리에만 마치 일부러 몸치장을 위해 꾸민 듯이 약간의 갈색 털이 돋아난 대단한 미모(?)의 견공이었다. 키도 컸고 체형도 늘씬했으며 내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제 주인만큼이나 도도하고 의젓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개의 목줄을 잡고 미친 듯이 뛰어오는 장년의 사내가 있었다. 후줄근한 셔츠의 앞가슴이 열려있는데 가슴팍 털이 짐승의 그것처럼 무성했다. 그는 얼굴이 시뻘겋고 아직도 술에서 덜 깨어난 사람처럼 무거운 체중을 옮기느라고 기우뚱거렸다. 그렇지만 개의 목줄만은 굳건하게 손에 쥐고 놓치지 않았다. 그 사내보다 한 두어 걸음 앞에서 뛰고 있는 개는 주인의 큰 체격을 닮아 송아지만큼 몸집이 컸다. 색깔도 황소색깔이었다. 그 개의 귀는 바나나 나무 잎새처럼 크고 널찍했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 주인의 눈을 덮어버려서 개가 앞으로 다가올 때는 흡사 가면을 쓴 괴물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세 번째 마주친 견공은 한마디로 노신사였다. 적당한 몸집을 지녔는데 눈빛에는 사나운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온화하고 품위 있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물론 이 견공을 이끌고 있는 주인 역시 온화하고 인품이 있어 뵈는 노신사였다. 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변 풍경을 십분 음미해가면서 숲길을 걸어갔다.
"꼭 거길 가셔야겠습니까? 웬만하면 저희 집에 눌러 계시지요. 페테르부르그는 지금 치안도 엉망입니다."
주인 정 사장은 내가 페테르부르그로 혼자 가겠다고 하자, 극구 반대했다.
"혹 저희 집이 불편해 자리를 옮기고 싶어 그러시는지요? 제가 신경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무래도 집사람이 없으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이 집의 주부는 방학을 맞아 애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친정에 머물고 있었다.
"불편이라니, 그건 말도 안 돼요. 내가 여기서 얼마나 즐겁게 지냈는지 박 교수도 알지 않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다만 여기까지 온 김에 친구를 만나보겠다는 생각뿐이라오. 이해해주시오."
자기의 내일 일정을 메모지에 적고 있던 박교수가 메모지에서 눈을 떼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선배님이 자넬 매일 칭찬한 건 사실이야. 꾼쩨바도 무척 맘에 들어하시고. 그런데 그 친구 아직 학생이죠? 졸업했다고 하셨나요? 그거야 어쨌건 아직 새파란 청년인데 선배님 친구라고 할 수 있나요? 뭣하시면 여기서 전화라도 한통 걸어주시죠. 모스끄바에 와서 잘 지내신다고. 만나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시고."
"친구의 개념에 관해 새삼 논쟁할 생각은 없소. 전화나 하려고 했으면 벌써 내가 했지. 여행을 자주 다니는 박 교수와 나는 처지가 달라요. 내게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오."
보드카를 몇 잔째 기울이며 세 사람이 실랑이를 했지만 나는 끝내 고집을 꺽지 않았다.
"할 수 없군요. 기왕에 가시기로 결정하셨다면 안전에나 신경을 써드릴 수밖에요."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드디어 정 사장이 먼저 손을 들었다. 박 교수도 말리기를 단념했는지 더 말이 없었다.
"발로자, 아니, 블라지미르라고 하셨나요? 그쪽 전화번호 갖고 계십니까? 갖고 계시면 저를 주십시오."
정 사장이 전화기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하게요?"
“아니, 참 선배님도. 본인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해보시고 그냥 무작정 가실 겁니까? 지금 그 친구가 거기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
박 교수가 내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꺼내 정 사장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