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도 타이완에 처음 여행했을 때 나는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대만추상곡>(臺灣追想曲)이란 음반 하나를 구입했었다. 그럴싸한 제목에 끌린 것이다. 타이완의 가요, 쉽게 말해 유행가 중 인기곡을 모은 것이라 기대감을 갖고 귀국해서 들어봤는데 전혀 감흥에 와 닿는 것이 없어 실망했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구입한 그쪽 인기가요 음반의 경우도 비슷했다. 전혀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인도의 민속 음악이나 중국식 해금인 얼후로 연주되는 중국 남방 전래곡들은 나 같은 이방인이 처음 들어도 금방 빨려 들어가는 흡인력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타이완이나 베트남의 가요에서도 일정한 감흥을 기대했던 것인데 이 노래들은 마치 우리 미각에 전혀 맞지 않는 남방 음식처럼 내게 낯이 설었다.
<여행길의 밤 바람>(旅途夜風), <정거장의 아쉬운 이별>(車點惜別>,<눈물 같은 이슬비>(淚的小雨), 이런 노래 제목들을 보면 영락없는 우리 가요들이다. 그러나 그 음율은 북방계열인 나 같은 사람의 감흥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타이페이에서 문구점에 들렀다가 현지 제작된 멘델스죤의 <무언가> 음반을 발견하고 신기해서 하나를 구입해 장숙영에게 선물했다. 그녀가 가오슝(高雄)에서 고교에 다니는 아들이 요즘 음악 감상에 한창 빠져 있다고 자랑삼아 말한 게 생각나서 아들에게 가져다주라고 건넨 것이다. 장숙영이 가족 얘기를 한 건 그때 딱 한번 뿐이었다.
장숙영의 남편은 산업도시인 가오슝의 무슨 회사에서 기사(技士)로 일한다는데 이 얘기도 타이페이에서 댐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동행했던 그녀 친구에게서 얻어들었다. 장숙영 자신은 결코 남편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가오슝은 타이페이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중서부 해안 도시이다. 장숙영은 가족과 떨어져 타이페이에서 독립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호텔 뒷뜰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조명등 하나가 벤치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불빛이 너무 희미해서 사람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장숙영은 이미 거기 나와 벤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고 벤치에 앉았다. 처음 화렌에 관한 몇 마디 얘길 주고 받았다.
바다가 좋았느냐? 음식은 크게 불편하지 않은가? 감기몸살 기운은 좀 나아졌는가?
나는 해변 카페의 왕씨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덕분에 화렌의 며칠이 즐거웠노라고 말했다. 대충 그런 얘기들이 오간 뒤에 장숙영이 가방에서 무슨 비닐봉투 큰 걸 하나 꺼내더니 말도 없이 내게 슬며시 내밀었다. 비닐 봉투 속에는 책 반권 분량의 서류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요?"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들고 내가 물었다.
"편지에요. 아주 오래 전에 받은 거랍니다. 뭐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선생님께 불쑥 드려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저로서는 여러 가지 생각한 끝에 선생님께 드리는 게 좋을 듯하다고 판단했어요. 궁금하시면 서울 가셔서 열어보세요."
그 비닐 봉투를 내게 건네고 장숙영이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다른 설명도 해명도 없었다. 이상한 건 나도 거기에 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감기몸살 기운이 남아서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 때문에 두뇌회전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는 겨우 한마디를 혼잣소리로 했을 뿐이다.
"이게 모두 그 사람이 보낸 거로군요."
그러자, 장숙영이 놀라서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아셨지요? 저는 말씀 드린 적 없는데요."
"아, 저도 몰라요. 그러나 누군가 이걸 쓴 사람이 있을 거고 그러니 그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그냥 막연하게 나와 국적이 같은 사람이 아닌가 정도, 그것도 지금 생각한 겁니다."
"그거야 속을 열어보시면 금방 누군지 아실 텐데요."
장숙영은 늘 하던 것처럼 조용히 웃기만 했다.
내가 장숙영에게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 것은 정직한 답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이미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나는 독심술의 대가이거나 영험한 예견력을 가진 인물로 자처하는 꼴이 된다. 김이 확신했던 예감이 틀렸듯이 어쩌면 내 예감도 슬쩍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예감은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의식해오지 않았지만 장숙영을 처음 만났던 시기부터 무의식 가운데 이 예감은 조금씩 조금씩 뚜렷한 모습으로 형태를 갖춰온 것이다. 장숙영의 표정과 말씨, 작은 무수한 몸짓에서 나는 내 예감의 씨앗들을 얻어낸 것이다. 그것은 상대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평범한 예감이었다.
- 지금 저 눈이 서울에서 제가 보는 마지막 눈이 될 거에요 -
그때 강남 일식집에서 이런 말을 하고 쓸쓸하게 웃음짓던 장숙영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편지묶음 전달로 그때의 그 말의 의미가 좀 더 선명해졌다. '한국과의 사랑은 이것으로 끝이에요.'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사랑이 격렬했을수록 그 마감은 비장감을 띠게 된다.
그건 그렇고 장숙영은 빛나는 청춘시대의 유산인 이 은밀한 서신들을 왜 하필 내게 맡기려고 하는 것일까? 태워버리기엔 애달프고 바다에 던져버리기엔 무참해서 친구가 된 내게 물려주려는 것일까? 그가 당신 모국 사람이니 당신에게도 한 가닥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그 나라 작가인 당신이 이걸 가져가는 것도 얼마간 의미 있는 일 아니냐?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이걸로 한편의 소설을 써보라고 내게 권유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던 나는 일단 장숙영의 선물 아닌 선물을 적어도 당시에는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