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차를 빌려 타고 타이루거 협곡을 대강 일순하고 점심 후에 유명한 화렌 우롱차(烏龍茶) 거리로 나가서 우롱차를 한 상자씩 구입했다.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그 거리는 제법 번화하고 즐비한 차 가게들도 경기가 좋아 보였다. 포장지가 그럴싸해서 덩달아 한 상자를 구입했는데 이 우롱차 때문에 엉뚱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귀국해서 모처럼 서재에서 품위 있게 차를 시음한답시고 며칠을 줄곧 마셔댔는데 그만 불면증에 걸려 보름 가까이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이 우롱차가 내포한 카페인이 커피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강한 것을 느꼈다. 중국인들은 오리고기, 돼지고기를 상식하고 그 기름기를 씻어내기 위해 우롱차를 마시지만 씻어낼 기름기가 없는 나 같은 체질의 사람은 우롱차 시음 흉내를 함부로 낼 일이 아니었다.

 

오후 느지막이 명준은 우리를 화렌 해안가로 안내했다. 안내했다기보다 특별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그쪽으로 발길을 향했던 것 같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그 푸르른 코발트 빛깔의 바다를 보게 된 것이다.

 

한없이 조용하고 한없이 푸르른 그 아늑한 바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서 그 바다를 봤을 때 머리가 뻥 뚫린 듯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바다는 기기묘묘한 온갖 장관을 연출하는 타이루거 협곡보다, 이상야릇한 몸치장을 하고 코맹맹이 노래로 관객의 흥미를 끄는 산지족(山地族)의 빈약한 공연보다 훨씬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날 이후 나는 화렌 하면 으레 그 짙푸른 바다를 연상하게 되었다.

 

보통 그림에서 보는 남국 바다라면 물의 색채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르고 작열하는 태양으로 마치 강한 조명으로 연출된 화면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것대로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 바다는 너무 뜨거워서 숨이 가쁘다. 화렌의 바다는 빛이 강하거나 눈이 부시지도 않고 마치 구도가 잘 짜여진 정원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한다.

 

타이페이로 돌아와 장숙영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물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바다가 참 좋더군요. 꼭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은 바다였어요."

 

장교수는 좀 의외라는 듯 잠시 말을 잇지 않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캐묻지는 않았다. 타이페이로 돌아온 우리는 하루를 더 묵은 뒤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년인가 일년 반인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에는 장숙영이 서울에 나타나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 전화는 좀 뜻밖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약간 낮게 가라앉은 장숙영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대뜸 화렌의 그 푸른 바다가 생각났다. 나는 그 바다를 내게 보여준 여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장교수의 전화가 뜻밖이라고 하는 것은 그녀에게 나 말고도 잘 아는 서울의 작가, 이를테면 인기작가 H 같은 인물이 몇 사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늦가을쯤으로 기억된다. 강남 어느 찻집에서 장숙영 교수를 만났다. 일년여 시간이 지났지만 그 모습은 그때 그대로였다. 

 

장숙영은 재색 재킷과 역시 재색 바지를 즐겨 입는다. 아마 언제나 재색 옷을 입었던 것 같다. 목둘레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이 소박한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얼핏 보면 꾸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은근히 차분한 자기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다.

 

장교수는 첫 마디로 작가 H가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내게 불평했다.

 

설마 H가 그럴 리가...? 그는 다정다감하고 심성이 아주 착한 사람인데.....곡마단을 소재로 한 소설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수년째 인기 절정에 있던 H는 바쁘기도 했겠지만 필경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시기가 정확하게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지만 당시 신군부 치하에서 H는 신문연재의 필화사건으로 아주 큰 곤욕을 치렀다. 그와 친한 어느 시인은 그 사건 연루자로 끌려가 지옥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 P 시인의 시집 한권을 나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H가 그 일로 그렇게까지 심한 곤욕을 치렀다는 걸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장숙영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이유가 그 사건 때문이 아닐까,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장숙영은 내게 원로작가 東里 선생과 진보문학계에서 명성이 높던 중견작가 T를 소개시켜 달라고 단도직입으로 부탁했다. 두 사람의 작가, 원로와 중견을 소개시켜 달라는 장교수의 부탁을 나는 쉽게 받아들였다. 그건 내가 시간만 조금 할애하면 되는 일로 전혀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가령 장숙영의 부탁이 내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더라도 나는 즉시 그걸 받아들였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화렌의 바다를 구경시켜 준 장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 그게 아니라도 국제관계 사업인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야 하는 것이었다.

 

이방의 지적인 여성에 대한 나의 감정? 그때 나는 장교수가 기혼인지 미혼인지도 알지 못했다.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다. 사십대 초반이니 응당 기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장숙영은 가정 얘기 같은 건 입에 떠올리지 않았다. 장숙영에게서는 늦게까지 결혼을 미뤘거나 한창 가정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쓸쓸한 분위기 같은 것이 감지되긴 했다. 그러나 이것도 분명한 근거가 없는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이런 느낌을 제외하면 차분하고 여성적이며 도도한 자부심까지 지닌 이 이방의 여성에게 내가 얼마간 호감을 갖고 있던 것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