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 영감 네가 약탈당하자 웨이좡 사람들은 속으로 그지없이 통쾌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서워했다. 아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약탈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만에 아큐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붙잡혀 문 안으로 끌려갔다. 

 

아큐는 목책이 빙 둘러쳐진 어느 집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넓은 대청에는 머리를 빡빡 민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래에는 병정들이 늘어서 있었다. 양옆에는 또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들이 십여 명 서 있었다. 그들도 늙은이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생김새였고, 등 뒤로는 가짜 양놈처럼 한 자쯤 자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모두가 험악한 얼굴로 아큐를 노려보았다. 아큐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일어서서 말해! 꿇어앉지 마!”

 

두루마기를 입은 어떤 사람이 소리 쳤다. 하지만 아큐는 몸이 자기도 모르게 오그라들어서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 노예 근성이구만!”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경멸하듯 소리쳤다.

 

“사실대로 말해라.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바른 대로 말한다면 그냥 풀어줄 수도 있다.”

 

“저는 원래… 그냥… 혁명을 하려고….”

 

아큐는 넋을 놓고 앉아 있다가 겨우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동안 어째서 여기에 나타나지 않은 거냐?”

 

“가짜 양놈 때문에 그렇게 못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봐야 소용 없다. 너놈의 다른 패거리들은 어디 있지?”

 

“누구라굽쇼?”

 

“그 날 밤, 자오 씨네 집을 턴 패거리들 말이다.”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지들끼리만 물건을 챙겨서 가 버렸습니다요.”

 

“그놈들 어디로 갔지? 말하면 놓아주마.”

 

“저는 전혀 모릅니다.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도 않았다니까요.”

 

“그래, 다른 할 말은 없나?”

 

위에 앉아있던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큐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없습니다.”

 

두루마기 입은 사람 하나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아큐에게 가져오더니 손에 붓을 쥐어주려고 하였다. 아큐는 깜짝 놀랐다. 그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손에 붓을 쥐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아큐가 어쩔 줄 모르고 머뭇거리자 그는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키며 서명하라고 하였다.

 

“저…,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아큐는 붓을 꽉 움켜잡은 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냥 너 편한 대로 아무 동그라미나 그려 넣어!”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손이 와들와들 떨려서 잘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큐를 위해 종이를 땅바닥에 고르게 펴 주었다. 아큐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데도 망할 놈의 붓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와들와들 떨면서 간신히 동그라미 모양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붓이 자꾸 손에서 빠져나갔다. 겨우 그려 놓고 보니 동그라미라기보다 수박씨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집 모퉁이에 있는 작은 방에 데려가 가두었다.

 

아큐는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끌려가기도 하고 끌려 나오기도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면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생기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래도 동그라미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하나의 찜찜함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큐는 다시 대청으로 끌려 나왔다. 그 늙은이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할 말이 없는가?”

 

“없습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짧은 웃옷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아큐에게 달려들어 까만 글씨가 쓰인 흰 무명 등거리를 입혔다. 아큐는 아주 기분이 나빠졌다. 모양이 마치 상복 같은데, 상복을 입으면 재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은 옷을 입힐 뿐만이 아니라 아큐의 두 손을 등뒤로 묶어 목책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은 아큐를 포장이 없는 수레에 태웠다. 수레는 금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자위 대원이 있었고, 길거리 양 옆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수근거리고 있었다. 아큐는 그제서야 문득 깨달았다. 이거 나는 지금 목 잘리는 것 아닌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윙하고 울렸다. 그러나 정신을 아주 잃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형장 쪽으로 가지 않을까? 죄인을 처형하기 전에 이렇게 조리돌린다는 사실을 아큐는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조리돌리는 일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큐는 휘휘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마치 개미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길 옆 구경꾼 속에 생각치도 못한 우 씨 아줌마가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큐는 자신이 배짱 두둑하게 노래도 한 마디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머릿속에 할 줄 아는 노래 제목들이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았다. 그래 좋다! ‘쇠채찍으로 네녀석을 후려갈기마’를 부르자. 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두 손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노래 부르기도 포기해야 했다.

 

무리들 속에서 마치 승냥이 떼가 울부짖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수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둘러보았다. 4년 전 산기슭에서 만났던 굶주린 이리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때 아큐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거의 기절해 죽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손에 든 도끼 한 자루를 믿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사히 웨이좡까지 돌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이리의 눈은 잊을 수가 없었다.

 

사납고도 무서운 이리의 두 눈은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렸다. 멀리서부터 쫓아와 자기 몸을 꿰뚫을 것 같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큐는 이제 다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눈길들을 보았다. 그 눈알들은 이미 자기 살을 씹어 삼켜 버렸고, 뿐만 아니라 아큐의 살 말고 다른 것들까지 씹어 삼키려고 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뒤를 따라오면서, 이 눈알들은 하나로 합쳐져 벌써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큐는 어떤 소리도 입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미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귀가 윙하고 울렸다. 온 몸이 먼지처럼 풀썩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뒤 여론을 들어 보면, 웨이좡에서는 아큐의 사형에 대해 별로 이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은 그 증거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을 당했겠는가? 그러나 또 한편 문 안에서는 대부분 불만이었다. 확실히 총살은 목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사형수 치고는 얼마나 시시한 모습이란 말인가. 그렇게 오래 조리를 돌렸는데도 노래 한 마디 하지 못하다니! 그들은 기껏 헛걸음만 했다고 불만이었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