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큐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길거리 담장 밑에서 왕털보가 벌거벗고 이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털보는 부스럼으로 머리가 벗겨진데다 털북숭이여서 모두들 그를 ‘왕대머리 털보’라고 불렀다. 왕털보는 이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계속 잡아서 입에다 넣고 툭툭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아큐는 왕털보가 이 잡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왕털보 옆으로 가서 앉아 자신의 다 떨어진 겹저고리를 벗어 들춰보았다. 새로 빨아서 그런지, 아니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이를 서너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아큐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울화가 치밀었다.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는 저렇게 이를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겨우 이것밖에 못 잡다니! 이것은 얼마나 체면이 깎이는 일인가. 아큐는 잡은 이를 입에 넣고 힘을 꽉 주고 깨물었다. 그러자 픽 하는 소리가 났다. 깨무는 소리조차 왕털보에게 못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아큐의 부스럼 자국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큐는 옷을 땅바닥에 냅다 팽개치고 길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이 털버러지 같은 놈아!”

 

“이 개 같은 자식이 누구한테 욕이야!”

 

왕털보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이런 털북숭이가 감히 지껄여? 아큐는 자신을 항상 두들겨패는 건달패들이라면 겁을 먹었겠지만, 왕털보쯤이야 못 당할까 싶어 용감하게 대들었다.

 

“누구긴? 바로 네놈한테 욕하는 거지.”

 

“이 자식, 몸뚱이가 근질거리나 보네?”

 

왕털보가 일어나 옷을 주워 입으면서 말했다. 아큐는 그가 도망친다고만 생각하고 잽싸게 달려들어 한 대 갈기려고 했다. 하지만 아큐의 주먹이 왕털보에게 닿기도 전에 오히려 그에게 손을 잡혀 버리고 말았다. 왕털보는 아큐의 변발을 낚아채더니 채 담장 앞으로 끌고가 호되게 머리를 쳐박고 말았다.

 

아큐로서는 아마 이것이 평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일로 기억되었을 것 같다. 자신은 왕털보 따위는 털북숭이라고 늘 비웃어 주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청하게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아큐가 이 마을에서 제일 미워하는 첸 영감의 큰아들이 걸어왔다. 그는 도시에 있는 서양 학교에 들어갔다가 반 년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도 없어져 버렸다. 그 일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열 번도 넘게 통곡을 했고, 그의 여편네는 세 번이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를 볼 때마다 아큐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변발이 없으니 사람 노릇할 자격도 없으며, 그의 여편네도 역시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정숙한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중대가리 새끼, 나귀….”

 

아큐는 그 동안은 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했지 감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울화가 치밀어 누구라도 붙들고 분풀이를 해야 할 판이라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를 입밖에 내어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자 중대가리가 노랗게 칠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아큐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더니 아큐는 딱 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애한테 말했는데!”

 

아큐는 곁에 있던 한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아큐의 평생에서 이것은 두 번째로 큰 굴욕이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도착할 즈음에는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휘하여 그래도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앞쪽에 이 마을 근처 정수암에 있는 젊은 여승이 걸어왔다. 평소에도 아큐는 여승만 보면 욕을 해댔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지금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있으랴! 그는 아까 겪은 굴욕을 기억하고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오늘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너를 보려고 그랬던 것이구나!’

 

아큐는 이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침을 뱉었다. 하지만 젊은 여승은 아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걷기만 했다. 아큐는 여승에게 다가가서 새로 깎은 여승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헤벌레하게 웃었다.

 

“아이고, 이런 망나니가….”

 

여승은 얼굴이 빨개져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선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와 웃어댔다. 아큐는 그 소리에 더욱 신이 난데다 구경꾼들을 더 만족시키고 싶어서 이번에는 힘을 주어 여승의 머리를 꼬집어 버렸다. 이 승리로 아큐는 왕털보 일도, 가짜 양놈 일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있었던 재수 없는 일들을 이 일로 모두 만회한 기분이었다.

 

“이 씨도 못 받을 더러운 아큐 자식아!”

 

멀리서 젊은 여승이 울먹이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