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는 금방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투구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날 밤, 아큐는 밤새도록 눈을 붙이지 못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던 것이다. 왠지 보통 때보다 훨씬 매끄러운 것 같았다. 젊은 여승의 머리 피부에서 느꼈던 그 매끄러운 감촉이 손가락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씨도 못 받을 더러운 아큐 자식!”
젊은 여승의 목소리가 아큐의 귓전에 울렸다. 아큐는 생각했다.
“그래, 여자가 있어야지. 자식이 없으면 늙어서 밥 한 그릇도 공양받지 못할 것 아닌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것은 가장 큰 슬픔이다. 여자, 여자, 여자!”
그는 낮에 보았던 젊은 여승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달아올랐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야흐로 이립(而立, 30세)의 나이에 기껏 젊은 여승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달아오르다니. 그는 평소에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 즉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여승은 자기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이상한 수작을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큐는 여승에게 유혹당했다. 이것 역시 여자들이 나쁜 종자라는 증거 중 하나였다.
다음날 아큐는 자오 영감 집에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은 뒤 저녁 밥을 먹고 부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이 때, 설거지를 마친 자오 영감 네 하녀 우 아줌마가 아큐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님이 이틀째 아무것도 안 먹네? 이게 다 영감님이 첩을 사 오신 때문이지 뭐야….”
“여자…, 우 아줌마…, 과부…, 여자들….”
아큐는 느닷없이 담뱃대를 팽개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느닷없이 우 아줌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줌마,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자니깐!”
우 아줌마는
“어머나!”
질색하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갔다. 아큐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넋을 잃고 꿇어앉아 있었다. 갑자기 딱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어찔해졌다. 돌아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못된 자식! 지금 무슨 수작을 한 거야?”
수재는 굵은 대나무 막대기로 아큐의 머리를 인정사정 없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문 밖으로 뛰어 달아났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식!”
수재가 뒤에서 욕을 했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몹시 쑤셨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식’이라던 수재의 말이 귓가에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아큐는 마음이 찜찜했지만 곧 쌀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아큐는 그 소리를 좇아 밖으로 나갔다. 소리는 안뜰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곳에는 자오 영감 네 식구들이 모여 있었고, 이틀 동안이나 끼니도 걸렀다는 안방 마님까지 함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의 쩌우치 댁과 자오바이옌, 자오쓰천도 있었다. 작은 마님이 우 아줌마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이리 나와. 네가 품행이 바르다는 걸 누가 모르겠니?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절대 안 돼.”
우 아줌마는 손을 붙잡힌 채 밖으로 끌려나와 울기만 했다.
“흠, 이거 재미있군. 이 과부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는 걸까?”
아큐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재가 아까처럼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에게 달려왔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아큐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아큐는 몸을 돌려 잽싸게 도망쳤다.
그리고 자오 영감 네 뒷문으로 빠져 나와 한 걸음에 투구츠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온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봄이라 해도 밤에는 아직 상당히 쌀쌀했다. 그제야 윗도리를 자오 영감 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걸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대나무 막대기가 무서웠다.
그 때 자오 영감 네 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큐, 이 개자식아! 자오 영감 네 하녀에게 찝적대는 바람에 나까지 잠을 못 자게 했잖아.”
하인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으나 아큐는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밤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하인에게 술값까지 줘야 했다. 아큐에게는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혔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섯 가지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붉은 초 한 쌍, 향 한 봉을 가지고 자오 영감 네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2. 자오 영감 네에서 무당을 불러, 목을 매어 죽게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부담한다.
3. 이후로 아큐는 자오 영감 네 문턱도 밟을 수 없다.
4. 이후 우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아큐에게 묻는다.
5. 아큐는 품삯과 윗도리를 찾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