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큐가 웨이좡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추석이 막 지났을 즈음이었다. 날이 어스름해질 무렵, 아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을 선술집에 나타났다. 아큐는 주인에게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한 주먹 꺼내 계산대에 늘어놓았다.
“현금 줄 테니 술 가져와!”
아큐가 입고 있는 옷은 새로 맞춘 겹옷이었다. 아큐는 허리에 큰 전대를 차고 있었다. 전대는 묵직하게 늘어져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매고 있었다. 심부름꾼, 주인, 손님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마음속에서 아큐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사람도 있었다.
“아큐 아닌가! 이제 돌아왔군. 어디서 돈을 많이 벌었나 보구만.”
“응, 이제 돌아왔어. 나도 문 안에 갔다 왔지.”
아큐의 소문은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아큐가 그 동안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궁금해 했다. 주막과 찻집, 사당의 처마 밑 등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은 아큐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큐는 어느 틈엔가 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큐의 말에 의하면 그 동안 문 안 거인(擧人, 과거에 급제한 선비)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이것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이 마을 사방 일백 리를 통틀어서 거인은 오직 그 분뿐이었다. 그 댁에서 일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존경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큐는 거인 영감이 실제로는 개 같은 자식이라며, 다시는 그 집에서 일을 하고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큐의 말을 들으며 일변 통쾌해 하고 일변 탄식하기도 했다. 아큐 같은 인간이 거인 영감 같은 분의 집에서 일을 거든다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집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뭔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봐 자네들, 사람 목 자르는 것 본 적 있나? 야 정말 볼 만해. 혁명당 놈들을 죽이는데, 정말 굉장했다고!”
아큐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몸을 흠칫했다. 아큐는 느닷없이 왕털보의 뒷덜미를 손으로 내려치며
“싹둑!”
큰 소리로 외쳤다. 왕털보는 깜짝 놀라 얼른 목을 움츠렸다.
얼마 안 가서 아큐의 명성은 안방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쫙 퍼져나갔다.
“쩌우치 네는 아큐에게 남색 비단 치마를 샀대.”
“자오바이옌 엄마도 애들 빨간 모슬린 저고리를 아큐에게서 샀다는군. 단돈 30전밖에 안하더래.”
여자들은 모여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아큐가 나타나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아큐에게서 마음에 드는 비단 치마를 산 쩌우치 댁은 기뻐하며 자오 마님에게 들고 가서 자랑을 하였다. 자오 마님은 싸고 좋은 털배자를 사고 싶다며, 쩌우치 댁에게 당장 아큐를 찾아서 자기 앞으로 데려오라고 하였다. 자오 씨 댁 식구들은 마음을 졸이며 아큐를 기다렸다. 한참 기다린 뒤에야 아큐가 쩌우치 댁을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큐, 그 동안 문 안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지? 실은 나도 좀 필요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말야….”
“지금은 다 팔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벌써 다 팔았다고? 그럼 다음에라도 물건을 받으면 제일 먼저 우리 집으로 가져오거라.”
하지만 아큐는 별로 내키지 않다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자오 영감과 수재는 아큐의 이렇게 불손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마을에서 당장 쫓아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웨이좡 마을 건달패들은 아큐에게 돈을 벌게 된 내막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큐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우쭐거리며 자기가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사실 아큐는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큐가 직접 담을 넘은 것은 아니고, 단지 밖에서 훔친 물건만 받기만 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큐가 결국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역시 아큐는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