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는 사죄 절차를 끝낸 뒤, 그냥 평소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하지만 마을 여자들은 그때부터 아큐를 보기만 하면 집안으로 숨어들기 바빴다. 심지어는 나이가 쉰 살이 다 되는 쩌우치 네 마누라까지도 남들 따라 숨는 게 아닌가? 게다가 겨우 열한 살밖에 안 된 계집애들까지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아큐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선술집에서도 이제 외상으로 술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더우기 며칠 동안 와서 일을 해달라는 사람들조차 사라졌다. 외상 술을 주지 않는 것이야 술 마시고 싶은 것을 참으면 그만이지만, 일해달라는 사람조차 없어지면 아큐는 그대로 굶주려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으로 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오 영감 네에서는 샤오디를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샤오디란 놈은 바짝 말라빠진 체격고 힘이 없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놈이 와서 아큐 자기의 밥줄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며칠 후, 아큐는 첸 영감 네 집 담벼락 근처에서 우연히 샤오디를 만났다. 아큐는 다짜고짜 샤오디에게 덤벼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 개 같은 자식아!”
아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저절로 침이 튀어나왔다.
“그래, 나는 버러지야. 이제 됐지?”
샤오디가 말했다. 아큐는 샤오디의 겸손이 오히려 기분이 나빴다. 그대로 덤벼들어 샤오디의 변발을 낚아챘다. 샤오디는 한 손으로 자기 머리채 뿌리를 감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큐의 변발을 잡아챘다. 옛날 아큐라면 샤오디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큐가 요즘 들어 계속 굶주린 상태여서 샤오디 못지않게 말라빠진데다 힘도 약해진 상태였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아큐와 샤오디 둘 다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큐의 손이 늦추어지자 샤오디도 손에서 힘을 뺐다.
“어디 두고 보자, 개새끼….”
싸움은 그냥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큐에게는 여전히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날이 이제 상당히 따뜻해졌다. 하지만 아큐는 불어오는 산들바람마저도 따뜻한 바람이 아닌, 싸늘한 가을 바람처럼 느껴졌다. 바람이야 그냥 견딘다고 해도, 배가 고픈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큐는 별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아무 것이나 먹을 것을 구해보기로 했다.
새로 모를 낸 논들이 연푸른 색으로 눈부셨다. 드문드문 밭을 가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먹을 것을 찾아서 무작정 걷다 보니, 아큐는 어느덧 정수암까지 와 있었다. 야트막한 담벼락 너머로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큐는 망설이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큐는 담을 기어 올라갔다. 담벼락의 흙덩이가 부스스스 굴러떨어졌다. 아큐는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간신히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뜰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무밭에 쪼그리고 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둥그런 머리가 나타났다. 정수암의 늙은 여승이었다. 아큐는 잽싸게 무 네 뿌리를 뽑아 품 속에 집어넣었다.
“나무아미타불. 아큐, 왜 남의 채소밭에서 무를 훔치는 거냐?”
“내가 언제 당신 채소밭에서 무를 훔쳤다는 거야?”
아큐는 도망치면서 뒤를 흘낏거렸다. 늙은 여승이 소리쳤다.
“당신 품 속의 그건 뭐야?”
“이게 당신 거야? 무한테 이게 당신 거라고 말을 시켜봐. 시켜보라고.”
아큐는 곧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커다란 검정개 한 마리가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물어뜯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 품에서 무뿌리 하나가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검정개는 놀라 멈칫하였다. 그 틈에 아큐는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