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가 전대를 자오바이옌에게 팔아 넘긴 날, 커다란 배 한 척이 자오 영감 네 나루터에 도착했다. 바로 거인 영감의 배였다. 그 배가 나타나자 웨이좡 사람에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 그날 정오가 되기도 전에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혁명당 때문에 거인 영감이 마을로 피난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던 것이다.
아큐는 문 안에 있을 때 혁명당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기 눈으로 혁명 당원이 참수 당하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아큐는 혁명당은 역적들이며, 역적질을 하는 놈들은 항상 벌을 받는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을 막연하마나 증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뜻밖에도 그들이 이 근처 백 리 사방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인 영감까지 두렵게 하는 것이었다. 아큐로서는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이란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세상을 뒤집어 엎는다는 거잖아. 에이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나 되어볼까? 혁명이다, 혁명! 좋았어! 내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라는 거야. 계집이든 뭐든 말이야!”
자오 영감 네 두 나으리와 자오바이옌도 대문간에 나와 혁명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노래를 부르며 그 앞을 지나갔다. 자오 영감이 아큐를 불러 세웠다.
“이봐 아큐 군! 아큐 군, 저어… 요새 돈은 잘 버나?”
“돈이라고? 물론, 갖고 싶은 건 모두….”
“아…큐 형, 우리 같은 가난뱅이야 뭐 상관없겠지?”
자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짐짓 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가난뱅이라고? 너야 나보다 부자잖아.”
아큐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 길을 걸어갔다. 그는 마음이 들떠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혁명이라? 이거 재미있는데…. 웨이좡 촌놈들이야 앞으로 아마 볼 만할 거야. 다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하겠지. 아큐, 제발 목숨만 살려 줘 이렇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콧방귀나 뀔 줄 아나? 첫 번째로 죽일 놈은 자오 영감, 수재, 또 가짜 양놈…. 그런 다음에는 우선 수재 여편네의 침대를 투구츠로 옮겨 놓고, 그리고 나서 첸 가(哥)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그 다음엔 여자를 데려와야지. 쩌우치네 딸년은 아직 애송이고, 가짜 양놈 여편네는 변발도 없는 녀석과 잤으니, 흥 제대로 된 여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아큐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거리로 나가 보니 이상하게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배가 고픈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큐는 천천히 걷다가 어느덧 정수암에 이르렀다.
암자는 지난 번처럼 조용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두드렸다. 검은색 대문에 흠집이 날 만큼 두드린 뒤에야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늙은 여승이 문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너는 뭐하러 또 온 거냐?”
“혁명이다, 혁명! 너도 알고 있지?”
“혁명이라고? 혁명은 벌써 했단다. 도대체 네놈들이 혁명한다고 해서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늙은 여승은 핏대를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그것도 몰랐단 말잉댜? 그놈들이 벌써 혁명을 다해버렸어.”
“누구 말이야?”
“수재하고 양놈?”
너무나 뜻밖이었으므로 아큐는 어리둥절했다. 늙은 여승은 아큐가 말문이 막히는 모습을 보자 재빨리 문을 잠가 버렸다.
자오 영감 네의 수재는 혁명당이 지난밤에 마을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올렸다. 그리고 여태껏 상대도 하지 않았던 가짜 양놈 첸 가를 아침 일찍 방문했다. 그들은 곧 동지가 되어 함께 혁명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머리를 짜낸 끝에 정수암에 ‘황제 만세 만만세’라고 새긴 용패가 있다는 걸 생각했다. 그들은 곧바로 암자로 달려가 혁명을 했다. 늙은 여승이 막아서서 잔소리를 했으나, 그들은 여승을 만주 정부와 한 패로 몰아 몽둥이질을 했다. 그들이 간 뒤에야 여승이 정신을 차려 보니, 용패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큐는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잔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괘씸한 일은 그들이 그렇게 중요한 일에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