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금방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다. 불 난 집에서 뛰쳐나온 말이 안장도 얹지 않고 밤낮으로 집 주위를 날뛰며 돌아다니고, 졸개들이 우왕좌왕하며 그 말들을 쫓아다니는 그런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집 안은 그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집에는 젊은 어머니와 세 살짜리 아이가 있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가고 없다. 아버지가 어디론가 가던 날은, 달도 없는 한밤중이었다. 아버지는 이불 위에서 짚신을 신고 검은 두건을 쓰고, 뒷문으로 나갔다. 그때 어머니가 들고 있던 초롱불 빛이 어둠 속에 가늘고 길게 드리워, 울타리 앞에 있는 커다란 늙은 소나무를 비추었다.
아버지는 그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 계셔?" 하고 매일 묻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쯤 지나자 "저어기" 하고 대답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언제 오셔?" 하고 물어도 역시 "저어기" 그렇게 대답하곤 웃었다. 그러면 어머니도 같이 웃었다. 그리곤 "이제 곧 오신단다"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곧' 이란 말만을 기억했다. 가끔 "아빠는 어디 계셔?" 하고 물으면 "이제 곧" 이라고 대답할 때도 있었다.
밤이 되어 사방이 적막에 휩싸이면, 어머니는 허리띠를 고쳐 매고 상어 가죽 칼집에 든 단도를 허리띠에 꽂고, 가느다란 띠로 아이를 등에 들쳐 업고는 살짝 뒷문을 빠져나간다. 어머니는 항상 조리(엄지와 둘째 발가락을 끈에 끼우는, 일본식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이는 자박자박 울리는 이 조리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등에서 잠이 들어버릴 때도 있었다.
흙담이 이어져 있는 큰 저택 옆을 서쪽으로 걸어 완만한 비탈길 끝까지 내려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이 은행나무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돌아가면, 한 구획을 지나서 돌로 만든 도리이(신사 입구의 문)가 있다. 한쪽은 밭이고 또 다른 한쪽은 얼룩 조리대가 무성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 도리이를 지나면 어두운 삼나무 숲이 나온다. 거기서 다시 스무 칸 정도 돌길을 따라 쭉 가면, 오래 된 배전(拜殿) 계단 밑으로 오게 된다.
빗물에 씻겨 색깔이 회색으로 바랜 시주함 위에 커다란 방울을 매단 끈이 걸려 있고, 낮에 보면 그 방울 옆에 하찌만구우(八幡宮)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여덟 팔 글자가, 비둘기 두 마리가 마주보는 것 같은 서체로 쓰여 있는 모양이 재미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현판이 걸려 있다. 대개 사무라이가 쏘아 맞힌 과녁에 금빛을 칠해, 쏜 사람의 이름과 함께 걸어 놓은 것이 많다. 가끔은 긴 칼을 간직해둔 것도 있다.
도리이를 지나면 삼나무 가지 끝에서 언제나 부엉이가 울고 있다. 그리고 짚으로 된 조리를 끄는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가 배전 앞에서 그치면, 어머니는 우선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고, 곧바로 쭈그려 앉아 손뼉을 친다. 그러면 대개 부엉이가 울음을 뚝 그친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정신을 모아 열심으로 아버지가 평온무사하기를 빈다. 어머니는, 남편이 사무라이니까 활의 신 하찌만(八幡)을 모신 신사에 와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아마 들어 주실 거라고 믿는 것이다.
아이는 가끔 이 방울 소리에 깨어난다. 깨어나 주위를 보면 캄캄한 어둠이어서 갑자기 등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입 속으로 무어라고 빌면서 등을 흔들어 어르려고 한다. 어떨 때는 쉽게 울음을 그치기도 한다. 또 어떨 때는 점점 더 심하게 울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어머니는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대강 남편의 안전을 빌고 나면, 이번에는 끈을 풀어 등에 업었던 아이를 조금씩 살그머니 앞으로 돌려서는 두 손으로 안고 배전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 아기 착하지, 조금만 기다려라" 하고는 자기 뺨을 아이의 뺨에다 비빈다. 띠를 길게 풀어서 아이를 묶어 놓고, 한쪽 끝을 배전 난간에 매어 놓는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가 스무 칸 돌길을 왔다갔다하면서 백번길 치성(일정 구간을 백 번 왔다갔다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리기 시작한다.
배전 난간에 묶여 있는 아이는 어둠 속에서, 끈 길이가 닿는 데까지 넓은 마루 위를 기어다닌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아주 편안한 밤이다. 하지만 매어놓은 아이가 앙앙거리며 울어대면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한다. 백번길 치성을 드리는 발걸음이 자연 빨라진다. 어쩔 수 없을 때는, 도중에 배전까지 올라와서 어떻게든 달래놓고 처음부터 다시 백번길 치성을 시작하는 일도 있다.
이렇게 어머니가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마음 졸여 염려하던 아버지는, 그러나 벌써 오래 전에 떠돌이 사무라이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꿈 속에서 어머니한테 들었다.
열흘 밤의 꿈 - 아홉째 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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