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로(庄太郞)가 여자한테 붙잡혀갔다가 이레째 되는 날 밤 홀연히 돌아와, 갑자기 열이 나며 몸져누웠다고 겐씨가 알리러 왔다.
쇼타로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미남 청년이며 무척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나쁜 취미를 갖고 있다. 저녁이 되면 파나마 모자를 쓰고 과일 가게 앞에 걸터앉아, 길 가는 여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작정 감탄한다. 그 밖에는 이렇다 할 만한 특색이 없는 사나이다.
여자들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을 때는, 길거리를 보지 않고 과일을 본다. 과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복숭아, 사과, 비파, 바나나 따위를 보기 좋게 바구니에 담아, 금방 선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두 줄로 늘어 놓았다. 쇼타로는 이 바구니를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장사 중에서는 과일 장사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파나마 모자를 쓰고 빈둥거리며 지내고 있다.
이런 색깔이 좋다며, 금귤(여름에 열리는, 껍질이 두껍고 작은 귤) 따위를 품평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돈을 내고 과일을 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공짜로 먹는 일도 물론 없다. 그저 색깔을 칭찬할 뿐이다.
어느 날 저녁, 한 여자가 불쑥 가게 앞에 나타났다. 지체 있는 집 사람인지 옷차림이 무척 비싸 보인다. 그 옷의 색깔도 무척 쇼타로의 마음에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쇼타로는 여자의 얼굴 생김새에도 무척 감탄했다. 그래서 그 소중한 파나마 모자를 벗어들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여자는 가장 큰 바구니를 가리키면서 "이걸로 주세요" 라고 했다. 쇼타로는 얼른 그 바구니를 집어서 건네 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그 바구니를 잠깐 들어 보더니 "꽤 무겁네요" 하고 말했다.
쇼타로는 원래 한가한 사람인데다 대단히 상냥한 성품이었기 때문에 "그럼 댁에까지 들어다 드리지요" 하고는 그 여자와 함께 과일 가게를 나섰다.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쇼타로라지만 이건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며 친척과 친구들이 법석을 떨고 있는데, 이레째 되는 날 밤에 쇼타로는 홀연히 돌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들 둘러싸고 "그동안 어디 갔었느냐"고 묻자, 쇼타로는 전차를 타고 산에 갔었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아주 긴 전차 여행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쇼타로의 말에 의하면, 전차에서 내리자 바로 들판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들판은 아주 넓었고, 보이는 곳마다 파란 풀이 온통 덮여 있었다. 여자와 함께 풀밭 위를 걸어가자, 갑자기 낭떠러지 꼭대기가 나타났다. 그러자 여자가 쇼타로에게 "여기서 뛰어내려 보세요" 하고 말했다. 밑을 보니 낭떠러지만 보이고, 바닥은 보이질 않는다.
쇼타로는 파나마 모자를 벗어 보이며 거듭 거절했다. 그러자 여자가 "만약 지금 용감하게 뛰어내리지 않으면 돼지한테 욕을 보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하고 물었다. 쇼타로는 돼지와 구모에몬(雲右衛門, 메이지 시대의 대중 가수)을 아주 싫어했다. 하지만 목숨과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뛰어드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 한 마리가 콧김을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쇼타로는 별 수 없이 갖고 있던, 가느다란 빈랑나무 지팡이로 돼지의 콧등을 쳤다. 돼지는 꿀 하며 나동그라져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쇼타로가 휴 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으려니까, 돼지가 또 한 마리 커다란 코를 쇼타로한테 문지르러 왔다. 쇼타로는 어쩔 수 없이 또 지팡이를 휘둘렀다. 돼지는 꿀 하고는 또 낭떠러지 아래로 거꾸로 떨어졌다. 그러자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때 쇼타로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저쪽을 바라보니, 멀리 푸른 풀숲이 끝나는 지평선에서부터 셀 수도 없는 수 만 마리 돼지가 떼를 지어 일직선으로,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쇼타로를 향해 꿀꿀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쇼타로는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가오는 돼지의 콧등을 일일이 빈랑나무 지팡이로 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돼지는 지팡이가 코에 닿기만 하면 맥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돼지 떼가 거꾸로 줄지어 떨어져 간다. 내가 이렇게 많은 돼지를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렸나 생각하니, 쇼타로는 자기가 한 일이면서도 무서워졌다. 하지만 돼지는 계속 다가온다. 검은 구름에 다리가 달려 파란 풀을 밟아 걸어오는 것처럼, 무진장으로 꿀꿀거리며 다가온다.
쇼타로는 필사적으로, 여섯 밤 하고도 이레 동안이나 돼지 콧등을 두들겼다. 하지만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손이 묵처럼 늘어져 결국은 돼지한테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낭떠러지 위에 쓰러졌다.
겐씨는 쇼타로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는 "그러니까 여자를 너무 바라보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겐씨는 쇼타로의 파나마 모자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쇼타로는 아마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파나마 모자는 겐씨가 차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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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밤의 꿈 - 열째 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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