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케이(運慶, 가마쿠라 시대의 조각가)가 고꼬구지 절(護國寺)의 산문에서 인왕을 새기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산책 겸 가 보니, 나보다도 먼저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는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산문에서 대여섯 칸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적송이 있는데, 그 적송 줄기가 비스듬히 산문의 지붕 기와를 가리며 먼 창공까지 뻗어 있다. 푸른 소나무와 붉게 칠한 산문의 빛깔이 서로 대조적이어서 무척 멋있어 보인다. 게다가 소나무의 위치가 좋다. 문 왼쪽 끝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비스듬히 위로 뻗어 올라가며 갈수록 폭이 넓어져 지붕까지 뻗어 있는 것이 어쩐지 고풍스럽다. 가마쿠라 시대(12세기 말부터 14세기 중반)인 것 같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죄다 메이지 시대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인력거꾼이 가장 많다. 손님을 기다리다가 심심풀이 삼아 서 있는 것에 틀림없다.

"엄청나게 크기도 하군." 하고 말한다.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힘들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허어, 인왕이로군. 요새도 인왕을 만드나? 그렇구먼... 난 또 인왕은 전부 옛날 것만 있는 걸로 생각했지." 라고 말하는 남자도 있다.

"정말 힘이 세어 보이는군요. 뭐라더라, 옛날부터 뭐니뭐니 해도 인왕만큼 힘센 사람은 없다잖아요? 어쨌든 야마또 다께노미꼬또(日本武尊, 일본 고대 역사에서 일본 동부를 평정한 영웅)보다 더 세다구 그러지 않던가요." 하고 말을 걸어온 남자도 있다. 이 남자는 엉덩이가 보일 만큼 옷자락을 치켜서 걷어올리고, 모자도 쓰지 않고 있다. 어지간히 무식한 사람인 모양이다.

운케이는 구경꾼들의 평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끌과 나무망치를 움직이고 있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높은 발판에 올라서서, 인왕의 얼굴 부분을 열심히 파 나가고 있다.

운케이는 머리에 작은 두건 같은 것을 쓰고, 조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옷의 넓은 소맷자락을 등뒤에서 묶어 놓았다. 그 모습이 아주 고풍스럽다. 떠들썩한 구경꾼들과는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 나는 어째서 운케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가 하고 생각했다. 정말 이상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서서 지켜 보았다.

그러나 운케이는 전혀 이상하거나 묘하다고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열심히 조각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 고개를 쳐들고 이 모습을 바라보던 한 젊은 남자가 나를 돌아보더니,

"역시 운케이는 다르군요. 우리 같은 건 전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에요. 천하의 영웅은 오직 인왕과 나뿐이라는 태도에요. 정말 대단하군요." 하며 칭찬을 시작했다.

나는 이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흘낏 그 젊은 남자를 쳐다봤더니, 젊은 남자는 곧바로,

"저 끌과 망치 다루는 솜씨 좀 보십시오. 자유자재의 경지라고 해야겠지요."했다.

운케이는 그때 굵은 눈썹을 한 치 굵기 가로로 파내더니, 끌을 세로로 젖히자마자 위에서 비스듬히 망치로 내리쳤다. 단단한 나무가 단숨에 깎여, 두꺼운 나뭇조각이 망치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콧구멍이 크게 벌어진 매부리코의 옆 모습이 드러났다. 끌을 다루는 그 솜씨가 전혀 거침이 없어 보였다.

"저렇게 아무렇게나 끌을 쓰는데도, 용케 눈썹이니 코가 마음 먹은 대로 만들어지는구만." 나는 너무 탄복해서 이렇게 혼자말처럼 말했다. 그러자 아까 그 젊은 남자가,

"아니죠, 끌로 저런 눈썹이나 코를 만드는 게 아니지요. 저런 눈썹이나 코가 나무 속에 원래 묻혀 있는 것을 끌과 망치로 긁어낼 뿐이죠. 마치 흙 속에 묻혀있는 돌을 파내는 거나 마찬가지니, 절대 실패할 리가 없어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조각이란 그런 건가 하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갑자기 나도 인왕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나는 구경을 그만두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도구 상자에서 끌과 망치 따위를 갖고 나와 뒤뜰로 가 보니, 며칠 전 폭풍으로 넘어진 떡갈나무를 장작으로 만들려고 톱으로 잘라놓은, 적당한 나무토막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가장 큰 놈을 골라서 신나게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다음 나무토막에서도 역시 운 나쁘게 파낼 수 없었다. 세 번째 것에도 인왕은 없었다. 나는 쌓아놓은 장작을 닥치는 대로 파 보았지만, 인왕은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메이지 시대의 나무에는 결코 인왕이 파묻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운케이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유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