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커다란 배를 타고 있다.
이 배가 밤낮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간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다만 파도 밑에서 시뻘겋게 달군 부젓가락 같은 해가 솟아오른다. 태양은 높은 돛대 한가운데 와서 잠시 걸려 있다가, 어느 새 큰 배를 앞질러 가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뻘겋게 달구어진 부젓가락처럼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파도 밑으로 잠긴다. 그럴 때마다 푸른 파도가 멀리서 보랏빛으로 끓어오른다. 그러면 배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라간다. 하지만 결코 따라잡지는 못한다.
어느날 나는 뱃사람 하나를 붙들고 물어 보았다.
"이 배는 서쪽으로 갑니까?"
뱃사람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잠시 나를 보고 있더니, 이윽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되물었다.
"떨어지는 해를 뒤쫓아가고 있으니까요."
뱃사람은 껄걸 웃었다. 그러고는 저쪽으로 가 버렸다.
"서쪽으로 지는 해, 종착지는 동쪽이냐, 그게 정말이냐, 동쪽에서 뜨는 해, 고향은 서쪽이냐, 그것도 정말이냐. 몸은 물결 위, 키를 베개 삼아, 흐르네, 흘러가네." 하고 흥겨운 소리가 난다. 뱃머리에 가 보니, 뱃사람들이 잔뜩 모여 굵은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언제 육지에 오르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파도를 헤치고 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물결은 굉장히 높다. 한없이 푸르게 보인다. 때로는 보라빛이 되었다. 다만 배가 움직이는 주위에는 항상 하얗게 거품이 일었다. 나는 몹시 불안했다. 이런 배를 타고 있느니 차라리 몸을 던져 죽어 버릴까 생각했다.
배에 탄 손님은 많았다. 대개 외국 사람 같았다. 하지만 모두들 갖가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흐려지고 배가 흔들릴 때, 한 여자가 난간에 기대 서서 자꾸만 울고 있었다. 눈물을 닦는 손수건 색깔이 하얗게 보였다. 하지만 옷은 사라사(새나 짐승, 꽃이나 나무 등 화려한 무늬의 옷감) 천으로 만든 양장이었다. 이 여자를 보고, 나 혼자만 슬픈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밤, 갑판으로 나가서 혼자 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어떤 외국 사람이 다가와서는 천문학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도무지 재미가 없어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천문학 같은 건 알 필요가 없었다.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그 외국인이 금우궁(金牛宮) 별자리에 있는 일곱 개의 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리고 별도 바다도 모두 신이 만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늘만 쳐다보며 잠자코 있었다.
어느 날 살롱에 들어가자,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돌아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키가 크고 멋진 남자가 서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 입이 아주 커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기네 두 사람에 관한 일 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점점 더 따분해졌다. 드디어 죽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과감하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발이 갑판을 떠나 배와 인연이 끊긴 그 순간,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졌다. 안 뛰어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싫으나 좋으나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아주 높은 배여서, 몸은 배를 떠났지만 발은 좀처럼 물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붙잡을 것이 하나도 없어, 차츰 물에 가까워진다. 아무리 다리를 오무려 봐도 가까워진다. 물은 검은 빛깔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배는 여전히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 버렸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배인지는 몰라도, 역시 타고 있는 것이 나았다고 비로소 깨달으면서, 하지만 그 깨달음을 이용하지도 못한 채 한없는 후회와 공포를 안고 검은 파도 쪽으로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열흘 밤의 꿈 - 일곱째 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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