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엘라는 아이들과 함께 해질 무렵까지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방에 있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그 사진을 생각했다. 뭔가 이 세상의 일 같지 않은, 무척 멋있는 일이 일어날 것을 조용히 기대하는 심정이었다.

오늘 밤에는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젊은 여인은 곧장 이층으로 뛰어올라가 액자를 꺼내 사진을 보는 것을 삼갔다. 이 여인은 상상의 비단결을 미묘하게 수놓는 그런 사치에 익숙했다. 환한 오후의 햇살 아래서 그 사진을 보는 것보다 주위가 고적해진 가운데 장엄한 바다 소리를 들으며, 별들이 반짝이는 밤에 촛불을 켜고 그 사진을 혼자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재웠다. 그리고 나서 아직 열 시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곧바로 침실에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정열에 불타는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는 우선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책상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트리위의 가장 아름다운 시를 몇 편 읽었다. 그리고 나서 액자를 불 앞으로 들고 가서 뒷판을 열고 사진을 꺼내 눈앞에 놓았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그런 얼굴이었다. 시인은 멋진 콧수염과 나폴레옹 3세를 연상시키는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깊숙이 눌러 쓴 소프트 모자가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아까 안주인이 말하던 커다란 검은 눈은 무한한 슬픔을 견뎌낸 듯한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잘생긴 이마 아래 눈은 상대편 얼굴을 보면서 온 우주를 읽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 그런 표정을 담고 있었다.

엘라는 낮고 부드럽게,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로 당신이군요. 지금까지 그토록 몇 번이나 잔인하게 저의 빛을 가린 사람이...'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어느새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사진에 살짝 입술을 댔다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웃고는 눈물을 닦았다.

남편과 세 아이를 가진 여인이 이렇게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나이에게 터무니없이 마음이 끌리다니...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다... 트리위는 본 적이 없거나 알지 못하는 남자가 아니다! 그녀는 그의 감정과 생각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잘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과 감정은 그녀의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남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하기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남편으로서는 그런 감정 따위는 아예 없는 것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실 이 사람이 나와 더 가까운 사람이야. 윌보다는 이 사람이 진실한 내 자신과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어...' 그녀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엘라는 침대 옆 탁자에 트리위의 시집과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베개에 몸을 눕히고 전에 표시를 해두었던, 로버트 트리위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진실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시집을 옆에 내려놓고 그의 사진을 침대 한쪽에 세워 놓고는 옆으로 누워서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서 엘라는 다시 촛불을 들고 머리 위 벽지의 이제는 절반쯤 지워진, 희미한 연필 글씨 자국을 다시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싯귀며 대귀, 화운 따위와 시행의 첫 구절이나 중간 구절, 그리고 셀리가 남긴 여러 가지 단편적인 머릿속 시상 등이 적혀 있었다.

쓰인 것 가운데 제일 짧은 것도 강렬한 힘이 넘치고 너무 달콤하고 생생했다. 마치 그 벽이 그 시인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벽에서 시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숨결이 스며 나와 그녀의 볼을 스치는 것 같았다.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손을 들었을 것이다... 손에 연필을 쥐고, 이렇게 팔을 뻗었겠지... 글씨가 비스듬하게 쓰여진 것을 보면 틀림없다.

'살아있는 인간보다 더 진실한 형상들
영원의 생명으로 자라나는 것들이여'

이것은 시인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이리라. 비평가들의 냉혹한 비평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깊은 밤 자연스럽게 가슴 가운데서 솟아나는 사색과 정신의 모색, 영혼의 약동을 적은 것이리라. 이것들은 스며드는 달빛이나 등불, 혹은 파르스름한 새벽의 어스름 가운데서 서둘러 쓴 것이지, 환한 대낮에 쓴 것일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시인이 금방 사라지고 마는 그런 상상을 붙잡았을 때 그의 팔이 놓여 있던 바로 그곳에서 물결치고 있다. 그녀는 신성한 천상의 공기처럼 스며드는 시인의 영혼에 깊이 잠기고 시인의 정신에 흠뻑 취했다. 그녀는 마치 시인의 입술 아래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꿈꾸는 듯한 마음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걸 느끼는 순간 바로 문 밖 층계참에 귀에 익은 남편의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엘, 어디 있소?"

설혹 그녀가 자신의 환상을 남편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해도 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일을 남편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본능에 사로잡혀 그 사진을 베개 밑에 슬쩍 감추었다. 거의 동시에 남편이 문을 활짝 열었다. 남편은 꽤 술을 마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 이거 미안하군. 어디 머리가 아파? 잠든 걸 내가 깨운 것 아니오?" 윌리엄 마치밀이 말했다.

"괜찮아요. 머리가 아픈 건 아니예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오셨어요?"

"응, 오늘 안에 돌아오는 방법을 찾아냈지. 내일은 또 갈 곳이 있어서 거기서 괜히 하루를 더 있고 싶지 않더군."

"식당으로 내려갈까요?"

"아니 괜찮소. 나도 지금 몹시 피곤해. 저녁은 든든히 먹었으니까 나도 이제 자야겠소. 내일 아침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거든. 당신 일어나기 훨씬 전이니까 잠에서 깨지 않게 살그머니 나갈 거요. 당신이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말이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의 동작을 지켜보면서 사진을 더 깊은 곳으로 가만히 밀어 넣었다.

"정말 몸이 불편한 것 아니야?" 그는 아내 위로 몸을 구부리며 물었다.

"아니에요. 단지 좀 우울할 뿐이에요."

"별 것 아닌 걸로 신경을 쓰지는 말아요." 그는 몸을 굽혀 그녀에게 키스했다. "오늘 밤 당신하고 같이 있고 싶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