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마치밀은 어퍼웨섹스 지방의 유명한 해변 휴양 도시 소렌트씨에서 셋집을 구한 뒤 아내가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아내는 마침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마치밀은 군인 같은 복장을 한 호텔 웨이터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아내를 찾아 나섰다.

"원, 멀리까지도 나왔군, 어, 숨이 차는군."

마치밀은 아내를 따라와서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녀는 걸으면서 무슨 책을 골똘히 읽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유모와 함께 훨씬 앞에서 가고 있었다.

마치밀 부인은 책을 읽으며 삼매경에 빠졌다가 깜짝 놀라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네, 당신이 너무 오래 걸리셔서... 호텔 방에 가만히 있자니까 너무 지루해서요. 미안해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좀처럼 괜찮은 집을 찾을 수가 없더군. 아주 고생했어. 공기 좋고 쾌적한 방이라고 해서 막상 가보면 숨이 막힐 지경으로 형편없는 곳이지 뭐야. 간신히 하나 정하긴 했는데 어디 한 번 같이 가보지 않겠소? 별로 넓지는 않지만 별로 좋은 집도 없고 말이야... 마을이 모두 피서객으로 꽉 차 버렸어."

부부는 아이들과 유모는 그대로 산책을 하도록 놔두고 함께 먼저 돌아왔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그렇고, 용모도 누구에게 빠지지 않을 정도여서 서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집안 형편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들은 성격이 어쩐지 잘 맞지 않는 점이 있었다. 남편은 둔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차분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예민하고 다혈질인 편이었다. 그렇다고 부부가 자주 충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취미나 기호 같은, 아주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에서 두 사람은 공통 분모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인 마치밀은 아내의 성격이나 습성을 다소 유치하다고 여겼다. 아내는 남편의 그것이 천하고 물질적이라고 치부했다. 그녀의 남편은 북부의 어느 번화한 도시에서 총기 제조업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이 사업에 몰두해 있었다. 반면 그의 아내는 약간 고리타분하면서도 우아한 표현인 '시혼(詩魂)의 숭배자'라는 이름에 썩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동하기 쉬운 기질이었다. 엘라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남편이 만드는 물건들이 결국 생명을 빼앗는 도구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남편의 직업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남편이 만드는 무기 가운데 일부는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잔인하게 해치는 무서운 새나 사나운 짐승을 없애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간신히 마음의 평온을 되찾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직업이 그를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이 어머니들이 늘 강조하는 것처럼 여자란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윌리엄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신혼 여행을 갔다 와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때까지 남편의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녀는 마치 어두운 곳에서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진 사람처럼 머리 속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 신기한 것인가 아니면 흔해빠진 것인가, 거기 들어 있는 것은 금인가 아니면 은이나 납 같은 것인가, 장애물인가 주춧돌인가. 그리고 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인가 별것 아닌가를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막연하지만 그녀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자신을 소유한 사람의 우둔함과 고상하지 못함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신의 불운함에 대해서도 가련하게 여기는 한편, 자신의 섬세하고 우아한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나 공상에 빠져서 밤중에 한숨을 내쉬면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물론 그녀가 빠져 있는 상상의 세계는 설혹 남편이 알더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엘라는 키가 작고 우아했으며 체격이 날씬했다. 동작은 경쾌하고 생기가 넘쳤다. 눈은 검었으며 눈동자는 영롱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엘라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특징이었다. 놀랄 만큼 밝은 그녀의 눈동자는 가끔 주변 남자들의 마음을 휘저어놓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곤 결과적으로 엘라 자신도 마음이 상하곤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었다. 갈색 수염을 기르고 생각에 잠긴 듯한 눈매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그가 언제나 아내에게 친절하고 관대했다는 점이다. 그는 딱딱 부러지는 분명한 말투로 이야기했으며, 무기를 필요로 하는 이 세상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남편이 말한 그 집에 도착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약간 언덕진 곳이었다. 소금기 있는 바람을 막기 위해서 정원에 상록수를 심어놓고 있었다. 현관에까지 돌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이 집 역시 주변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번지가 있었는데 모두들 뉴퍼레이드 13번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집은 다른 집보다 약간 규모가 큰 때문인지 집주인 여자만은 일부러 코버그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위의 집과 구분하고 있었다. 지금은 여름철이라 햇볕이 들고 활기가 있지만 겨울이 되면 문 앞에 모래 포대를 쌓고 열쇠 구멍까지 틀어막아서 비바람을 막아야 했다. 비바람에 페인트칠이 거의 다 벗겨져 밑에 칠한 것과 이음새를 매운 자국이 드러나 보였다.

그들 부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집주인 여자는 현관까지 나와 그들을 맞이하여 방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기술자였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자기 집이 묵기에 왜 편리한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마치밀 부인은 위치나 건물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집이 작아서 방을 다 쓰지 않으면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실망한 듯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자기는 손님들이 꼭 자기 집에 머무르게 되면 좋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방 두 개를 어떤 독신 신사분이 그 동안 계속 빌려서 쓰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름 휴가철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특별히 방세를 더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년 내내 방을 빌리는데다 말썽도 일으키지 않는 아주 훌륭한 젊은이이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돈을 더 받으려고 그를 내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 그분이 잠시 동안 나가 있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집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밀은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개업자에게 더 알아볼 생각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그들이 호텔로 돌아와 차를 마시려고 앉자마자 그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신사는 자기가 3,4 주일 동안 자기 방을 비워줄 테니 새로 오신 손님들을 받도록 하라고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친절하신 분이군요. 하지만 그런 불편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마치밀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전혀 불편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집주인이 웅변조로 늘어놓았다.

"실은 그분은 말이에요, 보통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랍니다. 뭐라고 할까요, 마치 꿈꾸는 듯하고 고독하며 약간 우울한 편이지요. 요즘같이 사람들이 떠들썩한 계절보다는, 남서풍이 문을 매섭게 때리고 파도가 이곳 큰길까지 덮쳐서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를 더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실은 이번에도 기분 전환도 할 겸 가끔 찾아가던 건너편 섬의 작은 농가에 가 있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 부부가 자기 집에 와 묵었으면 한다고 집주인은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