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머니의 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숙수를 꼽으라면 대개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나에게도 어머니는 특별한 분이셨다. 음식을 만드시는 솜씨가 빠르고 거침이 없으셨다. 앉은 채로 이야기하시면서도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셨다. 봄동이나 솔지(부추김치) 같은 금방 무쳐내는 음식에서 특히 손맛이 느껴졌다. 재고 다듬고 따르고 모양내는 게 없으셨다. 큰 양푼에 채소와 함께 고춧가루, 깨, 참기름 등을 들들들 들이 붓고는 손으로 썩썩 문지르면 맛깔나는 음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거침없는 솜씨로 그 많은 식솔들을 거둬내시고 그 많은 손님들을 치러 내셨다.
집에 몇 개의 식칼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주로 나무 손잡이가 달린 남원 식칼을 사용하셨다. 무수한 칼집이 나다 못해 가운데가 움푹 패인 도마 위에서 어머니는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셨다. 김치 같은 경우에는 무엇으로 자르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미묘하게 변했다. 막 담은 새 김치는 어머니의 손가락으로 쭉 찢어줘야 제 맛이 났다. 묵은지는 바로 그 도마 위에서 남원 식칼로 썰어야 묵은지 특유의 군둥내와 함께 싸르르한 칼맛이 섞여 비로소 제 맛이 났다.
지금의 식가위로 접시 위에서 써는 김치는 다만 김치의 흉내일 뿐이다. 그 묵은지로 끓여내는 김치 찌게는 단연 우리 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손꼽는 어머니 최고의 음식이었다. 자배기 뚜겅이 들썩거리도록 센 불에 막 끓여낸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신김치와 돼지고기와 콩나물의 조화는 그 찌게 위에서 젓가락 숟가락들이 쟁탈전을 벌릴 만큼 우리의 왕성한 식욕을 자극했었다.
지금도 어머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시던 그 활발한 모습이다. 지금도 산낙지나 닭발 따위를 다질 때 나던 그 땅땅하던 도마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그 함박웃음이 눈에 선하다.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랴. 우리 친구들의 어머니도 모두 뛰어난 요리사셨다. 누구네 집은 젓갈이 맛있었고 누구네 집은 열무 국수가 맛있었다.
그 분들은 모두 우리들을 소중한 손님인양 끼니 때만 되면 밥을 해 먹이셨다. 본인들은 식은 밥을 드실망정 우리에겐 항상 따뜻한 밥을 해 먹이셨다. 냉장고가 나오기 이전에는 여름철이면 쉬이 밥이 쉬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대나무 광주리에 밥을 담아서 시원한 툇마루 기둥에 매달아 두셨다. 그래도 밥이 쉬면 우물에서 찬물로 밥을 씻어 내셨다. 그래서 쉰 맛이 좀 가시면 그걸 다시 물에 말아 마시듯이 드셨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는 항상 따뜻한 밥을 먹이려고 애쓰셨던 분들이다. 이제 그분들은 거의 돌아가셨거나 병드셨거나 너무 늙어버리셨다.
다시는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음식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오랜 병석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으신 상태에서도 지금도 나를 보면 그 앙상한 손을 내미신다. 이 땅의 모든 음식들을 주무르시던 그 손. 우리에게 그 음식들을 거둬 먹이시던 손. 그 손을 만지면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모든 물기가 빠져나가고 뼈만 남은 그 손이 지금도 뭔가를 먹일 양인 양 내 입술을 더듬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