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흰 쌀밥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을 것에 집착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데 이놈이 하는 짓을 보면 하루 종일 먹을 것을 탐색하는 일이 전부다. 코로 뭔가를 킁킁거리고 앞발로 파헤치고 아가리로 뭔가를 씹어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사람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욕심 중에서도 제일 버리기 어려운 것이 식탐일 것이다. 지금은 돈버는 일에 너무 바빠서 ‘먹는다’는 본질적인 행동이 소홀히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뱃구레가 넉넉할 때의 이야기고 당장 한 끼라도 굶으면 ‘먹는다’는 것에 우리 인생이 걸려 있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한 번은 우연한 일로 2주 정도 단식을 해 본 적이 있다. 아니 포도즙을 마시면서 했던 포도 단식이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절식이라고 해야겠다. 그 때 느낀 건데 사람은 참으로 먹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는다는 행위가 우리 삶의 중심에 놓여 있었었다. 내가 굶주린 까닭도 있었겠지만 주위를 보면 정말 끊임없이 먹어대는 모습만 눈에 띄었다. 특히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하다못해 과일이나 삶은 계란이라도 반드시 먹을 것이 놓여졌다. 겨우 길어야 열 두세 시간 활동하는 중에 하루 세끼 먹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호사요 낭비다. 그것뿐이겠는가. 그걸 마련하고 준비하고 치우는데 또 얼마만한 시간이 허비되겠는가. 거기에다 간식이다 주전부리다 쉴새없이 입을 놀리니 내 하루는 가히 강아지가 하는 일과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인다.


나 역시 먹기를 즐긴다. 부모님 덕분에 좋은 이와 위장을 가지고 태어나 먹는 것에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다. 다만 아내의 ‘나이 들면 음식을 사양하는 미덕도 좀 배워라’ 하는 충고와 돌격형 뱃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절식하고 있을 뿐이다. 크게 내로라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아무거나 잘 먹고 즐길 줄은 안다. 인간이 먹는 것은 거의 다 먹어보려고 노력하고 그 모든 음식들에 한결같이 독특한 맛이 있다는 것에 감탄한다. 음식은 또한 단순한 미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음식마다 풍기는 독특한 향취가 있고 독특한 질감이 있고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리고 음식은 놓여지는 때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그 맛도 달라진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 재료와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서 그리고 먹는 사람의 식욕과 기분에 따라서 그 맛이 얼마나 천차만별로 달라지는가. 사람 주변에는 항상 음식이 있었고 또한 음식 주변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음식 이야기는 자연스레 사람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상엔 고급 음식도 많고 진기한 음식도 많다. 그러나 제일 맛있는 음식은 역시 편하게 먹는 음식이다. 정다운 사람끼리 먹는 음식, 적절한 때에 먹는 음식,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이 맛이 있다. 음식에는 항상 인정이 섞여 있고 그 음식하면 꼭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마는 음식 또한 잊혀져 가거나 없어지는 것이 많다. 있다 하더라도 제 맛을 잃은 것들도 많다. 시대가 변하니 음식도 변하고 사람들의 입맛도 변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내 삶에 맛과 향과 색을 내고 거기에 추억까지 더 하는 그 음식들의 기억까지 변할 수가 있으랴!


아무리 어린애들이라도 대개는 끼리끼리 논다. 잘 사는 집 애들은 잘 사는 집 애들끼리, 못 사는 집 애들은 못 사는 집 애들끼리 서로 어울린다. 국민학교 이 학년 때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시절에는 아무리 친했더래두 대개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리면 서로를 잊어먹고 만다. 더구나 그 친구는 굉장히 가난한 집 아이라서 나와의 사귐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도 못했고 코도 좀 들리고 그리고 말하는게 촌스러웠다. 처음에 나는 그 친구가 그저 그런 편이었지만 그 친구는 나를 굉장히 좋아했다. 노골적으로 내 옆에 붙어 다녔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때로는 좀 성가셔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때 우리의 관심사는 반에서 누가 제일 쎄냐 하는 것이었다. 공부 시간에 손가락으로 순위를 꼽아 보기도 하고 내가 몇 번째인지 곰곰이 가늠해 보기도 했다. 아주 싸움꾼으로 이름 난 놈들도 있었고 계집애처럼 순해 빠진 놈들도 있어서 상위와 하위는 쉽게 결정이 났다. 그러나 나처럼 어중때기들의 순위 매기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실제 싸워볼 수도 없고 이것저것 관찰해서 속내로 짐작해 볼 뿐이었다. 저 놈은 눈매가 감때 사나워 아무래도 나보다는 한 수 윌 것 같아. 저 놈은 허세만 부리는 부잣집 아들놈이라 아마 내가 눈을 크게 뜨면 겁을 집어먹고 말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실제 싸우는 상상도 하게 되고 흥분해서 혼자 주먹도 쥐어 보고 무서워서 다리를 달달달 떨기도 한다. 그 때 계산으로는 그 친구는 나보다 한참 아래였다. 내가 뭐래도 그냥 웃고 따라다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조회를 하기 위해서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북적대고 있을 때였다. 옆 반 앤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까불이 촐랭인데 화도 잘 냈다. 까불이들은 대개 겁쟁인데 녀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가 먼저 장난을 걸다가도 상대방이 함께 장난을 치면 화를 내고 싸우려 들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인 녀석이었다. 제일 싫고 위험한 녀석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저 애 이길 수 있어? 친구는 뜻밖에도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응. 그러더니 갑자기 그 녀석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야, 너 나 이길 수 있어?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친구를 바라 봤다. 그러더니 금방 얼굴을 험하게 일그러뜨리고 친구에게 바로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두 말도 없이 싸움이 벌어졌다. 우하고 함성이 터지고 거의 전교생의 절반 정도가 큰 원을 만들어서 본격적인 싸움판을 벌려 주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친구가 녀석을 쓰러뜨리고 몇 방을 날리자 녀석은 더 이상 저항을 못하고 항복해버렸다. 친구는 벌떡 일어나 옷을 툭툭 털더니 나를 보고 자랑스레 웃음을 보냈다.


그 날 나는 그 친구와 같이 하교를 했었다. 평소 같으면 동네 친구들과 노는 일에 바빠서 나는 그 친구는 거들떠도 안 보고 바로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그 친구가 끄는 대로 그의 집을 향했다. 그는 짐작대로 이상한 동네의 이상한 집에서 살고 있었었다. 도시인데도 시골집 같은 느낌이 나는 집이었다. 시골집처럼 낮은 부엌에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그의 어머니만 있었다. 집은 컴컴했고 그의 어머니는 말 수가 별로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부엌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둥근 소반에 점심이 담겨 나왔다. 많이 먹으라느니,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먹으라느니 어머니들이 보통 하는 의례적인 말도 없었다. 어른들이 쓰는 사기 밥그릇에는 흰 쌀밥 두 그릇이 소담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큰 사발에 김치가 수북히 담겨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어머니는 수건을 둘러쓰고 나에게 오래 놀다 가라고 말하고 친구에게는 다 먹고 나서 밥상을 그냥 부뚜막에 두라고 이르고는 어딘가에 일을 나가버렸다. 우리 둘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밥은 아침에 해두었는지 약간 식어 있었다. 집에서 김치 한 가지에 밥을 주었더라면 아마 나는 투정을 부렸던지 아니면 몇 숟갈 뜨다가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 나는 코에 땀방울까지 맺으면서 단숨에 밥 한 그릇을 비워버렸다. 우리 둘이는 마치 일을 마치고 온 농부들처럼, 싸움을 끝내고 온 전사들처럼 열심히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그 그릇에 찬물을 부어 마셨다. 그릇 바닥에 복 복자인지 쌍 희자인지가 물에 흔들려 보였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은 것이다. 쌀밥에 진실로 매료된 것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와 멀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배가 고프기만 하면 나는 그 친구 집에서 먹었던 그 쌀밥과 김치를 떠올리곤 했었다. 그 어두컴컴한 집의 하얀 쌀밥은 내 친구의 불가사의한 만용과 함께 세계의 어느 진귀한 음식보다도, 어느 부잣집의 산해진미보다도 당당하게 내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