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옥수수죽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담이 측백나무로 둘러쳐져 있었다. 교명이 중앙국민학교였는데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잘 몰랐었다. 나중에는 시내 중심에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려니 생각했고, 더 나중에는 그 명칭이 일제시대부터의 교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를 시내 중심에 두었고 또 그렇게 이름지었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학교 운동장 모퉁이에 수상쩍은 정원이 있었다. 운동장에선 항상 황량한 모랫바람이 불었는데 유독 그 곳만 나무가 칙칙하였고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철책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곳은 학교 안에 있으면서도 항상 학교와는 관계없는 땅처럼 여겨졌다. 어쩌다 호기심이 일어 철책 위로 몸을 드밀고 안을 들여다 보면 오솔길이 있었고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무너진 계단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정원은 내가 3,4학년쯤 되었을 때 부족한 교실을 증축하면서 없어져 버렸다.
그 외에도 일제의 잔재는 많았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도 적산집이었고 이층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었다. 어른들이 쓰던 일본말을 어린 우리들도 무심코 답습해서 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하늘색을 항상 소라색이라고 불렀다. 그 말은 '하늘에 떠있는 소라'라고 하는 다소 '장콕또'다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본정통'이라 불리우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은 꽤 부유한 상인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난했다.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르는 남루한 행색의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그 아이들 중에는 유독 머리를 박박 밀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고아원 얘들'이라고 불렀다.
그 얘들은 사친회비를 비롯한 모든 공과금이 무료였고 항상 함께 모여 다니곤 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얘들 중 한 명을 때렸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고아원 얘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는데 선생님도 말리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 얘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아이들이라 군것질이 심했고 하다 못해 학교 근처에서 파는 칡이라도 씹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얘들은 아무 것도 씹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우울해 보였다.
하루는 교문에 들어서는데 뭔가 모를 고소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 들었다. 교문 오른쪽에 양호실인지 소사실인지가 있었고 그 유리창문 너머로 큰 솥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솥 안에 흰 죽이 가득 들어 있었고 누군가가 큰 주걱으로 그 흰 죽을 젓고 있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혈색이 나쁜 아이들이 그 죽을 타먹기 위해 죽 줄을 서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냄새는 그 죽에서 풍겨나오는 향기였다.
그 죽을 저을 때마다 흰 김이 물큰물큰 피어올랐다. 그 냄새는 우리가 흔히 먹었던 밀가루죽이나 푸대죽이 아닌 옥수수죽의 냄새였다. 그 흰 옥수수죽의 색깔과 냄새에 매료되어 하염없이 그 창가에 서있었던 모양이다. 오전에 수업이 끝나는 나 같은 1학년 꼬맹이들은 그 죽을 타먹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먹을려는 욕심도 없이 구경삼아 서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선지 내 손에 죽 한 그릇이 주어졌고 나는 그 죽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맛은 약간 깔깔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달콤하면서도 말할 수 없이 고소하였다. 말하자면 그 옥수수죽은 내가 맛본 여러가지 구호물품 중에서 최초의 서양식 수프에 해당되었던 셈이다. 지금도 양식집에 가면 제일 내 입맛에 와 닿는 건 단연 수프다. 고기 수프보다는 야채 수프나 크림 수프에 약간 겨자를 쳐 먹는 걸 좋아한다. 그 때 그 옥수수죽에 대한 나의 추억이랄까, 오마쥬랄까, 뭐 그런 거 아닐까 싶다.
나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옥수수죽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굳이 먹어 보자면 못 먹어 볼 것도 없겠지만, 다시 억지로 끓여 먹어 본다 해도 그 맛이 날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혹 모르겠다. 일인용 욕조처럼 생겼던 그 길고 큰 쇠솥에 그만한 양의 옥수수죽을 함께 끓인다면 혹시 그 맛이 다시 날련지.
국민학교 6년 내내 그 옥수수죽을 다시 먹어볼 기회가 없을까를 생각하며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 옥수수죽도, 옥수수죽을 끓이던 그 큰 무쇠솥도, 큰 유리창문이 달려 있던 그 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참, 언젠가부터 그 고아원 얘들도 소식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기나 긴 일제의 흔적들, 그리고 거기에 겹쳐진 전쟁의 상흔들은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어쩔 때는 환상이 아닐까, 또는 누구 다른 사람의 기억이 잘못 입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어쩌랴, 그 맛과 그 냄새와 두 손에 받쳐 들었던 그 뜨거움까지 아직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