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친구들

 음식은 자리가 편해야 한다. 아무리 산해진미라 할지라도 불편한 자리라면 음식 맛이 떨어진다. 음식은 단지 혀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의 향기, 음식의 색깔, 음식을 둘러싼 분위기, 그 날의 날씨까지가 음식맛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분위기이다.

 

 낯선 사람과의 식사는 음식맛도 낯설다. 음식을 집는 거나 씹는 거나 찌꺼기를 뱉는 거까지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심지어 음식 넘기는 소라까지 신경이 쓰이니 밥맛이 제대로 날리가 없다.

 

 불편한 관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속에서부터 치받는 불편함이 음식 자체를 거부한다. 오감이 막혀서 음식의 맛도 빛도 향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오직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한 번은 어쩌다 고급 한정식집엘 간 적이 있는데 웬 한복 입은 여자들이 들락거리며 식사 시중을 들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여자가 옆에 앉아 젓가락 시중까지 드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을 굳이 만류할 수도 없고 집어주는 반찬을 받아먹자니 송구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주제넘은 것 같기도 해서 반찬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려면 음식 대접이 최고라지만 어쨌든 그 불편함이 해소될 때까지는 음식맛은 보류될 수밖에 없다. 심리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음식을 먹고나서 토하거나 심지어 배탈이 날 수도 있다. 오죽하면 '개도 먹을 때는 나무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고 혼자 먹는 것이 반드시 편안한 식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여 음식맛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혀끝이나 볼따구니를 씹는 실수를 할 때가 대개 혼자 식사를 할 때이다. 더구나 혼자 먹을 때는 왠지 과식하게 되어 속이 더부록해지기 쉽다. 굉장히 처량한 생각이 들어 밥도 더 많이 푸고 라면도 끓이고 반찬도 더 죽 늘어놓기 일쑤다.

 

 아무래도 식사는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함께 해야 제맛이 돈다. 어려서 형제들이 한창 사이좋게 자랄 때 왈캉달캉 두레상에 모여 앉은 우리들은 말 그대로 숟가락을 뽑아든 걸신들이었다. 그 때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전부라 느긋하게 음식맛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 허기라는 것이 신묘해서 마이더스의 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배고픈 아이들의 눈으로는 이 세상이 쵸코렛 집, 찰떡 돌멩이, 구름 사탕, 흙 떡고물로 보인다.  오죽하면 봄철에 피는 하얀 꽃을 이밥(이팝)나무라 부르고 톱질 끝에 쌓이는 하얀 나무 부스러기를 톱밥이라 불렀을까. 고명 하나 안 들어간 보리개떡을 세상에 다시없는 진미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무시무시한 허기다. 어려서 이 허기에 붙들려본 사람들은 평생 식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인생을 웬만큼 즐길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 몇 십  년 지기들과 함께 하는 식사야말로 최고의 기쁨으로 꼽을 수 있겠다. 형편이 좀 어려워진 친구가 도시 근교의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땅은 널찍한 편이어서 채소도 갈아 먹고 그런대로 마음 편히 살고 있어서 자주 그 집에 모이게 되었다.

 

 우리 중엔 특별히 잘 살거나 식성이 까다로운 친구가 없어서 아무 음식이나 즐겁게 먹었다. 하루는 그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데 날은 이미 어둑어둑하였다. 근처의 잘 아는 식육점에서 일부러 두껍게 썰어온 고기는 싱싱하고 빛깔이 고왔다.

 

 특별한 기구나 재료도 없이 브로크 벽돌을 양 쪽에 괴고 마른 삭정이로 불을 지핀 다음 석쇠를 얹었다. 점점 굵은 나무로 불이 옮겨 붙은 다음 고기를 얹자 고기 기름이 떨어지며 순식간에 불길이 맹렬해졌다. 거기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익자마자 친구가 뜯어온 상추에 된장을 발라 입안에 틀어넣었다. 아직은 건강한 이빨로 와작와작 씹는 소리들이 요란하였다.

 

 술도 몇 순배 돌고 뱃구레도 넉넉해지자 불빛에 비친 불콰해진 얼굴들에 웃음이 가득하다. 더러는 집어 올리다 고기를 떨어뜨리기도 했는데 재만 탈탈 털어먹으면 그만이었다. 안주인도 김치에 풋고추에 소박한 밥상을 보아주곤 들어가 버려서 우리끼리 남게 되자 남자들 특유의 음담패설에 외도 이야기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의 야만적인 식성을 더욱 자극하였다. 이 모닥불을 둘러싼 어둠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라면 무슨 거리낄 일이 있겠는가.

 

 고기는 불길이 조금 사그라지고 나무가 숯이 되면서 점점 은근하게 익어갔다. 우리의 식욕도 조금 진정되면서 나무향이 짙게 밴 고기를 천천히 음미하게 되었다. 불빛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니 반평생 고생한 흔적들이 역연하다. 그 얼굴들 위로 뭔가 하늘하늘 떨어졌다. 불길  따라 올라갔던 재가 떨어지는 것이려니 했더니 불길에 피식피식 녹는다. 첫눈이었다.

 

 이제 잘 익은 고기에 흰 눈을 얹어서 씹어본다. 잘 익은 고기의 육즙과 단 소금맛과 나무 연기의 훈향에 알싸한 첫눈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거의 환상적인 맛이 난다. 이 맛은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몇 안 되는 축복 중의 하나다. 그동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연면히 이어온 우리의 우정도 물론 그런 축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퇴직한 후에 시골에 땅뙈기 몇 평이라도 마련해보고 싶은 것도 그런 축복을 이어보고 싶은 심정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얹고 고기 굽는 냄새가 연기와 함께 하늘에 피어오를지라도 그 친구들 과연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