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내 손으로 지은 집이거니' 하면 무한한 애착심도 느껴졌다. 그 집을 바라다보고 앉았으려면, 끌 구멍을 파다가 손가락을 다쳤거나, 사닥다리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삐고는 동침을 맞느라고 혼이 났거나, 중방과 도리를 잘못 끼다가 석돌이 녀석한테 핀잔을 맞았거나…
이러한 추억만 해도 여간 정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네 저 기둥감을 베다가 영감님한테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
“그건 약괄세. 이걸 좀 보게그려. 여태 이 지경이니.”
하고 회원들 중에 제일 다부지고 땅딸보로 유명한 정득이가 헝겊으로 칭칭 감은 발을 끌러 보인다. 그것은 저의 집 산울 안에 선 참죽나무를 밤중에 몰래 베다가 저의 아버지가 '도둑야' 소리를 지르며 시퍼런 낫을 들고 쫓아나오는 바람에, 어찌나 급해맞았던지 담을 뛰어넘다가 탱자나무 가시에 발을 찔렸었다. 누렇게 곪긴 것을 그대로 끌고 다니며 일을 해서 그저 아물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 그네들이 부모나 동네 어른들의 반대 속에서 초가집 한 채를 짓기는 대궐 역사만큼이나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쉬이, 대장 올라오신다.”
하고 정득이가 구렁이 지나가는 소리를 낸다. 동혁이는 건배와 기만의 가운데에 서서 올라온다. 기만이는 여전히 건살포를 짚었는데, 오늘은 헬메트(박통같은 모자)를 썼다.
“거기들 모여 앉아서 자네들 역적 모의하나?”
건배도 넓적한 얼굴이 눈의 흰자위와 이빨만 남기고는 흑인종의 사촌은 될 만큼이나 그을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끼리 무슨 비밀한 공론을 했는데요…”
하고 석돌이가 세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본다.
“무슨 공론?”
동혁은 농립을 벗어던지며 은행나무 뿌리에 가 걸터앉는다. 응달에서만 지낸 기만의 얼굴과 비교해 볼 때, 동혁의 얼굴도 더한층 그을은 것 같다. 손바닥이 부르터서 밤콩만큼씩한 못이 박혔고 손톱은 뭉툭하게 닳았다.
“저어…”
하고는 석돌이가 뒤통수만 긁적거리니까,
“왜 목들이 컬컬한 게지.”
동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러잖어두…”
하고 이번에는 칠용이가 응원을 한다. 건배는 기만의 눈치를 보면서,
“아닌게 아니라, 이기만씨가 낙성연을 한번 굉장히 차리고 놀자는데…”
하는 말이 끝나기 전에 동혁은 손을 들어 건배의 입을 막는다.
“안되네.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한 생각이 없겠나? 하지만 말썽이 많은 판에 동네가 부산하게 떠들고 놀면, 되려 오해를 받기 쉬우이. 지금도 면장이 나와서 나를 보자고 한대서 큰 마을로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반대를 하였다.
“왜 무슨 말썽이 생겼수?”
나중에 올라온 동화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묻는다.
“차차 알지.”
형은 자리가 거북한 듯이 대답하기를 꺼린다.
“우리 회와 상관이 되는 일이면 회원들두 다 알아야 할 게 아니유? 면장이 우리 일에 무슨 참견이라우?”
“글쎄 뒀다 알어.”
동혁은 기만의 등 뒤에다 눈짓을 해 보인다. 청년들의 일이라면 한사코 반대를 하는 기만의 형인 기천이가, 면장이 나온 김에 무어라고 음해를 한 것이거니 하고 동화와 다른 회원도 짐작은 하는 눈치다.
그러나 기만이는 형과 달라 이편을 들고 농우회의 일이라면 금전으로까지 후원을 많이 해 오는 터이지만, 아우가 듣는데 형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의 집에 이해관계가 되는 일이라면 형에게 무어라고 연통을 할는지도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터이다.
동혁은 기천의 집에 다녀오는 길에 건배와 기만이를 만나서 같이 오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도 그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건배는 탕탕 대포를 잘 놓는 대신에 말이 헤퍼서 비밀을 지킬 만한 일은 들려주기를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회원들은 '무슨 일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하고 불안을 느끼면서도 더 재우쳐 묻지를 않고, 낙성하는 날 술 한두 잔도 못 먹게 하는 동혁이가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다가 애매한 북과 장구를 두드린다.
기만이도 그 눈치를 챘건만 이런 경우에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 사람에게 오해를 살 듯도 해서,
“그런데 센세이(선생)가 또 뭐래?”
하고 들이대고 묻는다. 그래도 동혁은,
“그까짓 건 알아 뭘하오. 우린 우리가 할 일이나 눈 딱 감고 하면 고만이니까…”
하고 역시 자세한 말대답하기를 피한다. 기만이는 자리가 거북하니까 꽁무니에다가 손을 찌르고 간다는 말도 없이 슬금슬금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고 양반을 못 알아보는 발칙한 놈들과 얼러다니고 돈을 쓰고 한다고, 눈에 띄기만 하면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야단을 치는 저의 형이, 면사무소나 주재소까지 가서 무어라고 쏘개질을 하고 온 것만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농우회관을 짓게 된 뒤부터 가뜩이나 시기심이 많은 기천이가,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아서 그 태도가 부쩍 악화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동혁이가 입을 꽉 다물어 버리니까, 다른 회원들도 어떠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 없다.
건배는 무슨 일인지,
“저기 좀 다녀옴세.”
하고는 기만의 뒤를 따라서 내려갔다. 조그만 일에도 궁금증이 나면 안절부절을 못하는 성미라, 동혁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혹시 기만이에게 들을 이야기나 있나 하고 그 속을 떠보려고 따라가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