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첨지는 언덕 위에 올라서서 팔을 걷고 곰방대를 내두르며 목청을 뽑아 달구질 소리를 먹인다.

산지조종 백두산(山之祖宗 白頭山)

'산지조종은 백두산이요'

 

하고 내뽑으면, 달구질꾼들은 그 소리를 받아,

에에 헤에라, 지경요 -

하며 동시에 지경돌을 번쩍 들었다 놓는다.

수지조종 한강수(水之祖宗 漢江水)

'수지조종은 한강수라'


에에 헤에라, 지경요 -

땅을 다지는 동네 사람들은 목이 쉬어 가는 줄도 모르는데, 그 날 저녁 동혁은 젊은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싱싱하고 씩씩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후 처음으로 들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지났다. 그 동안 한곡리 한복판에는 커다란 새 집 한 채가 우뚝하게 솟았다. 커다랗다고 해야 두 간 겹으로 폭이 열 간 쯤 되는 창고 비슷한 엉성한 집이지만, 이 집 한 채를 짓기에 회원들은 칠월 염천에 하루도 쉬지 않고 불개미와 같이 일을 하였다.

논에는 아시 두 번 호미질과 만물까지 하였고, 이제는 피사리만 하면 힘드는 일은 거의 끝이 난다. 그 동안에 한 달 반쯤은 농군들이 추수를 할 때까지 숨을 돌리는 농한기다. 그 틈을 이용해서 농우회관을 지은 것이다.

엉부렁하게나마 거의 이십 평이나 되는 집을 얽어 놓는데, 그 건축비가 불과 몇 십원 밖에 들지 않았다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회원들끼리 거의 삼 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 모은 것과, 술 담배를 끊은 대신으로 다달이 얼마씩 저금을 한 것과, 또는 돼지를 치고 이용조합(利用組合)에서 남은 것을 저리(低利)로 놓은 것을 걷어 모으면, 거의 오백 원이나 된다.

이발부의 수입은 모았다가 동리서 공동으로 쓸 솜틀을 칠십여 원이나 주고 샀고, 포패조합(捕貝組合)을 만들어서(회원은 다 여자인데, 앞 바다 건너 안섬에다가 이년 작정을 하고 굴을 번식시킨 뒤에, 조합원끼리 따먹고 장에 갖다가 파는 권리를 가지는 것) 불가불 소용이 한참 되는, 조그만 나룻배를 사십 원 가량 들여서 지은 것밖에는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이 회관을 짓는 데는 오십 원도 다 들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첫째, 대지가 민유지라 땅값이 안 들었고, 재목은 단단해서 썩지도 않는 밤나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같은 것을, 회원들의 집 앞이나 멧갓에서 베어 왔고, 수장목은 오동나무와 미류나무를 썼는데, '영치기 영치기' 하고 회원들끼리 목도질까지 해서, 운반을 해 오니 돈이 들 리 없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박는 것부터 자귀질 톱질이며, 네 올가미를 짜서 일으켜 세우고, 새를 올리고 욋가지를 얽고, 토역을 하는 것까지 전부 회원들의 손으로 하였다. 이엉을 엮을 짚도 농우회에서 연전부터 유념해 두었었는데, 여러 사람이 입의 혀같이 봉죽을 들었거니와, 회원 중에 석돌이는 원체 지위(목수)의 아들인데다가 눈썰미가 있어서 수장은 물론, 문짝까지 제 손으로 짜서 달았다.

품삯이라고는 한 푼도 안 들었지만, 다만 화방 밑에 콘크리트를 하는 데 쓰는 양회와 못이나 문고리며 배목같은 철물만은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다가 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거의 두 달 동안이나 열 두 사람의 회원들이 땀을 흘린 기념탑이 우뚝하게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투른 목수와 토역장이들이 얽어 놓은 집이라 장마를 치르고 나니까, 지붕이 새고 벽이 허물어져서 곱일을 하느라고 동혁이도 몇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그랬건만 다 지어 놓고 보니 겉눈에 번듯하게 띄지는 않아도 거의 이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가 있게 되었고, 엉부렁하게나마 헛간으로 쓸 모채까지 세웠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무실, 도서실까지 오밀조밀하게 꾸며 놓았다.

도서실에는 기만이가 사서 기부한 농업 강의록과 농촌운동에 관한 서책이 오륙십 권이나 되고, 동혁이가 보는 일간 신문과 회원들이 돌려보는 서울시보, 농민순보 같은 정기간행물이며, 각종 잡지까지 대여섯 가지나 구비되어서 회원들은 조그만 틈이라도 타면 언제든지 모여 와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형편을 짐작할 수 있도록 차려 놓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락부를 새로 두었다.

“사철 일만 하는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빡빡하고 멋이 없다. 좀더 감정을 윤택하게 하고 모두 함께 즐기는 기회도 지어서, 활기를 돋우려면 적어도 한 가지 통일된 음악이 필요하다.”

는 견지에서 건배가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빌면 콩나물대가리(보표(譜表)라는 뜻)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무슨 관현악대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농촌에 재래로 있던 징, 꽹과리, 장구, 소고, 호적 같은 악기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 건 천천히 장만해두 좋지 않은가. 날마다 뚱땅거리고 두들기면, 공청을 지어 놓구 놀려구만 드는 줄로 오해들을 하면 재미 적으이…”

하고 동혁이가 반대를 하면,

“온 별소릴 다 하네. 자넨 구데기 무서워서 장도 못 담그겠네.”

하고 건배는 기만이를 구슬러서 새로운 풍물 한 벌을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회원들끼리만 자비꾼이 되어서, 노는 방식을 개량하고 두레를 노는 것까지도 통제를 하게 되었다.

“자, 우리 인제 낙성연을 해야지.”

“추렴이래두 내서 내일 하루만 실컷 놀아 보는게 어떤가?”

“암 좋구말구. 이새 저새 해두 먹새가 제일이라네.”

“우리가 두 달 동안이나 집의 일을 내버려 두구설랑 그 뙤약볕에서 죽두룩 일을 했는데, 하루쯤 논다구 누가 시빌하겠나.”

“여보게 우리끼리만 암만 공론을 하면 소용이 있나? 우리 대장한테 하루만 술을 트자구 졸라보세. 건깡깽이루야 신명이 나야지.”

“애당초에 그런 말은 비치치두 말게. 일전엔 동화가 또 몰래 주막에 갔다가, 형님한테 단단히 혼이 났다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다 못해서 오지그릇처럼 빤들빤들해진 회원들이 회관 한 모퉁이에 모여 앉아서 새로 사온 풍물을 두드려 보다가 낙성연을 할 음모를 한다.

저녁 때였다. 찌는 듯하던 더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축동 앞 미류나무에 쓰르라미 소리가 제법 서늘하게 들린다. 회원들은 서퇴도 할 겸 하나 둘씩 은행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새 벽한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집을 쳐다보고 앉았다. 그 집을 바라다보는 그들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이나 컸다.

'힘만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되는구나! 땀만 흘리면 그 값이 저렇게 나타나고야 만다!'

그네들은 회관 집 한 채를 짓는데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또는 노력만 하면 그 결과가 작으나 크나 유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한 것이다. 동시에 움집 속에서, 또는 남의 집 머슴 사랑에서 구차히 모이던 때를 생각하니 실로 무량한 감개가 끓어올랐다.